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사고를 당한 그날 이후 수백 번도 넘게 던진 질문이다. 대체 이 사고가 일어난 이유가 뭘까? 만약 내가 터키에 가지 않았더라면, 카우치서핑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녀를 호스트로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10분, 아니 단 1분 만이라도 더 늦게 그곳을 지나갔더라면.. 이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왜 그랬냐'고 묻고 묻고 또 물었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 없는 그가 야속했던 나는 '제가 얼마나 이 여행을 준비하고, 기대하고, 원했는지 잘 알면서.. 왜 그 사고를 막아주지 않았나요?'라고 애꿎은 신을 자주 원망했다.
신혼여행으로 세계일주를 떠난 부부가 얼마나 많은데, 다들 한 두 달은 커녕 몇 년 동안도 잘만 돌아다니던데 왜 우리는 여행을 시작한 지 20일 만에 2번째 국가에서 이렇게 깨박살이 난 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사고나 사건을 만난 대부분에 사람들이 그렇듯 나 역시도 '왜 하필 지금, 나에게 이런 일이'라는 의문이 가시질 않았다.
다들 나아가고 있음에도 우린 멈춰 서야 한다는 사실이, 나아가고 싶음에도 멈춰 설 수밖에 없다는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는 많지 않고, 이렇게 흘려보낸 시간은 두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데..이곳에 묶여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것에 조급했다.
침대에 누워 한참을 툴툴거리는 나에게 남편이 메모장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4개의 문장이 적혀있었다.
1. 인간의 회복 능력은 뛰어나다. 며칠이면 새살이 돋고 1달이면 뼈가 붙기 시작한다.
2. 경제적 기반을 닦아 내가 도움을 주고 싶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3. 인생은 덧없고 건강이 최고다. 그러니 아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도록 놔둬야겠다.
4. 다시는 아내를 혼자 여행시키지 않는다.
남편은 사고를 겪은 뒤 일을 해야 하는 이유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해 깨달으면서 삶의 방식에 대한 막연한 마음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는 내게 이 사고를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다. 나는 지금껏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만 곱씹어왔을 뿐, '여기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그제야 이 사고를 겪으면서 느낀 것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이 두려웠던 나에게 이 결혼은 세계일주를 떠나는 것보다 더 큰 모험처럼 느껴졌다. 인생의 후반부. 늙고, 병들고, 가난해질 모습을 상상할 때 마다 나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찰 나의 삶과 상대방의 삶이 한데 뒤엉켜 비참하고 끔찍해질 거라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러나 병원 신세를 지면서 병들고, 힘없고, 약해진 상태로 지내는 동안 그런 나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하나만으로도 감당하기에 벅찬 것'이 아니라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매번 혼자가 아님에 안도했다.
오른손이 부서진 우리는 옷을 입고 벗는 것부터 먹고, 씻는 것까지 서로를 의지하지 않고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마치 아기 때로 돌아간 듯 서로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것을 함께 도왔다. 온전하지 못한 우리 두 사람은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며 하나가 되어갔다.
우리는 아무리 친한 친구, 심지어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보여줄 수 없을 것 같은 못나고 부끄러운 모습까지 서로에게 가감없이 모두 보여주었다. 그것은 부부라서 가능한, 부부만이 가능한 것이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서로가 있음에, 우리가 결혼을 했음에 감사했다.
이 사고를 통해 나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결혼에 관한 걱정' 대신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에 대한 소중함'을 얻었다.
우리는 하루 종일 붙어있으면서 지금껏 미처 고민하지 않았던(할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며 미뤄왔던) 문제들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떻게, 무엇을 위해, 어디를 바라보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관해 나누던 그 시간들은 우리가 자기 자신과 서로에 대해 미처 몰랐던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일어나야 할 일이라면 결국 어디서든 반드시 일어나고 만다. 사고 이후 내가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시간들이 내 삶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그 사고는 꼭 터키가 아니더라도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일어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멈춰있는 이 시간들이 내게 필요했던 이유가 뭘까? 문득 네팔에서 만난 사장님이 해준 이야기가 생각났다. '네 몸이 내게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던 그의 말처럼 내게 필요한 것은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 아니라 '무언가를 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조급해하고, 계속해서 뭔가를 해내기 위해 나 자신을 닦달하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스스로 버겁다 느끼면서도, 계속 아닌 척 모른 척 덮어놓고 달려가던 나를 멈추기 위해 이런 시간이 주어진 걸지로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하지않았다면 나는 멈추지 않았을테니까.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아가지 못해 답답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것 같았다.
나는 내게 필요했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었다.
어리석은 질문에서 벗어나게 된 이후로 나는 모든 것을 망쳐버린 신에 대한 원망 대신 내가 배워야 할 것을 구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사고를 통해 무엇을 느꼈는가
그리고 이 사고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 글을 써내려가는 지금 이순간에도 나는 계속해서 이 질문에 대한 답들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 사고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을 모두 깨닫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더 걸릴지 알 수는 없지만, 내 판단에 따라 그저 억세게 운이 나빠 생긴 재수없는 사고가 되어버릴 수도, 내 삶을 바꾼 일생일대의 사건이 되어줄 수도 있다는 건 안다.
내가 속단하고 절망했다면 이 사고는 신혼여행을 망쳐버린 원흉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사고로부터 무언가를 배우고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상 그것은 나를 단단하게 성장시킬 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짐한다.
나는 이 사고를 웬수가 아닌 은사로 키워내고 말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