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뭐라고 했어?
뭐가 미안한데?
미안하면 다야?
하..... 어쩌라고
퇴원한 지 2주가 지났다. 그 말은 이곳에서 식구들과 함께 있은지도 2주가 되었다는 말이다. 한 집에서 20년을 넘게 지낸 부모님과도 지금의 상태로 하루 종일 붙어 매일을 함께 하는 것이 불편할 텐데.. 나는 만난 지 겨우 3주 된 외국인 식구들과 함께 아침에 눈떠서부터 늦은 밤 눈을 감을 때까지 부대끼며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함께하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모두가 조금씩 지치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우리를 돌보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마마와 바바는 가끔 소리 없는 전쟁을 벌였고, 몸상태가 좋지 않은 젤리하와 아르다는 자주 큰 소리로 언쟁을 벌였다.
아픈 환자와 지친 보호자가 함께 사는 이 집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시시콜콜하게 시작되었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서로의 신경은 날카로워져 가고, 서로에 대한 배려는 무뎌져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서로 없인 안될 것처럼 서로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넘쳐나던 병원에서와는 달리 사소한 일에 시시때때로 부딪히고 싸울 일이 아닌 일에도 불같이 싸우곤 했다. 서로가 몰랐던 예민했던 구석들과 서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못난 구석들을 보여주는 일이 잦아졌다.
지켜보니 싸움의 루틴이 얼추 비슷했다. 나에 대한 비난이나 타인의 분노에 민감한 나는 남편이 내 행동을 지적하거나 나에게 화를 내는 순간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능력함이 드러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남편은 내가 그를 무시하는 뉘앙스를 조금이라도 풍기는 날엔 바로 살벌한 전쟁이 시작됐다.
각자가 전쟁에서 사용하는 전술은 전혀 달랐다. 신랑은 내 속을 긁기 위해 툭툭 거리며 비아냥 대기를 주된 무기로 사용했고, 나는 잘난 입심을 과시하기 위해 다다다 쏘아대는 것이 주특기였다. 서로의 무기는 아주 강력해서 상대방의 멘탈에 스크래치를 내는 것에 매번 성공했다.
크고 작은 전쟁이 종결되고 나면 남편은 뒤끝 없이 상쾌해진 감정으로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거나 스킨십을 시도하곤 했다. 그러나 잔 감정들이 아주 진득하게 남아있는 나로서는 난데없이 혼자서 화가 풀린 그가 걸어오는 말과 장난들이 일방적으로 느껴졌다. 난 아직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게 싸우면서 알게 된 사실은 우리가 싸움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뿐만 아니라 애초에 생겨먹은 모양부터가 정말 판이하게 서로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이었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우선 우리는 주어진 상황을 해석하는 방법부터가 달랐다. 완전한 감정형이었던 나의 경우 모든 상황들이 감정적으로 큰 동요를 일으켰다. 내가 사고를 당함으로써 여행이 망쳐진 것도, 내 몸이 이렇게 망가지고 다친 것도, 우리가 이곳에 머물러 지내는 것도 '슬프고, 속상하고, 화나고, 미안하고, 고마운' 감정투성이의 일들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철저하게 이성형이었던 남편의 경우 모든 상황들에 감정을 부여하고 이리저리 감정에 휘둘리며 갈피를 못 잡는 내 모습이 답답하고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감정은 드러내고 표현할 것이 아니라 혼자서 느끼고 숨겨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도 그는 너 혼자만 힘든 게 아니라 다 같이 힘든 거니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말하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슬프고 서운해졌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도 차이를 보였다. 무엇이든 문제가 생기면 당장 직면하고 맞서 싸워서 내 손으로 해결해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나와는 달리, 신랑은 문제를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언젠가 혹은 누군가가 해결해줄 수도 있겠거니'라고 느긋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당장 문제가 닥치면 발을 동동 구르며 심각해지는 나로서는 세월아 네월아 천하태평하게 쉬고 있는 신랑의 모습이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해결하고 결정해야 할 상황들이 눈앞에 주어져도 늘 그 문제를 붙들고 끙끙대는 건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이 서운함을 쌓고 싸움을 만들었다.
에너지를 얻고 사용하는 방식도 달랐다. 지극히 외향적이었던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충전하고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뿜어내면서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힘든 상황일수록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고 사람을 찾았다. 그래서 항상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는 지금의 환경이 많은 힘이 되어주었고 나는 늘 든든하다 느꼈다.
그러나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향적이었던 그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에너지를 충전하고 사람을 만나면 에너지가 소진되는 사람이었다. 그는 힘들수록 에너지를 얻기 위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 사람을 피했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복작대는 이 집이 신랑에게는 너무나도 버겁고 지치는 환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나의 경우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의견이 분명하고 자기주장이 강해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다른 사람이 따라오게 만드는 설득파에 인데 반해, 남편은 중요한 문제가 아닌 이상 크게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누군가가 이끄는 방향대로 끌려가는 무념 파였다. 이전에는 나의 의견대로 따라와 주는 남편이 좋았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을 때마다 답답하게 느껴졌고, 신랑은 계속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다 하려는 나의 모습을 독단적이라고 생각했다.
평상시 크게 두드러지지 않고 있던 우리의 다른 성향들은 사고 이후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인해 더욱 양극으로 치우쳐서 나타났다.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진행되면서 그런 차이들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는 참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마치 전혀 모르는 사람과 결혼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싸울 것인가
셀 수 없이 많은 전쟁을 벌여오면서 깨달은 것은 이런 부부싸움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전혀 다르게 생겨먹은 두 사람이 30년 넘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그런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과 같았다.
부부싸움은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그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부족하거나 모난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수단이 되어주고, 스스로 혹은 상대를 통해 그것들을 보완해 가도록 도와줄 수 있는 도구로 쓰일 수 있었기에, 현명한 싸움이라면 피해야 할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서로가 되기 위해 꼭 거쳐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지냈던 것이 현명한 싸움을 연습하기에 참 좋은 조건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피 터지게 전쟁을 벌였지만, 혹여나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칠까 큰소리를 내는 대신 조곤조곤 차분하게 싸웠다. 그 덕에 감정적이고 극단적으로 번지는 싸움은 해본 적이 없다.
단순히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내뱉는 감정적인 말들은 상대방과 자신을 돌아보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어떻게든 상흔을 남기기 때문에, 극단적인 감정싸움의 경우 하지 않느니만 못한 어리석은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항상 방밖에 도사리고 있는(?) 가족들 덕에 싸우기 위해 싸우는 어리석은 싸움 대신 똑똑한 싸움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쟁이 쉬웠다는 것은 아니다. 둘 중 하나라도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사상자가 발생하거나 누군가 항복을 하기 전까지 그 치열한 전쟁은 결코 쉽게 끝나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 번씩 싸우면서 드러나는 유사한 패턴들을 발견할 때마다 적어도 다음 싸움에서는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로 약속하고, 감정이 격해지려 할 때마다 가족들에게로 도망쳐서 시간과 거리 두는 요령을 키웠다. 또 싸울 때는 이성으로 대화하려 노력했고 화해할 때는 감정을 담아 진심으로 풀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 현명한 싸움을 위한 나름의 비결이었다.
몇 번의 치열한 싸움 끝에 우린 동상이몽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 '혼자 있고 싶은 그'와 나는 함께 있고 싶었다. 가족들과 함께 있다가도 어느샌가 슬그머니 방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그의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그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가도 그는 잠을 청하거나 책을 읽으며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버렸다.
같은 공간 안에 있으면서도 함께 있지 않다는 느낌, 그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두꺼운 벽이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는 늘 지금 같이 있지 않냐고 되물었다. 내가 원하는 함께 있음은 단순히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감정이 연결되어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었기에 우린 함께 있지만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깊은 한숨과 함께 그가 입을 떼었다.
" 입사 후 3년 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단 하루도 마음 편히 쉬지 못할 만큼 바쁘게 지냈어. 결혼을 준비하는 6개월 간 눈코 뜰 새 없이 휘몰아치는 일들을 해내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결혼 후 퇴사를 하고 바로 이 여행을 떠나오면서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것 같아.
쉬엄쉬엄 여행하며 나를 돌아보고 너와 단둘이 시간을 보내고 싶었는데 사고를 겪고 지금 이렇게 있으니 '가끔 내가 누군지, 뭘 하고 있는지'조차 혼란스러워. 나에게 생각을 정리하고 힘을 비축할 시간을 허락해줘.
간절히 쉬고 싶고, 사실.. 혼자 있고 싶어. "
항상 싫은 내색 없이 뭐든 괜찮다고 해왔던 그였기에 그에 입에서 나온 힘들다는 말이 낯설지만 무겁게 다가왔다. 순간 함께 보내온 지난 몇 년 간의 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며 '쉬고 싶다'는 그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그가 이해되었고, 안쓰러웠으며, 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문득 과거에 철없고 천방지축이었던 내가 무슨 일을 벌이고 돌아다니건 '잘 할 수 있다' 고 지지하며 묵묵히 지켜봐 주었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그를 지지하고 지켜봐 주었던 적이 있던가. 늘 내가 바라는 것을 요구하고 원하는 대로 끌고 가려했을 뿐 나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받아들이고 존중해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사람, 끝까지 내 곁에 남을 이 유일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겠다 싶었다. 나는 그와 함께 있고 싶은 나의 욕심을 버리고 그가 바라던 '혼자 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방을 나왔다.
누군가 그랬다.
남자는 힘들 때 한 번씩
자신만의 동굴에 들어간다고.
예전에 내가 동굴에 들어간 그를 '나를 버리고 혼자 동굴에 들어간 나쁜 놈'이라고 탓하는 '여자친구'였다면, 지금의 나는 동굴로 들어가는 그에게 도시락을 싸주고 '잘 다녀오라' 등을 두드려 줄 수 있는 '아내'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동굴 밖에서 그가 나올 때를 잠자코 기다리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