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
소중한 것을 깨우쳐 준 그곳을 떠나며
by 방랑전문상담사 덕규언니 Nov 15. 2019
나에게는 숙제와도 같았던 트레킹을 끝내고 나니 마음속에 묵혀뒀던 체증이 가시는 느낌이 들었다. 산에서 내려오는 차 안에서 신랑에게 '당신 따라 산을 타느라 고생했으니 근사한 숙소를 잡아 푹쉬어야겠다'고 선포했다.
트레킹을 마치고 windfall로 돌아오니 그곳에 머물고 있던 소라가 우릴 반겨주었다. 그녀에게 내 소망을 얘기했더니 마침 자기가 발견한 멋진 숙소가 한 곳 있다며 겉보기에도 삐까뻔쩍 해 보이는 호텔로 데려가 주었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딜의 제왕이 된 똑소라는 프런트를 찾아가 이곳을 사람들에게 많이 홍보해 줄 테니 할인을 해달라고 제안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 호텔 지배인은 당돌한 소라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둘다 몰골은 물에 빠진 생쥐꼴이지만 풍경은 정말 끝내줬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곱게 캐노피가 쳐진 침대와 수건으로 만든 백조가 우리를 반겼다. '세상에 이게 다 뭐야?' 처음 경험하는 환대가 낯설지만 반가웠다. 그렇게 우리는 신혼여행 사상 최초로 신혼여행스러운 숙소에 묵게 되었다.
그 호텔 루프탑에는 설산이 내다보이는 수영장과 라운지가 있었다. 한껏 신이 난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들만을 위한 물놀이와 파티를 즐기며 네팔이지만 전혀 네팔 같지 않은 네팔 생활을 즐겼다.
때마침 생일을 맞이한 소라 친구 우혁이와 함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미친 텐션의 락 공연을 즐긴 그다음 날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씹을 줄 안다고 처음 해보는 호사로운 생활이 낯설었는지 몸이 갑자기 이상 신호를 보내왔다.
포카라에 이런 곳이 있다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곳들 - Road house와 Rolling stones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진 나는 그 좋은 숙소에 하루 종일 처박혀 옴짝달싹 못한 채 꼬박 하루를 죽어있었다. 어딘가 단단히 탈이 난 모양이었다.
몸상태가 안 좋아지니 모든 것들이 시들해졌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호텔이 불편하게 느껴졌고 내가 이곳에서 유일하게 알고 지낸 사람들이 있는 익숙한 곳이 그리워졌다. 그렇게 호텔 입성 2일 만에 우리는 그곳을 버리고 다시 windfall로 돌아왔다.
내가 아픈 이유
그때부터 본격적인 병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먹지 않아도 수시로 설사를 줄줄해댔고 탈수를 막아보려 약을 먹고 나면 그때부터 장이 꼬이기 시작했다.
가스가 차서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배는 허리를 펼 수 없을 만큼 뒤틀렸고 진통제를 먹고 좀 살만해지는가 싶으면 열이 펄펄 끓었다. 그렇게 설사-복통-고열의 악순환을 돌고 나니 이내 온몸을 두드려 맞은듯한 몸살이 찾아왔다.
'실컷 잘 먹고 잘 놀아줬는데 왜 이러는 거지?' 답답한 마음에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한국을 떠나온 후 지난 2주 동안 매일 먹은 거라곤 짜고 밀가루 범벅인 네팔 음식이 전부이며, 여행을 떠나기 전 지난 몇 달은 물론이고 여행을 떠나온 이후로 단 하루의 휴식조차 제대로 취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내 몸이 지금 이렇게 아우성을 쳐대며 아픈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골골대며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나를 보던 사장님은 뭐라도 먹어야 산다며 죽을 끓여오셨다. 죽을 먹고 기운을 차린 나는 꼬박 이틀 만에 방 밖으로 나왔다. 사장님이 독을 빼는데 좋다는 약초 주스를 건네며 자신에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한국에서 직장인과 요리사로 살아오면서 과연 이렇게 사는 게 맞나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어. 돈은 많이 벌었는데 이대로 있다가는 돈도 못써보고 과로로 쥐도 새도 몰래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 싶더라고? 그때 결심했어.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운용할 수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그러기 위해 네팔로 왔어."
한국에서의 모든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함께 네팔로 날아온 사장님은 자신이 꿈꿔왔던 삶의 방식을 구체화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하루 24시간 중 자고 쉬는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들 중, 4시간은 일하는 곳에, 4시간은 배우고 싶었던 걸 배우는데, 나머지 4시간은 가족들과 함께 하는데 썼다.
자신이 생각한 삶의 방식을 실현시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결국 자신이 꿈꾸는 것을 꿈에 머무르게 두지 않고 현실로 실현시켰다. 그는 나 자신과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며 내 몸이 나에게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몸을 최우선으로 돌보라 하셨다.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몸이 하는 이야기들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돌이켜보았다. 내 몸은 계속해서 '피곤하고 버겁고 힘들고 지친다고' 신호를 보내왔지만, 나는 그저 견디라 혹은 더 열심히 하라 몰아붙이기만 했었다.
내 몸이 이 지경에 이를 때까지 난 철저히 방치해 온 못난 주인이었다.
어떻게 해야 나를 돌볼 수 있는 거냐 묻는 내게 그는 '당장 내려놓는 것부터 연습하라'고 하셨다. 열심히 하려거나 잘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오히려 아무것도 하지 말아 보라고. 지금만 생각하며 철저히 쉬라 셨다.
현재에 집중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참 쉽고 단순한 것이었지만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가장 못하는 '아무것도 안 하기'를 연습해보기로 했다.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게으름을 피우고, 며칠간 화장은커녕 씻지도 않았다. 먹고 싶지 않을 땐 종일 물만 마셔도 보고, 종일 침대에 꼼짝 않고 누워 멍을 때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몸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그날 이후 나는 소박하고 잔잔한 것들로 삶을 채워나갔다. 아침이면 동네빵집에서 산 갓 구운 당근케익을 아이들과 나눠먹었고, 나른한 오후에는 들판에 송아지를 보러 가거나 고요한 호숫가에 앉아 노을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면 반딧불이를 보러 가거나 가끔 동네 작은 옥상 영화관에서 도란도란 영화를 즐기기도 했다.
그곳에서 누렸던 그 특별할 것 없는 일상들은 내 삶에 가장 특별한 순간들로 기억된다.
포카라에 생긴 우리 집에는 가족 같이 따뜻한 사장님 부부가 있었다. 옆집에는 언제든 불러내어 소꿉놀이를 하던 어린 날의 동네 친구 같은 소라와 우혁이가 있었다. 호수가로 나가면 말 안 듣는 동네 꼬마 루팔이가, 길 건너 세탁소에는 사고뭉치 아기 고양이 형제가 살고 있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와 '소소한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는 법'을 가르쳐 준 포카라.
나는 그곳을 떠나오며 참 많은 것들에게 안녕을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