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준비라는 전쟁

그 전쟁에 임하는 자세


우리 결혼하자.
결혼이 장난이야?
장난인 줄 알았지
근데 장난 아니네..



그와 그녀가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후 결혼식까지는 6개월 남짓한 시간이 있었다. 간소히 결혼식을 올린 후 둘이서 함께 자유롭게 세상을 누비겠노라 비장하게 다짐했건만, 그 다짐은 본격적인 결혼 준비를 시작하고 얼마 안 가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미리 예상했던 벽부터 미처 생각지 못했던 벽까지.. 두 사람은 이 벽 저 벽 부딪혀가면서 결혼이라는 것이 아이들의 소꿉장난이 아닌 어른이 되기 위한 인륜지대사라는 것을 깨달아갔다.


첫 번째 벽은 두 사람의 집에서 마주했다. 두 자식들이 갑자기 결혼을 하겠다는 걸로도 모자라, 갑자기 직장을 때려치우고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겠다니 양가의 부모님들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결혼에 필요한 모든 과정들을 줄이거나 생략하고 모든 돈을 여행에 몰빵 하겠다는 생각부터,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에 돌아와서 집을 구해보겠다는 발상까지.. 어른들로써는 모든 것들이 신박하다 못해 어이가 없었으리라.


결혼을 둘만의 문제라 생각했던 두 사람은 각자의 부모님과 대화를 통해 결혼 계획을 하나하나 설명하고 필요에 따라 수정해나가야 했다.


두 번째 벽은 여행 이후의 삶에 관해 생각하던 중 나타났다. 여행을 끝으로 이 생을 마감할 것이 아니라 여행을 다녀온 후 본격적인 삶을 살아나가려면 우선 돌아와 살 집이 필요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살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억 소리 나는 돈이 필요했기에 여행은커녕 지금 가진 것을 다 털어도 가질 수 없었다.


아련한 눈빛으로 '저 수많은 건물과 아파트들 중에 왜 우리집은 없을까'를 중얼대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과 복지제도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퍼붓는 게 전부인 그녀와는 달리 그는 아주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주택 사이트를 매일같이 뒤졌고, 때마침 선물처럼 나타난 집을 낚아채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생각지도 못한 신혼집을 갖게 되었고 그녀는 하루아침에 대한민국을 복지국가라 찬양하게 되었다.


집이 생기니 그 집을 채울 것들이 필요했다. 집채만 한 냉장고부터 손가락만 한 티스푼까지..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건이 그렇게나 많은 줄 처음 알았다. 기껏 해봐야 본인의 물건을 사본 것이 전부였던 두 사람은 평소 써오던 금액에 1개 혹은 2개 이상의 0이 더 붙은 물건들을 결제했다.


그리고 매일매일 평생 받아본 택배보다 더 많은 택배들을 받으며 마치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듯한 기분으로 혼수를 마련해갔다. 다시는 오지 않을 탕진의 재미를 만끽하면서.



이 결혼은 '본말전도'일세

상견례를 하고, 예식장을 잡고, 웨딩촬영을 하고, 청첩장을 찍고 접고 나눠주고. 40분짜리 결혼식을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왜 그리도 많은지.


끝날 듯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수많은 것들을 해나가는 동안 시간은 훌쩍 흘러 어느덧 결혼식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이사를 준비하는 동안 그는 퇴사를 준비했고, 모든 준비는 결혼식 전날까지 계속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하지 않으려 했던 것들은 해버린 후였고 그로 인해 정작 하려 했던 것들은 하지 못한 상태였다. 기약 없이 떠나려던 세계일주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고 경제적으로 그것이 가능하다 한 들 해낼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그들의 여행은 1년에서 6개월로, 다시 3개월로 줄어들었다.


사실 여행을 가기 위해 결혼을 하려 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 결혼을 하느라 여행을 갈 에너지를 다 써버렸다. 그들이 결혼을 준비해가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이 결혼은 본말전도'라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겐 본말이 전도되어 버린 셈이다.



자! 이제 시작이야!
뭐?이제 시작이야?


이제 겨우 결혼식 하나 끝냈을 뿐

모든 결혼 과정이 끝난 후 그들이 느낀 것이 '떠나게 될 여행에 대한 기대'였는지, '떠나야만 하는 여행에 대한 부담'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2주 뒤 출국하는 비행기 티켓 이외에는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았고, 3개월 간의 배낭여행을 준비하기에 그들은 몹시 지쳐있는 상태였기에 다가올 여행이 그들에게는 또 다른 과업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추측만 할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해냈다. 기진맥진한 상태로 매일 새벽 4시까지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하면서, 기나긴 여행의 루트를 짜고, 예산을 잡고, 항공권을 예약하고, 준비물을 사고, 각종 접종을 하러 다니며 결혼식 전보다 더 분주하게 시간을 보냈지만 결국 그들은 준비를 마쳤다.


물론 그 덕에 출국하기 전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이 여행을 접네 마네', '이 결혼을 엎네 마네' 싸워야 했지만. 그래서 출국 당일엔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마치 아주 고된 여행을 끝낸 행자 같은 몰골이 되어버렸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결국 떠났다.


이 기나긴 이야기는 놀랍게도 한 남자와 여자가 대충(?) 결혼을 준비하고 본격적인(!) 신혼여행을 떠나기까지의 단편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앞으로 이어질 기나긴 이야기들의 서막이자 시작인 것이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여행을 떠난 미친 여자와 그녀를 미친 척 따라간 남자가 어떤 여행을 했을지 기대되는 마음으로 다음 이야기를 기다려보자.


혹시 모른다. 미친 애들이니 생각보다 재미있을지도.




예상했다시피 위의 이야기는 앞으로 풀어가고자 하는 나의 이야기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대로 이 글이 좀체 쓰이지 못했던 것은 나의 망설임 때문이었다.


결국 이 모든 여행이 나로 인해 시작되었고, 그 선택의 결과가 나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 두려워 이 글을 쓰기까지 망설이고 또 망설였나 보다.

그러나 내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마주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안다. 결국 모든 것이 과거의 내가 내린 선택이었고 지금의 내가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지고 있다는 것.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기 위해 이 글을 쓰려고 한다.


아직 적지 못했지만 결혼을 하기까지 차마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 모든 일들을 구구절절히 풀어대자면 시작부터 눈물을 쥐어짜야 할 판이라 무거운 이야기를 덜어내려 애썼다.


최대한 가볍게 거리를 두고 풀어내려 한 나의 시도가 '쓰는 이'와 '읽는 이'들 모두의 부담을 덜어주기를 바란다.


휴,

자 그럼 이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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