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존경받는 지도자 아타튀르크가 말했다.
안탈리아는 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얼마 전 재판할 때 필요한 서류에 공증을 받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안턀랴라는 도시를 찾은 적이 있다. 해변을 따라 걸으면서 내가 살던 부산과 닮았다는 생각에 정이 갔었는데, 맑고 청명하게 푸른 바다와 골목골목 만개한 꽃들을 보며 도시 구석구석이 너무 이쁘다는 생각을 했다.
마마와 바바를 따라 넘어온 콜크텔리는 젤리하가 살던 데니즐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골이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동네 농장의 칠면조나 남의 집 담벼락에 피어있는 꽃들을 구경하는 것 정도? 지루함에 말라비틀어져가던 우리는 둘이서 안탈리아를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몸이 성치 않은 두 사람이 봇짐 하나 덜렁 메고서 다른 도시로 떠나겠다 하니 온 가족이 걱정스러워했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꼭 가야겠냐' 묻는 두 분께 잠시 놀러 다녀오겠다고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지만 사실 이번 안탈리아행은 우리에게 꽤나 큰 의미가 있었다.
첫 번째로 누군가의 도움 없이 둘이서 자력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확인을 하고 싶었고, 두 번째로 언젠가 마주하게 될 이들과의 이별을 연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우리는 마치 20살, 부모님의 품을 벗어나 처음 낯선 곳으로 떠나던 그때처럼 조금은 설레고 꽤 많이 비장한 마음을 갖고 안탈리아로 향했다.
안탈리아에 도착한 우리는 둘이서 여행하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숙소를 잡아 짐을 풀고, 시장에서 장을 보고,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끼니때마다 밥집을 찾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그때만큼 빠르게 걸을 수 없고, 100m 정도 걷고 나면 벤치에서 쉬어줘야 했으며, 밖에 나갔다 오면 2시간 이상 낮잠을 자줘야 된다는 것 정도? 하루 반나절을 돌아다니고 나니 숙소에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었다.
단순히 체력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우리에게 주목되는 이목들이 부담스러웠던 것도 크다. 당연히 오른팔에 나란히 깁스를 한채 엉금엉금 돌아다니는 우리 모습이 익숙하지 않아서였겠지만, 현지인부터 관관객들까지 어딜 가나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것이 신경 쓰이고 피곤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며칠을 지내면서 한 골목을 지날 때마다 커진 눈으로 'What happened to your arm(팔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을 연발하며 다가오는 사람들과 수십 번 마주하는 사이, 구구절절한 설명 대신 '한바탕 치고받았다'는 제스처와 함께 너털웃음을 짓는 여유가 생겼다.
자유롭고 에너제틱하던 예전과는 달리 벤치에 앉아 멍을 때리거나 고양이를 쫓아다니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럼에도 오랜만에 느끼는 여행이 몹시 만족스러웠다. 또 다른 방식으로 여행하는 법을 배워가는 기분이랄까? 비록 많은 노력과 에너지가 들긴 했지만 누군가의 도움 없이 둘이서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 뿌듯했다.
당신이 선물한 최고의 신혼여행
그날 우리는 지중해의 뙤약볕을 받으며 정수리가 시뻘겋게 익어가도록 걷던 중이었다. 더위를 식힐 겸 벤치에 잠시 앉아있는데 한국에서 연락 한 통이 날아왔다. 친한 동생인 노콩이었다.
'드디어 다 됐어~!'
'갑자기 뭐가 다됐다는 거지?'
궁금한 마음에 열어본 카톡에는 한 편의 영상이 전송되어 있었다. 이게 뭔가 싶어 열어보니 영상 속에서 익숙한 그림이 나타났다. 우리였다. 영문도 모른 채 영상의 주인공이 된 우리는 한참 동안 입을 벌리고 앉아 몇 번이고 그 영상을 돌려보았다. 이게 뭐냐 물으려는 찰나 그녀가 장문에 카톡을 보내왔다.
' 여행을 못하게 되어 많이 속상할 것도, 지금 당장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을 마음도 안다. 그러나 지금은 여행에 욕심부리기보단 우선 몸부터 추스르고 다시 다음을 기약하면 좋겠다. 그대들을 대신해 여행을 떠나 줄 그림을 그렸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돌아오라는 마음에서 선물을 보낸다.'
그녀는 연락을 주고받을 때마다 '어서 몸을 회복해서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말겠다' 노래를 부르는 나에게 늘 '까불지 말고 얌전히 있다가 회복되는 즉시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었다. 나는 대답 대신 늘 두고 보라는 듯 호언장담했지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여행을 지속할 수는 없다는 걸.
그녀는 마치 일상을 평온히 살아내다가도 이따금씩 혼자서 한숨짓는 내 모습을 알기라도 하는 듯 한마디 한마디로 나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그녀는 걱정스러운 말과 진지한 조언을 대신 이 그림을 그려 보낸 것 같았다.
그녀가 보내준 그림 속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 내가 그녀 앞에서 신나게 읊어대던 그 나라들로 떠난 우리가 두 팔을 벌린 채 활짝 웃고 있었다. 배낭여행자였던 우리가 가진 거라곤 목 늘어난 티와 물 빠진 바지 쪼가리뿐인데, 그림 속 우리는 세계 각국의 형형색색의 꼬까옷을 걸치고 있었다.
우리에게 제일 예쁜 옷을 입혀 멋진 곳으로 보내주기 위해 몇 시간이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몇 날 며칠 그렸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한 장 한 장. 그리는 내내 우리를 생각했을 그녀의 애정이 담긴 그림이 어떻게든 이 여행을 지속시켜보려 궁리하던 내 뿔난 욕심을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비록 우리 둘은 가지 못했지만 그림 속 우리는 가고 싶었던 그곳을 여행하는구나..'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비죽비죽 거리던 입가에는 이내 웃음이 걸쳐졌다. 마치 진짜 내가 그곳에 있는 것 마냥 기분이 몽글몽글 해졌다.
그날 나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SNS에 올려놓은 카파도키아 열기구 사진이나 다합의 다이빙 사진을 마주할 때면 '나도 갈 수 있었던 곳'이라는 생각에 멈칫하다 얼른 스크롤을 내려버리곤 했다.
그녀에게 선물을 받은 후로 나는 그런 순간이 올때 마다 얼른 폰을 꺼내어 들고 그녀가 그려준 그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러다 보면 갑자기 찾아왔던 안 좋은 생각들이 사그라들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나에게 그려준 그 그림들은 내가 지금까지의 생애 받아본 그 어떤 선물보다 귀하고 소중한 선물이다.
내 인생에 다시없을 신혼여행을 망처 버렸던 내가 눈물을 닦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었던 선물.
나는 그녀로부터 최고의 신혼여행을 선물 받았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여행을 계속할까 말까 고민하며 욕심을 내어 시도했던 작은 여행들은 매번 우리에게 지금은 '행자'가 아닌 '환자'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지금의 상태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분명한 욕심이고, 지금은 고집을 부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여행에 대한 미련을 조금씩 내려놓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행을 포기해야 한다는 게 속상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마음이 좋지 만은 않았지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럼에도 여행을 중단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택의 기로에서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을 선택했던 우리에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건 '여행'이 아닌 '치료'였으니까.
안탈리아 여행을 통해 달성하려고 했던 2가지 목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 여행을 하면서 계속해서 여행을 지속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엄마가 해주는 밥과 거실 소파가 그리워 하루빨리 집에 가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이별을 연습하려던 우리의 생각은 바보 같았지만, 머지않아 맞이하게 될 우리가 없는 그들의 삶과 그들이 없는 우리의 삶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Evim Evim güzel evim
(Home my sweet home)
달콤한 나의 집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간다.
수박과 빵을 사놨다며 얼른 오라는 마마와 바바, 벌써 우리를 그리워하는 젤리 하가 있는 코르크 델리, 또 다른 가족이 있는 우리 집으로.
못다한 터키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