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모든 것이 달라졌다
모든 것을 뒤바꿔놓은 그날의 이야기
by 방랑전문상담사 덕규언니 Nov 16. 2019
5월의 첫날. 포카라에서의 여유로운 휴식을 끝내고 터키로 날아온 우리는 이스탄불에 흠뻑 빠져들었다. 유럽풍의 거리, 맛있는 요리, 근사한 카페로 넘쳐나는 골목. 해 질 녘 보스포러스 해협은 멋졌고 영롱하게 빛나는 수많은 모스크들을 보고 있자니 진짜 신혼여행에 온 기분이 들었다.
관광지만 찍고 다니는 흔한 여행이 싫어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을 시작했다. 배낭여행으로 신혼여행 중인 우리 부부를 소개한 후 가고 싶은 지역의 호스트들에게 요청을 보내었더니 그중 한 명에게서 답장이 왔다.
12살짜리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그녀는 자신의 첫 게스트로 우리를 초대하고 싶다고 했다. 파묵칼레로 갈 예정이었던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우리들의 첫 카우치서핑을 위해 데니즐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집에 도착하니 Zeliha와 그의 아들 Arda가 우리를 환영해주었다. 그녀는 근사한 터키식 저녁식사를 차려주고선 원하는 만큼 자신의 집에 머물러도 된다며 안방을 내어주었다.
이튿날 아침 Zeliha는 특별한 곳을 소개해주겠다며 한 호숫가로 우리를 데려갔다. 소복이 눈이 내려앉은 듯 새하얀 백사장과 맑고 투명한 물빛을 담은 Salda 호수는 터키의 몰디브라 불리는 곳이라고 했다. 관광객이라고는 우리가 전부인 그곳에서 어린아이처럼 뛰어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다.
근처에 사는 그녀의 동생 Sevil의 집을 찾았다. 마당에는 암탉이 뛰어놀고 헛간에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따끈한 계란이 있는 시골집. 태어나서 외국인을 처음 보는 아이들은 낯설어하면서도 우리 곁을 맴돌았다. 소박한 대화와 함께 멋진 티타임을 가진 우리는 만족스러운 맘으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길을 나섰다.
아침부터 일정을 소화한 탓에 몸이 나른하게 졸려왔다. 차창 밖으로는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다. 한적한 들판을 가로지르며 달려가고 있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오던 차가 갑자기 급브레이크를 밟더니 방향을 잃고서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어?' 하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다.
그날의 기억은 온전치 않다. 잠깐씩 순간의 기억들이 파편처럼 군데군데 남아있을 뿐. 그러나 처음 눈을 떴을 그때 상황만은 생생히 기억난다.
정신을 차렸을 당시 차 안은 신음소리와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고 어지러워서 몸을 가눌 수 없었다. 고개를 들어 왼쪽을 살피니 Arda가 얼굴에 피범벅이 되어 울고 있었다. 손이 불에 타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을 때 팔목 아래 부분이 뒤틀린 채 꺾여 덜렁거리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남편 쪽으로 힘겹게 몸을 돌리는 순간 왼쪽 골반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골반이 부서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순간, 아기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울부짖던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드문드문 의식이 돌아왔을 때마다 얼굴에 떨어지던 차가운 빗방울의 촉감과 귓속을 파고들어 울리던 엠뷸런스 소리가 선명하게 느껴졌다.
죄송합니다. 미안해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눈을 뜨니 나를 내려다보며 울고 있는 Sevil의 얼굴이 보였다. 내 옆 침대에는 Zeliha가 누워있었고 그 곁에는 나이 든 부부 한쌍이 나란히 서서 걱정스런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님이었다.
뒤늦게 의식을 차린 내게 그녀가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우리 넷은 이 병원으로 실려왔고 Arda는 머리를 다쳐 대학병원으로 이송되었다'며 함께 타고 있던 5명 모두 살아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살았다는 안도감과 함께 혼자 실려간 Arda 생각에 눈물이 났다.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요.'
사고 소식에 깜짝 놀라 달려왔을 그녀의 가족들에게 나는 미안하다고 사죄하며 엉엉 울었다. 갑작스러운 대성통곡에 놀란 그녀의 부모님이 다가와 누워있는 나의 손을 잡고 다독거려주셨다. Zeliha는 내 잘못이 아니라며 울지 말고 씩씩해지라 나를 달랬다.
그때 남자 한 명이 다가와 나의 주치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검사를 해보니 남편은 갈비뼈 4개와 오른 팔꿈치가 부서졌고, 나는 오른팔이 부러지고 왼쪽 골반뼈가 탈골되었다며 곧 수술실로 옮겨가 수술을 시작할 것이라고 했다. 골반이 부서지지 않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실로 향하는 길에 남편을 만났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울먹이며 '나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사과했고, 그는 내게 다 안다는 듯 ‘어느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니 자책하지 마라. 살아있으니 그것으로 된 거다’고 말했다.
그와 인사를 나눈 뒤 실려 온 수술실 안. 냉기가 흐르는 수술대 위에서 나는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참 길었던 그날 밤
목이 마르다는 생각에 눈이 떠졌다. 병실 안은 어두웠고 옆 침대는 비어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상태를 체크하고 떠났다. 목이 마르다고 말하려 했지만 목구멍이 바싹 말라붙어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온몸에 불이 붙은 듯 욱씬대는 통증에 다시 눈을 감았다.
소변이 마려워 일어났다. 한 시간 남짓 지나있었고 옆 침대는 여전히 비어있었다. 때마침 수액을 확인하러 들어온 간호사에게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곁에 있던 Zeliha의 어머니가 기저귀를 받아와 채워주셨다. 부끄러운 마음도 잠시 다시 잠이 쏟아졌다.
두런두런 말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수술을 마친 신랑을 옆 침대로 옮기고 있었다. 내 곁에 누운 신랑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제는 잠들 수 있겠다 싶었다.
통증과 악몽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그날 밤. 끔찍한 악몽에 쫓겨 눈을 떴다가 침대 너머로 보이는 그의 모습에 안도하며 다시 잠들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그 밤은 내 생애 그 어떤 밤보다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