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rdur 지역에서 교통사고 발생
6명 부상자 중 2명은 한국인 관광객
사고 다음날 아침. 터키 지역신문에 뜬 우리의 사고소식을 보면서도 내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남들에게만 일어날 것 같았던 일이 지금 나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나는 터키 한 소도시의 병원에 입원해 있는 중이 맞았다.
병원에서의 하루
매 끼니 배달되는 음식 냄새를 맡으면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약을 먹으려면 뭐라도 먹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도통 속이 메슥거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종일 굶다 보면 배가 고팠지만 까끌대는 입안으로 호밀빵을 씹어 삼킬 자신이 없었다.
화장실을 가보겠다며 몸을 일으켰다가 문밖을 나서자마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깜짝 놀란 Zeliha의 부모님이 달려와 의료진을 불렀고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온 후에야 의식을 회복할 수 있었다. 그 후로도 같은 일은 반복되었고 그 뒤로 꼬박 이틀을 침대에만 누워있었다.
늦은 오후 간호사 한 분이 상처를 드레싱 하겠다고 찾아왔다. 반깁스와 붕대를 풀고 팔다리를 걷어올린 순간 나는 눈을 의심해야 했다. 몸 중에서 가장 아끼는 곳이 곧게 뻗은 내 다리였는데.. 사고 당시 생긴 상처들로 양쪽 다리는 성한 곳이 없었고, 탈골과 둔상의 충격으로 피가 차올라 퉁퉁 부어있었다.
일어설 때마다 피가 터져 흐르고, 멍 때문에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는 다리를 보고 있자니 눈물이 났다. 오른팔 앞뒤로 그어진 큼지막한 수술 자국은 마치 내 팔이 아닌 듯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 팔 안에는 커다란 쇠막대기 2개가 박혀있다고 했다.
결혼 후 드린 첫 어버이 날 선물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한국 영사관과 보험사에 연락을 해서 사고를 접수하고 현지 경찰들을 만나 사고 경위를 진술한 뒤 조서를 작성했다. 한국에서도 겪어본 적 없는 일들을 외국에서 해내려니 막막했지만, 많은 이들이 두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준 덕에 큰 어려움 없이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우리에게는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것은 양가 어른들에게 이 소식을 알리는 것. 사고가 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우리에게 와볼 수도 없는 상황에서 교통사고 소식을 알리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칠까 망설이는 사이 어느덧 한국의 어버이날이 되었다.
어찌 되었든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우리는 드릴 말씀이 있다며 두 분께 같이 영상통화를 하자고 했다. 생전 안 하던 영상통화를 하자는 아들딸의 연락에 부모님들은 내심 손주 소식을 기대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나란히 오른팔에 깁스를 한채 거지꼴이 되어있는 우리의 모습이었다.
놀라는 어른들께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한 뒤 연신 웃으며 다 괜찮다고 했다. 몸도 잘 회복되고 있고, 모든 일들도 잘 해결되어가고 있으며, 여기 사람들도 너무 좋다고. 걱정하던 어른들은 우리들의 웃는 얼굴에 조금 안심을 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그날 전화를 끊은 뒤에도 나는 한참 동안 전화기를 내려놓지 못했다. 알 수 없이 먹먹해진 마음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이곳에서 사고가 나서, 지금 이 모습들을 직접 부모님께 보여 드리지 않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를 살려준 사람들
입원 3일 차 1층 정원에 산책을 갔다가 우연히 우리를 이곳에 데려다준 구급차 운전기사님을 만났다. 우리를 알아본 그는 우리의 안부를 물어왔고, 그를 보자마자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며 울었다. 그는 담담히 자신은 사명을 다했을 뿐이라며 우리의 쾌유를 빌어주었다. 그 너른 땅 위로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가 있던 그 외딴곳까지 달려와 준 그에게 감사한다.
사고 당일 수술 집도를 맡았던 주치의 Doctor Challar 선생님은 그 지역에서 소문난 정형외과 의사였다. 미국까지 유학을 다녀온 그는 그 병원에서 유일하게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분이기도 했다. 매일 예약환자들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그에게 응급수술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운이 좋아서 였다.
매일 아침 회진을 돌 때마다 사람 좋은 인상으로 껄껄 웃던 그는 '너희가 가진 낙천적이고 좋은 아우라 덕분에 빠른 속도로 잘 회복되고 있다'며 늘 우리를 안심시켜주었다. 아마 그가 명의로 소문난 것은 그의 의술뿐만 아니라 환자들에게 베푸는 진심 어린 마음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입원해 있던 일주일 동안 Burdur 주립병원으로 실습을 나온 간호대 생들이 있었다. K-drama를 보고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그 소녀들은 작은 도시의 한 병원에 찾아온 한국인 부부를 무척이나 신기해했다. 수액 하나를 갈기 위해 10명 남짓이 들어와 꺄르르거리다 사라지는 모습이 못내 귀여웠다.
그들은 도통 밥을 못 먹고 있는 나를 위해 어디선가 구해온 컵라면을 갖다 주기도 했고, 실습이 쉬는 날에 몰래 찾아와 우리를 씻겨주기도 했다. 며칠 째 씻지 못해 매일 역대급 꼬질함과 못생김을 갱신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도 연신 이쁘다고 말해줬던 그들은 천사임에 틀림이 없다.
터키의 나이팅게일 Zehra, Devrim, Buse, Dilek
이들 외에도 우리는 병원에 머무르는 내내 참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았다. 한 명 한 명의 의료진들과 직원들 모두 일일이 번역기를 돌려가며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애썼고, 옆 병실에 지내던 이웃 병실 주민들은 오며 가며 우리에게 들러 과일과 간식들 챙겨주었다.
만약 아무 연고 없는 이곳에서 사고를 당해 둘만 덩그러니 있었다면.. 안 그래도 느리게 가는 병원 시계가 멈춰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마치 우리 부모님 인양 우리를 간호해주는 Zeliha의 부모님과, 전국 각지에서 찾아와 위로해주는 zeliha의 친척들 덕분에 전혀 타국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를 볼 때마다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안타까워하며 'Mashalla, Inshalla' 하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던 그들이 있어 우리는 낯선 땅 한가운데, 이 낯선 병원생활을 견뎌낼 수 있었다.
처음보는 우리에게 다가와 기꺼이 우리의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준 그들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