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을 하루 앞둔
5월의 어느 날이었다.
기력을 조금씩 회복하며 웃음을 되찾아 가던 나는 남편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걷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침대 밑에서 못 보던 검은 봉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게 뭐지?' 아무 생각 없이 열어본 봉지 속에는 사고 당시 우리가 입고 있던 옷과 신발들이 들어있었다.
셀프 웨딩 스냅을 찍기 위해 챙겨갔던 나의 세미 웨딩 원피스와 남편의 꼬까옷 셔츠그날 수술실에 입고 들어갔던 그 옷은 수술 전 가위로 잘라내 졌다. 피범벅이 된 채 갈기갈기 찢긴 우리 옷을 본 순간, 잠시 잊고 있던 그날의 기억들이 뇌리를 스치며 그간 참아왔던 울음이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옷을 집어 들고 바닥에 주저앉아 짐승처럼 우는 나를 남편은 가만히 안아주었다. 잠시 후 병동 전체에 울려 퍼지는 내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 뛰어온 사람들이 통곡을 하는 나를 보며 무슨 일이냐 물었다.
'사실 저희는 신혼여행 중이었어요. 이게 제 드레스인데요. 이렇게 돼버렸어요.'
숨이 넘어갈 듯 꺽꺽 울며 한국어로 더듬거리는 내 말을 알아들었을 리는 없지만, 그들은 마치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다가와 내 등을 토닥여 주었다. 다독거리는 손길에 더욱 크게 터져버린 울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초라한 행색으로 배낭을 메고 돌아다녔지만 그래도 명색이 신혼여행이었다.
전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우리의 예쁜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었기에 짐을 싸면서 제일 먼저 챙겨 넣은 것이 그 옷이었다. 배낭 가득한 거적때기들 사이에 단 두 벌밖에 없던 그 멀끔한 옷은,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조차 고이고이 챙겨 갈 만큼 내게 소중한 것이었다.
아직 겨우 두 나라에서 밖에 못 찍었는데.. 이제 한참을 옥신각신거리지 않아도 척척 포즈를 맞출 수 있게 됐는데.. 이제는 저 옷을 입을 수도, 저 포즈를 지을 수도, 이 여행을 지속할 수 도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이 사고를 낸 상대편 운전자가 떠올랐다. 이 모든 것을 망쳐버린 그 사람이 미웠다. 내 눈앞에 있다면 달려들어 욕을 퍼붓고 소리를 지르며 내 신혼여행을 돌려내라고 악다구니라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해본들 망가진 내 몸과 망쳐버린 내 신혼여행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참 원망스럽다고. 그 사람이 누군지, 대체 왜 그랬는지 꼭 얼굴을 보고 묻고싶다며 길길이 날뛰는 나에게 남편은 나 자신을 위해 그를 용서하라 했다. 그러나 내가 누군지도,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있는 사람을. 그래서 내게 용서를 구하지 않는 사람을 혼자서 용서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물론 내 몸이 서서히 회복될 것이며 그까짓 옷쯤이야 얼마든지 새로 살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신혼여행을 다시 떠날 수는 없기에, 이따금씩 그 변함없는 사실이 떠오를 때면 나는 여전히 마음이 먹먹해진다.
사실 아직 잘 믿기지 않는다. 우리가 사고를 당했고, 여행을 할 수 없다는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나를 위해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조금씩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내 마음의 생채기에 딱지가 덮여 더 이상 곪거나 아프지 않기를 바란다. 그 딱지가 부디 흉 없이 잘 아물었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것
그날 밤 남편은 나에게 '만약 이 사고가 반드시 일어났어야 할 사고였다면(물론 일어나지 않았다면 가장 좋았겠지만) 그 와중에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생각지 못했던 많은 감사거리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사고가 우리가 이전에 여행했던 네팔이나 다음 목적지였던 이집트가 아닌 터키에서 났음에 감사하다.
: 네팔에서 사고가 났다면 병원까지 이송되지조차 못했거나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정전으로 수술하던 도중 위험에 처했을 수도 있다. 또 여행 유의 구역인 시나위 반도에 있는 이집트에서 사고가 났다면... 우리는 보험에서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하고 모든 것을 알아서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 사고가 우리 둘 만이 아닌 현지인과 함께 있을 때 일어났음에 감사한다.
: 아무리 번역기를 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복잡한 의사소통을 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현지인과 소통해줄 수 있는 Zeliha가 있어서 추후 보험청구와 재판을 위한 서류들을 큰 어려움 없이 준비할 수 있었고, 사고 이후 터키에서 지내는 동안 함께 해준 그녀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있어 정서적으로도 정말 큰 위안이 됐다.
이 사고로 인해 둘 다 목숨을 부지하고 치명적인 부상을 입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 얼마든지 둘 다 척추나 뇌를 다쳐 치명적인 후유장애를 가지거나 개복과 같이 큰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었기에 이 정도의 부상에 그친 것에 감사한다. 터키 현지의 의사와 변호사로부터 터키에서 여행 중 사고를 당해 한국으로 긴급 이송이 되거나 배우자를 잃은 부부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둘 중 하나가 죽어서 혼자 돌아오거나, 두 사람 모두 목숨을 잃고 아무도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최악의 상황이 일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찬찬히 돌이켜보면 모든 일에는 감사할 거리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그것이 죄책감을 덜기 위한 일말의 노력이든, 뿔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일시적인 다독임이었든 그 감사가 내 모난 마음에 약이 되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