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사랑에 빠지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그곳

네팔에 '포카라'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보낸 3개월을 잊을 수가 없네요.


첫 신혼 여행지로 네팔을 선택하게 된 것은 순전히 '한 사람'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태국에서 흥건하게 쏭크란을 즐기거나, 발리에서 좀 더 허니문스러운(?) 허니문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엄청나게 현란한 말솜씨나 영업기술로 나를 꼬신 건 아니다. 그녀는 단지 큰 호수가 있는 포카라(Pokhara)라는 마을이, 그리고 그 마을에 있는 한 게스트 하우스의 사장님이 좋았다고 했을 뿐이다.


오직 그녀의 그 말 한마디만 듣고서 나는 무작정 네팔행 비행기를 끊고 이곳 포카라로 왔다.



포카라로 가는 길

막 동이 터오르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포카라행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길을 따라 끝도 없이 늘어선 버스 행렬을 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카라에 가는지 내심 감탄을 하고 있었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에 올라 어젯밤에 미리 사둔 과자를 까먹고 있는데 멀리서 익숙한 얼굴이 다가왔다.


'어? 그 여자다 그 여자!'


엄청난 것을 발견한 양 신랑 팔뚝을 철썩철썩 치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그 여자가 다가와 우릴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 여기서 또 뵙네요! 여기 앉아도 되죠?' 그 여자는 카트만두 공항에서 우리가 구해준 아가씨였다.


앞 뒤로 나란히 앉은 우리는 서로 못 본 사이 어떻게 지냈는지를 미주알고주알 일러주며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갖고 온 간식을 나눠먹으며 쫑알대는 사이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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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기념으로 서로찍은 몰카

포카라로 가는 법을 알아볼 때 '버스를 좀 오래 타야 하고, 길이 좀 험하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바로 옆이 낭떠러지인 좁은 절벽 위를 자그마치 8시간 동안이나 달려야 할 줄이야.


물론 좌우로 흔들어 대며 멀미를 하는 것 보다야 위아래로 들썩이는 게 나았지만, 그래도 손에 든 물을 마실 수 없을 정도로 흔들리는 버스는 처음이라 가는 내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꼬리뼈가 욱씬대고 한쪽 궁둥이에 감각이 없어지려 할 때 즈음 포카라에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렸다.


함께 버스에서 내린 그녀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가려는 숙소에 이름을 대었다. 세상에 인연도 이런 인연이. 이번에도 이 어린양을 우리가 구해줘야겠다 싶어 그녀와 함께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가면서야 듣게 된 이야기지만 그녀는 혼자서 7개월째 세계일주 중인 배낭여행 대선배였다. 네팔에 도착했던 첫날 대합실 안에서부터 우왕좌왕하는 우리를 눈여겨보았다가 도와줘야겠다 싶어 말을 걸었던 거라고. 나보다 2살 어린 그녀는 자신을 소라라고 소개했다.


여행 1일 차 쪼렙들이 7개월 차 만렙을 돕겠다고 설쳐 댔으니 그 모습이 그녀에겐 얼마나 웃겼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리타국에서 서로를 돕다 이곳 포카라에서 한 집 식구가 됐다.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 같아.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택시를 타고 한참 들어갔다. 정신없는 카트만두와는 달리 차창 밖으로 보이는 마을이 오밀조밀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잠시 후 차에서 내려 고개를 한 바퀴 돌리고 나니 '이곳을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우리가 찾아온 곳은 'Windfall'이라는 이름의 한인 게스트하우스였다. 이곳을 소개해 준 그녀의 이름을 대었더니 사장님이 반색을 하며 맞아주셨다.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옥상 위 우리 방이 나타났다. 창문 밖으로 호수가 한눈에 들어왔다.


물결 한점 없이 잔잔한 표면 위로 구름과 산능성이가 비치고, 물가에는 송아지와 아이들이 함께 멱을 감는 곳. 한적한 호숫가를 보고 있자니 아주 오래전 시골 어느 마을로 날아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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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오느라 무리한 궁둥이와 허리를 잠시 뉘이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사장님이 운영하는 한식당을 찾아 맛난 저녁식사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깥 마실을 다녀온 소라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우리를 불렀다.


소라의 손에 이끌려 도착한 호숫가에는 마치 크리스마스 전구를 흩뿌려 놓은 듯 자그마한 불빛들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반딧불이. 무척 깨끗한 곳에서만 살 수 있다는 반딧불이 수백 마리가 수풀 사이 이곳저곳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반딧불이를 보다니. 생전 처음 보는 엄청난 광경에 나는 입을 틀어막고서 살금살금 수풀로 다가갔다. 살포시 그곳에 손바닥을 갖다 댄 순간, 작고 투명한 별빛 하나가 내 손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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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와 사랑에 빠지기 위해 대단한 것들이 필요하지 않듯이, 좋은 여행지가 되기 위해서 엄청난 즐길거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잔잔한 호수의 물결과, 부드러운 산능선이, 한 마리의 작은 반딧불이만으로도 이곳과 사랑에 빠질 이유는 충분하다.


결혼 후 처음으로 '평온'을 느끼게 해 준 포카라에게, 그리고 나의 여행에 이 도시를 선물해 준 그녀에게 감사하며 이 작은 별빛에 마음을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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