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 라즈!
오랜만이다!
이게 얼마 만이야~
여행 첫날 중국 청두에서 만난 네팔 청년 Razz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그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며칠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의 친구 Xummit의 소개로 따라간 곳은 티베트 음식을 파는 현지 맛집이었다.
'우리가 쏠 테니 먹고 싶은 건 다 시키라'고 큰소리를 쳤던 나는 그들이 시킨 템툭(Thamthuk)과 모모(Momo)를 보자마자 며칠 굶은 사람인양 다 먹어치웠다. 그들은 볼이 미어터지게 만두를 쑤셔 넣는 나와 그릇째 국물을 들이켜 대는 신랑을 보며 '너희들 혹시 티벳에서 왔냐'고 물었다.
지난 며칠 간의 네팔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때 즈음 갑자기 그의 친구가 Razz에게 네팔어로 조용히 몇 마디를 건넸다. 우리를 빤히 바라보던 Razz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물어볼 게 있다고 했다. 그들이 던진 질문은 다름 아닌
'Are you Christian?'
(너희 기독교인이니?)였다.
순식간에 찾아온 잠깐의 정적.
뭐라고 대답할까 고민하는 사이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독교인인 걸 어떻게 알았지', '혹시 기독교인을 싫어하나?', '힌두교가 많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슬람교인인가?', '맞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짧은 순간 동안 내 머릿속에선 만두집에서 나가자마자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되어 죽임을 당하는 비극적인 결말에 소설이 씌여졌다. 그러나 이곳에서 죽게 되더라도 거짓말을 할 수는 없다는 비장한 결론에 이른 나는 흔들리는 동공으로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숨 막히는 침묵 혹은 차갑게 변한 대답을 예상했던 나에게 그는 잇몸 만개 미소를 머금고 반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 We are also Christain!'
(우리도 기독교인이야!)
무엇이라. 기독교?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란 우리는 '어쩌다 너희가 기독교인이냐?'고 되물었다. 국교인 힌두교를 믿는 사람이 80%가 넘고, 티베트 불교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네팔에서 기독교인을 만나다니. 그것은 중국에서 말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던 며칠 전 그 순간보다 더 놀라운 만남이었다.
아직은 완전한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이곳 네팔에서 극소수인 크리스천을 만날 가능성은 0%에 가까운 일이라고 했다. 신앙생활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주고받던 내가 신기한 표정으로 '어떻게 우리를 알아봤냐'고 묻자 그들은 '하나님이 가르쳐줬다'며 깔깔 웃었다.
모든 게 신기했던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오고서야 그 말에 뜻을 깨달았다. 그날 내가 입은 티셔츠에는 아주 큼지막한 글씨가 쓰여있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고.
그날 밤 하게 된 뜻밖에 커밍아웃 덕에 우리는 신기하리만큼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단지 같은 신을 믿는다는 이유 만으로 이렇게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도가 쉽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 스스로도 놀라웠다.
다음 도시로 떠나기 전 남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매일 그와 함께 했다. 그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해 얼마 전 우리 결혼식을 회상하며 물개 박수를 치기도 하고, 그가 소개해 준 작은 교회 공동체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음에도 그들은 생전 처음 보는 이방인인 우리를 진심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카트만두를 떠나기 전날 밤 우리는 숙소 옥상에 모여 깊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가 털어놓은 고민은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 없었던 신앙과 공동체에 대한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직은 스스로가 크리스천임을 밝혔다가 이 도시에서 추방당하게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또한 그가 속한 공동체에 수용되기 위해서는 항상 신앙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사회적으로 떳떳해야만 한다며, 끊임없이 좋은 사람이기 위해 노력하는 게 버겁다고 했다.
'네가 믿는 신이 내가 믿는 그 하나님이 맞다면 두려워하지 마. 그가 너를 만들었고 너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으니 그를 믿고 모든 걸 그의 손에 맡기면 좋겠어. 우리는 인간이니 언제든 잘못하고 실수할 수 있어. 그로 인해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에게서 등을 돌려도 그분은 너를 떠나지 않을 거야.'
온 힘을 다해 전하려고 노력한 나의 마음이 그에게 얼마나 전해졌는지는 모르겠다. 한국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신앙에 대한 생각들을 짧은 영어로 전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부디 그를 향한 나의 진심이 내 눈과 목소리, 그리고 맞잡은 두 손을 통해 조금이나마 그에게 전해졌기를 바란다.
만약 우리가 그날 그 호텔 로비에서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우린 아마 평생 이 세상에 서로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에게 카트만두는 좀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그저 강렬한 인상을 준 다소 충격적인 도시로만 남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우연한 만남 덕에 나는 머나먼 네팔 땅에 친구를 얻었고, 그 덕분에 카트만두는 진한 여운과 함께 사람 냄새 물씬 나는 따뜻한 도시로 기억되었다.
이번 여행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 그에게 감사한다. 또 그를 보내준 신에게 감사한다.
그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그가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P.S ㅡ 우리는 그 뒤로도 계속 그와 연을 이어왔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안부를 물으며 진한 우정을 갖게 됐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대만에서 열리는 그의 결혼식에 다녀왔다. 궁금하다면 이곳에서 영상을 즐기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