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끝, 여행 시작.

첫 여행지가 어디라고?

신혼여행 어디로 가?
...
뭐? 거길 왜가?

청첩장을 전해주며 결혼 소식을 알리던 그 당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 중 하나가 '신혼여행은 어디로 가니?'였다.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신혼여행은 '일생에 단 한 번뿐인 호화로운 여행' 혹은 '결혼식 이후 재충전을 위한 휴양 여행'을 의미했기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낭만이 넘쳐나는 유럽의 어느 나라' 혹은 '에메랄드빛 해변을 가진 어느 나라'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리의 대답은 2곳 중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다.


우리의 대답을 들은 사람들은 대게 2번 놀라는 반응을 보였다. 우선 10일이 아닌 100일간의 배낭여행이라는 것에서 한 번, 그리고 그 첫 여행지가 네팔이라는 것에서 또 한 번. 사람들은 '대체 신혼여행을 왜 배낭여행으로 떠나는 거냐'고, '근데 왜 또 하필 첫 여행지가 네팔이냐'며 우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이런저런 질문들을 덧붙여 되묻곤 했다.


결혼 준비 초기 여행의 시작점으로 생각해 둔 나라가 몇 곳 있었다. 4월 송크란 시즌에 맞춰 떠날 수 있는 태국 치앙마이가 그중 하나였고 우리도 허니문 느낌 내면서 좀 쉬었다 가자는 의미에서 인도네시아 발리도 물망에 올라있었다. 그러나 그 어느 곳도 내 성에 차지 않았다.


그 여행지들이 별로였다기 보단 우리가 떠날 '특별한 신혼여행'에 걸맞을 만큼 특별하지 않게 느껴져서였던 것 같다. 그렇게 좀 더 특별한 곳을 찾느라(혹은 정신없이 결혼 준비를 하느라) 아직 첫 여행지를 정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우연한 기회로 만난' 누군가가 '우연히' 들려준 한 나라가 마음에 쿵하고 들어왔다.


그 나라는 다름 아닌 '네팔'이었다.




여행의 시작은 고난과 함께

출발 전날도 어김없이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거실 중앙에 와글와글 쌓아뒀던 여행 준비물들을 가방에 마구마구 욱여넣은 것이 새벽 4시였으니, 2시간 즈음 눈을 붙이고 일어난 참이었다.


집을 나서는 길에 흘끗 본 현관 거울 속에는 눈 밑을 시커멓게 물들인 채 몸집 만한 배낭을 짊어진 우리가, 마치 긴 여행에서 돌아온 행자마냥 초췌한 몰골로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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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싸기 직전까지 거실 중앙에 쌓여있던 우리 짐들 (#숨은 고양이 찾기) / 출국 직전 인천공항에서

여행을 떠나는 설렘은 개뿔. 2주 간의 여행 준비로 기진맥진해 있던 우리는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와 첫 경유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는 내내 죽은 듯이 잠만 잤다. 온종일 비몽사몽간에 실려다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중국 청두의 경유 호텔에 도착해 있었다.


내일 새벽 첫 비행기를 타기까지 아직 한참 남은 시간. 이제 피로도 풀었겠다 '출출한데 뭐라도 좀 먹어볼까' 하고 호기롭게 방을 나선 우리는 채 로비를 벗어나기도 전에 깨달았다. 우리에겐 돈이 없다는 걸.


재빠르게 호텔 로비로 돌아와 대책회의를 시작했다. 현금인출기에서 돈을 조금만 인출하거나, 가지고 있는 작은 달러로 소액만 환전을 하자는 대안을 세우고서 호텔 프런트 데스크를 찾아갔다.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배가 고픈데 돈이 없다고, 중국돈이 필요하다고 사정을 설명했더니 그들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NO'라고.


NO. 없다라.. 무엇이 없는 걸까. 우리에게 줄 돈이 없다는 걸까, 여기서는 환전을 못해준다는 걸까, 근처에 ATM이 없다는 걸까, 아님 지금 이 시간에 문을 연 식당이 없다는 걸까. 구구절절이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여 아무리 설명을 해보아도 그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여전히 'NO'뿐이었다.


배가 고픈데.. 정말 고픈데.. 뭐라도 좋으니 제발 먹고 싶은데.. 종일 먹은 거라곤 공항에서 먹은 빵조각이 전부였던 우리가 한참을 씨름하다 제풀에 지쳐가고 있을 그때,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Can you speak english?'


삼십 평생 이 질문이 이렇게 반갑게 들린 적이 있었던가. 큰 눈을 꿈뻑이며 우리에게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어오는 그 남자에게 나는 있는 힘껏 큰 소리로 대답했다. 'YES I CAN!' 네! 영어! 할 줄 압니다! 알아요!


마치 10년 전 잃어버린 동생이라도 찾은 양 반갑게 인사를 나눈 우리는 통성명도 없이 한참동안 대화를 나눴다. 어쩌다가 영어가 반갑게 됐는지,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내 배가 얼마나 고픈지에 관해.


5분 뒤, 우리 셋은 함께 그 호텔을 나섰다.


그때까진 아무도 몰랐다. 그날의 그 우연한 만남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다 주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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