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무리를 한 탓인지 온몸이 아팠다. 살을 파고드는 한기에 가져온 옷들을 겹겹이 꺼내 입고 1층으로 내려갔다. 오늘이 4일 중 가장 빡센 하루가 될 거라며 겁을 주는 Shailen에게 벌써 피곤하다며 엄살을 부렸다.
문을 열고 나오니 칠흑 같은 어둠이 앞을 가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산길. 헤드랜턴을 끼고 앞서가는 그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어두운 산속 저 먼 곳에서 마치 밤하늘에 별무리가 이동하듯 랜턴 불빛이 줄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보였다. 해가 떠오르길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이 설렘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어슴푸레하게 여명이 밝아오자 그 빛을 받은 설산이 깨어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숨어있던 안나푸르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도란대는 침묵을 뚫고 사람들 입에서 탄성 터져 나왔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
처음 보는 장관에 한참 넋이 나가 있던 우리는 가방 속에서 준비해온 것들을 주섬주섬 꺼내 들었다. 여행지에서 멋진 곳을 방문할 때마다 웨딩 스냅을 남기고 싶어, 이번 트레킹을 시작할 때 가방에 이것저것을 챙겨 온 참이었다.
갓 해가 떠오른 3200m 고산지대의 추위 속. 모두가 장갑에 모자까지 끼고 있는 그곳에서 얇디얇은 원피스와 셔츠로 갈아입는 우리를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봤다. 화관에 보타이까지 챙겨 매고 사진을 찍기 시작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모여들었다.
"저희는 얼마 전에 결혼한 부부예요. 지금은 신혼여행 중이랍니다."
우리가 왜 그곳에서 그 얼어 죽을 차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된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결혼을 축하한다며 환호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일출이 주는 감동으로 가득 찼던 그곳이 순식 간에 새롭게 시작하는 두 사람을 향한 축하로 가득 찼다.
내 생에 가장 높은 곳에서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축하. 그날 그곳에서 받은 축하는 내 평생에 받은 그 어떤 축하보다 특별하게 남아있다.
그날 그곳에서 본 일출과 설산의 장관, 그리고 그 추위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폭우가 데려다준 인연
마지막 날 묵을 숙소가 있는 간드록으로 가는 길. 숙소까지 30분 남짓 남은 지점에서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비를 입고 한참을 걸어가다가 결국 앞이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 급히 오두막으로 몸을 피했다. 잠시 후 우비도 없이 비에 쫄딱 젖은 외국인 2명이 오두막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한참을 기다려 보아도 비는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정해진 숙소도 없이 날은 저물어가는데 발까지 묶여버린 그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들의 사정을 들은 Shailen은 우리가 묵을 숙소에 전화를 걸어 방을 구해주었다.
그날 우연히 한 오두막 아래 비를 피하던 우리는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됐다.
샤워 후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에 모인 우리는 그제서야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었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스페인에서 왔다던 이 커플은 우리 얼굴을 보자마자 '오늘 아침 푼힐에서 결혼한(?) 사람들 아니냐'며 반색을 했다.
'퐌' 혹은 '콴' 혹은 '환'과 여자친구 '안나'
그날 밤 우리는 3박 4일간에 트레킹을 무사히 마친 것을 함께 축하하며 한국산 고추참치와 스페인 산 하몽을 안주삼아 밤이 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산이 가르쳐준 것들
트레킹 마지막 날, 새벽 4시부터 시작된 등산은 오후 4시까지 12시간 넘게 이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쉬기를 반복했고, 가끔 롯지를 만나면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산을 타는 것에 집중하는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잡념은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신랑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서로를 살뜰히 챙겼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별 것 아닌 것들에도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등산이라면 손사래를 치는 나였지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신랑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산을 타면서 이렇게 즐거워 한 적이 있었던가 싶다
오르막이 나오면 올라가고 내리막이 보이면 내려가고. 숨이 차면 잠시 쉬었다가 잦아들면 다시 걷고. 땀이 나면 옷을 벗고 땀이 식으면 다시 옷을 걸치고...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산을 오르는 동안 내가 했던 그 모든 행위들은 그저 이치와 순리를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졌다.
이따금씩 사람들과 마주치면 '나마스테'라 짧은 인사를 건네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그 인사 속에 담긴 것은 그의 안녕과 안전을 바라는 마음뿐. 다른 것은 없었다. 그 사람 막대기가 새 건지, 그 사람 등산복이 얼마나 비싼 건지, 그가 어디까지 오르는지 따위엔 신경 쓸 필요도 여력도 없었다.
문득 '산을 탈 때 그 모습과 마음처럼 이 삶을 살아갈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단순하게, 순리대로, 지나가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면서...
할 수 만 있다면 지금 이곳에서도, 산을 타던 그때의 나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산' 사람 Shailen
사실 트레킹을 시작할 당시 나는 산을 타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산을 타본지 무척 오래됐을 뿐만 아니라 부실한 내 다리가 4일이나 버텨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인솔해 줄 가이드라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를 본 순간 나는 '그와 함께라면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인도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여느 네팔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흡사 몽골인과 비슷한 인상을 풍겼다. 검게 그을린 피부에 다부진 체격, 쌍꺼풀 없이 길고 매서운 눈매를 가진 그는 야생에서 자란 사람처럼 눈에서 빛이 났다.
꼭 필요한 말 외에 말을 아끼는 그였지만 그는 행동으로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그는 꼭 필요할 때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모든 상황에서 그는 우리에 필요를 먼저 알아챘고 우리가 요구하기 전에 미리 그 필요를 채워주었다.
우리가 파이팅 넘칠 때는 '할 수 있다'는 독려를 아끼지 않았고, 우리가 뒤쳐질 때는 '서두르지 말자'며 함께 머물러 주었다. 그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가 원하는 것을 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 산행을 시작하기 전 힘을 북돋워 주던 짝대기 크로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란 그는 산사람(mountain man)이었다. 나보다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산을 오를 때면 그의 뒷모습이 아주 커 보였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바라보고 살아온 산들에 대한 경외심과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3박 4일간 그와 함께 하면서 나는 그가 산사람(mountain man) 일뿐만 아니라 산사람(Living man)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포터들을 배려할 줄 알았고,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산에서 살아온 그는 눈빛이 살아있고, 행동이 살아있고, 온정이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우리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산을 오르내리면서 만났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그를 최고라고 칭찬했다.
단언하건대 그가 없었다면 나는 이 트레킹을 시작하지도, 마무리짓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 히말라야는 많은 것들로 기억된다.
몸집보다 더 큰 짐을 지고 산을 오르던 사람들과 그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노새 무리, 한 발자국 건너 한 덩이씩 푸지게 놓여있던 똥 무더기와 가는 곳마다 새빨갛게 물들어 산행에 피로를 씻어주었던 란리구란스 까지. 많은 것들이 저마다의 느낌으로 가슴에 남아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들보다도 깊고 진한 기억을 남기는 것은 나에게 항상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히말라야는 Shailen으로 기억될 것 같다.
산에서 내려온 지 며칠 뒤 Shailen의 초대로 그의 집을 방문했다. 함께 있는 동안 가끔 말로만 전해 들었던 그의 두 딸과 아내를 직접 만나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리야 말로 그의 도움과 보살핌 덕에 즐거운 산행을 할 수 있었는데, 되려 그는 자신을 존중해주고 챙겨주어 고맙다며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네 가족이 살고 있는 단칸방에 앉아 그의 아내가 만들어준 달밧을 먹고 난 후, 큰 딸이 그린 그림과 끼 많은 막내의 재롱잔치를 구경하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BTS 때문에 한국을 좋아한다던 둘은 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을 사랑한다고 했다.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근처 마트에서 불닭볶음면과 신라면을 양 손 가득 샀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그와 연락을 이어갈 수 있도록 여분으로 가져온 휴대폰 중 하나를 선물했다.
낡고 작은 폴더폰을 쓰던 그도 이제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과 매일 마주하는 멋진 산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