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어느 겨울. 내가 멀쩡히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배낭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을 때 그는 그저 ‘다녀오라’고 했다. 나는 반년동안 쉴 새 없이 외국을 들락거렸고 그는 그때마다 나를 태우고 공항을 오갔다.
1년 전 어느 여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결혼하고 긴 신혼여행을 떠나자고 했을 때 그는 그저 ‘그러자’고 했다. 나는 후다닥 결혼준비를 마치고 식을 올렸고, 그는 3년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나를 따라 배낭을 멨다.
배낭을 메고 한국을 떠난 지 20일째, 이제 조금씩 여행의 행복에 익숙해지기 시작 할 무렵 큰 교통사고가 났다. 반파된 차 안에서 으스러진 팔과 골반을 부여잡고 울부짖다 의식을 되찾은 것은 응급실로 향하는 엠뷸런스 안이었다. 갈비뼈가 부숴져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나를 챙기고 있는 그를 본 순간 눈물이 났다.
뭐든 내 마음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고, 한번 마음을 먹으면 꼭 해내고야마는 황소고집인 나를 지난 8년이라는 시간동안 묵묵히 응원하며 지켜봐준 사람인데... 나의 욕심과 나의 고집이 아무 잘못 없는 그를 아프게 한 것 같아 미안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신혼여행을 망치고 만신창이가 된 채로 병원신세를 지고 있는 내 모습이 비참하고 억울해 자꾸만 눈물이 났다.
그럼에도 내가 그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코끼리마냥 부풀어 오른 내 다리에 매일 저녁으로 정성스레 약을 발라주고, 4일째 씻지 못해 볼품없어진 나를 보고도 ‘이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10분에 한번씩 '오빠~'를 불러대는 나에게 궁시렁 거리면서도 금새 달려와주는 그가 있어서였다.
퇴원 전 모두가 모였던 마지막 날 밤.
인사를 하기 위해 우리를 찾아온 닥터 찰라는 인상 깊었던 우리와의 첫만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겠다고 했다. 골반이 빠져 아파 죽으려 하면서도 마취 직전까지 수술 일정과 지금 상태에 대해 꼬치꼬치 캐어묻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단다. 여러 질문에도 'it is ok'만 반복하는 남편에게 그가 되려 '수술을 앞두고 혹시 궁금한게 없냐'는 질문을 던졌다고..
‘그가 한 질문이 뭐였는지 아냐'는 찰라의 질문에 모든 이들이 이목을 집중했다. 그리고 생글생글 웃으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의 답을 기다리던 내 눈에는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눈물이 그렁하고 차올랐다.
'Can i see my wife before the operation?'
(수술하기 전에 제 아내를 볼 수 있을까요?)
사고 후 그가 던진 질문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했다.
퇴원 전 병원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침대에 나란히 누운 그에게 '왜 나를 보려했었냐고' 물었다. 남편은 자신의 눈이 사고 직후부터 나만을 쫓았고, 수술실 전 문득 떠오른 '살아서 나오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 복도에서 남편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병원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모든 이들에게 한없이 친절하고 밝게 웃어주는 아가씨였지만, 그에게는 걷잡을 수 없이 온갖 짜증과 분노와 눈물을 쏟아내는 못난 아내였다. 그 역시도 아픈 환자였음에도 그는 그 모든 걸 고스란히 받아내며 묵묵히 내 곁을 지켰다. 식사 때마다 냄새만 맡고서도 속의 것을 게워내는 나를 보며 그는 책임지고 나를 한국에 데려가려면 자기라도 얼른 튼튼해져야한다며 매 끼니 맛없는 병원식을 우걱우걱 먹었다.
으리으리한 호텔 리조트에 머물며 삶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럭셔리한 여행을 즐겨야하는 거라면 우리 신혼여행은 완전 망했다. 머나먼 나라 터키에 있는 시골병원에 꼼짝없이 갇혀 나날이 꼬질해져가고 있는 중이니까.
그러나 신혼여행의 의미가 결혼 후 휴식과 앞으로 함께 살아갈 삶에 대한 방향 설정이라면 우리 신혼여행은 대성공인 것 같다. 팔다리를 분지른 덕에 정말 제대로 쉬고 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에 대해 크고 작은 이유와 목표들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옆에서 수염을 덥수룩히 하고서 팔에 깁스를 한 채 드렁드렁 자고있는 이 남자는 내 동행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가 멋진 동행이었듯이 앞으로의 삶에서도 멋진 동행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가 내게 그러하듯이 나 또한 그의 삶에 좋은 동행이 되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