삶과 죽음, 그 언저리에서.

처음으로 만난 그들의 신

지난밤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더할 나위 없이 개운한 아침을 맞았다. 아침도 해결할 겸 동네 마실이나 가볼까 하고 숙소 밖을 나서니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반겨주었다. 이른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와 한적한 길거리가 무척 낯설었지만 반가웠다.


밥집을 찾아 돌아다니다 골목 안에서 사원을 발견했다. 낯설은 모습의 힌두 사원. 아무나 들어가도 되는 곳인지 몰라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이니 한 아주머니가 들어와도 된다며 손짓하셨다. 조심스레 들어간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아침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경건히 손을 모아 합장을 하고 붉은 점토를 개어 이마 가운데에 찍어 바른 그들은 일렬로 놓여있는 수십 개의 신상을 차례로 지나며 붉은 점토를 나눠 발랐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매일 반복되는 이 의식은 이미 그들에게 삶의 일부인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생전 처음 마주하는 힌두의 아침은 고요하고 강렬했다.



죽음이 시작되는 곳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인도 바라나시에 있는 갠지스 강가에 꼭 가보고 싶었다. 여행을 준비하던 중 카트만두에 갠지스 강의 발원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날 네팔 여행 중에 방문할 유일한 관광지로 파슈파티나트 사원을 추가했다.


입구로 들어서니 내부는 여느 사원들과 다를 것 없이 평범했다. 다른 게 있었다면 사원으로 향하는 내내 화려한 분장을 한 수도승들(Sadhu)과 끊임없이 마주쳤다는 것 정도? 그들은 우리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이리 오라 손짓했지만 쫄보인 우리는 그들의 발끝만 슬쩍보다 줄행랑을 쳤다.

나는 차마 무서워 찍지 못한 그들의 사진을 빌려왔다 (출처 : 마라토너의 사진관 블로그)

입구를 벗어나 강가로 향하는 계단에 이르자 매캐한 재 냄새가 코를 찔렀다. 건너편으로 내려다 보이는 화장터의 모습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느 사원에서도 찾을 수 없는 생경한 것들이었다.


가트(Ghat)를 따라 늘어선 화장터에선 그 위에서 태워지고 있는 여러 구의 시신들과 하늘을 뒤덮은 짙은 연기가 한데 어우러져 그곳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춰 서게 할 만큼 압도적인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화장이 시작되기 전 강가에서 시신의 발을 씻기는 가족들부터 장작더미 위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시신, 불길 안에서 타오르고 있는 사람의 형체 그리고 싸그리 타고 남은 잿더미까지.. 그곳에서는 죽음 이후의 모든 과정들이 한데 공존하고 있었다.

망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기 위해 가까이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화장터 바로 옆에는 그곳에서의 죽음을 원하는 노인들이 모여사는 호스피스 양로원이 있었다. 매일 매 순간 죽음이 이뤄지는 이곳에서, 그 죽음을 바라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도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들은 이곳에서 죽게 되는 것에 대한 기쁨과 죽음 이후에 누리게 될 영생에 대한 기대로 살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에겐 생의 끝에 불과한 죽음이 또 다른 이에겐 더 나은 생을 향한 시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내게 죽음이 주어진다면 과연 나는 내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을까?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죽음 앞에서조차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들의 신은 누구일까.

갠지스 강의 시작점인 그곳 바그마티 강가에서는
그날도 무수한 죽음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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