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허니문

3박 4일간의 트레킹 여행 1(나야풀-울레리-고라파니)

네팔?
거기에 뭐가 있는데?


신혼여행의 첫 여행지로 네팔을 가자고 했을 때 신랑이 되물었다. 거기에 뭐가 있냐고.


음.. 거기에 호수도 있고, 좋은 게스트 하우스도 있댔어! 그리고... 지진?


어디서 주워듣고 온 후로 네팔에 가고 싶어 졌는데, 신랑을 설득하려니 네팔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신랑이 고개를 갸우뚱하려던 찰나 그녀에게 들은 트레킹 이야기가 생각났다.


산! 산이 있어 거기!

우리 산 타러 가자!


이 난데없는 여행지 결정에 그가 동의한 것은 오로지 하나, 산 때문이었다. 그곳에 가면 산을, 그것도 히말라야를 탈 수 있다고 해서.


산이 좋아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혼자서 이곳저곳 산을 타러 다니는 그에게 히말라야 트레킹은 확실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그렇게 그를 위한 등산 여행을 가장한, 사실상 아무 이유 없는 네팔 여행이 시작되었다.



포카라는 많은 이들에게 히말라야 트레킹을 하기 위한 도시였다. 등반을 시작하기 전 채비를 하는 곳, 그리고 등산 후 지친 몸을 쉬어가는 곳. 길을 따라 들어선 등산용품점 쇼윈도에는 영화 속 등반가들이나 쓸법한 등산용품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나름 준비물이라며 챙겨 온 거라곤 침낭 2개와 초코바 1봉지가 전부였던 우리는 시작하기도 전에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 1박 2일짜리 가벼운 코스부터 열흘짜리 코스까지. 여러 가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다가 나의 새다리가 버틸 수 있는 범위에서 3박 4일짜리 트레킹을 하기로 했다.


출발하는 날 아침. 사장님께 빌린 등산화와 스틱을 챙겨 들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와 함께 할 가이드님이 오셨다. 그의 이름은 Shailen. 진지하게 우리가 오를 코스를 소개하는 그의 눈매를 본 순간 나는 '그와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가 불끈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트레킹을 위한 팀스 퍼밋과 우리를 데려다 줄 지프 / 산 위로 향하는 차 안에서 포카라가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어느 깊은 산속 마을

지프를 타고 나야풀로 올라가는 길. 진정한 오프로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엄청난 산 길을 올라가며 마치 대단한 탐험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깎아지는 듯한 절벽을 끼고 거침없이 달리는 지프에 올라 모험을 떠나다니! 캬~


사실은 낭떠러지에 처박힐까 조마조마해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차를 타고 달리 길 2시간. 울레리에 내려 트레킹을 시작한 지 1시간 즈음 지났을 때 오늘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 아침부터 등산하려면 오늘은 쉬어주는 게 좋아요' 이제 막 등에 열기가 감돌기 시작했는데 끝이라니 되려 아쉬웠다.


짐을 풀고 마당에 나오니 사방을 빼곡히 둘러싼 산들이 보였다. 새삼 내가 깊은 산속에 있다는 게 실감났다. 동네 마실을 하러 나선 길에서 똥강아지와 노새 그리고 버팔로(!)를 만났다. 신기한 마음에 사진을 찍으려 카메라를 켰더니 웬 시골 처녀 한 명이 화면 속에서 활짝 웃고있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불을 껐다. 언제 경험해봤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낯선, 완전한 어둠과 고요가 찾아왔다. 해가 저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산골 마을에서의 첫날밤이 까무룩 저물었다.

본격적인 등산 첫날. 이른 아침부터 채비를 하고 나섰다. 오전 내 산을 오르다 쉬다 점심까지 먹고 나니 반나절이 훌쩍 지나있었다. 식사를 하고 일어서는데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챙겨 온 우비를 꺼내 입고 비 내리는 숲 속의 낭만을 느끼며 걷는 동안 비가 우박으로 바뀌었다.


우박이 섞인 비를 맞으며 걸은 지 4시간. 숙소에 도착할 즈음엔 손발이 꽁꽁 얼어 있었다. 시뻘겋게 변한 손으로 산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문밖에서 천둥번개와 함께 동전만 한 우박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흠뻑 젖은 신발과 옷가지를 말려두고 난로가 있는 1층으로 내려왔다.

비우박을 뚫고 도착한 고라파니 / Shailen이 김장비닐(?)로 자체 제작한 우비

따뜻한 차 한잔을 들고 난로가에 앉아 언 손발을 녹이고 있자니 쫄딱 젖은 손님들이 하나둘씩 산장으로 들어왔다. 한 명 두 명 몸 녹이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서로의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그날 그곳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의 온기에 온기를 보태었다.


우박이 잦아들고 안개가 걷히자 멀리 창 밖으로 한층 가까워진 설산이 보였다.


전기도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깊은 산속 어느 산장.


타닥타닥 장작 타는 소리만이 밤늦도록 그곳을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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