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목돈의 위력

먀통 상환 프로젝트 9

by 단아정담

차 할부금을 납입하는 동안, 흥청망청 즐거운 여행을 준비하는 동안, 몇 달 째 마이너스 통장 금액은 몇 십만 원 씩 줄기도 하고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가계부 쓰며 의지를 다져서인지 몇 백만 원씩 확확 늘어나지는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그래도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늘어나면 그 달은 너무 상심스럽더라고요.


마이너스 통장 갚기가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중, 추석 상여금으로 조금의 목돈이 들어왔습니다. 물론 목돈의 개념은 모두 다르겠지만, 급여 외에 돈 나올 구멍이 없는 저에게는 백만 원 단위의 추가 수입은 모두 목돈입니다. 여행 다녀오니 생활비가 조금 줄어서 지출은 평소와 같은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드디어 지출이 수입보다 적어지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추석 상여금으로 몇 달만에 마이너스 통장 잔액을 줄여보아요.


그리고 배우자가 때 아닌 상여금을 조금 받아왔습니다. 무슨 명목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뭔가를 잘 했나 봅니다. 엉덩이 툭툭 두들겨 주면서 고생했다고 한 마디 하고 그대로 마이너스 통장에 넣습니다. 이 덕분에 지지부진하던 마이너스 통장 상환 프로젝트가 급작스럽게 성공리에 끝났습니다?!




분명히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대출로 갈아탄 1억 4천만 원은 아직 남아있지만, 몇년 간 가계를 어지럽히는 주범이었던 마이너스 통장을 드디어 모두 상환했으니 말이에요. 배우자에게 드디어 마이너스 통장을 플러스로 전환하는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그간 고생했다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스로에게도 지치지 않고 마이너스 통장 갚아내느라 고생했다고 위로를 보냈고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목돈은 목돈으로 갚을 수 밖에 없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연초에 목돈이 들어올 때 마이너스 통장을 가열차게 갚아 나가다가 목돈이 끊긴 후에는 거의 상환을 하지 못했습니다. 매월 수입과 지출 맞추기에 급급했지요. 그렇게 몇 달을 끌어오다가 결국 목돈이 들어오고 나서야 마이너스 통장 상환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매달 배우자과 제가 정기적으로 벌어오는 수입과 저의 가족이 고정적으로 지출하는 금액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남은 대출을 상환하면서 아이 학자금과 노후자금을 모을 수 있을까 걱정이 되더라고요. 수입은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반면, 지출은 주의하지 않으면 몇십만 원 정도는 금방이고 백만 원 단위까지도 너무나 쉽게 늘어납니다. 지출에 늘 신경쓰면서 부족하다 느낄 정도로 지내야 월에 몇 십만 원 남는데, 그렇게 남긴 몇 십만 원을 모아 억 단위의 대출을 갚고 목돈을 모을 수 있을까요?




성과급 많이 주기로 유명한 S그룹에 다니는 직원들은 힘들어서 종종 회사 그만둬야지 생각한다고 합니다. 단, 시기는 성과급 받고 나서요. 다음해 초에 성과급을 받고 나면 생각한다고 합니다, 한번 더 받고 그만둬야지. S그룹 직원들은 그렇게 1년씩 회사생활을 연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과급이 한창 많이 나올 때는 연봉의 50% 까지도 나왔다던데, 월 몇 백씩 받는데 익숙하다가 통장에 몇천만 원이 꽂히면 정말 좋겠다 싶습니다.


평범한 월급쟁이가 천만 원 단위의 목돈을 만질 일이 그리 흔할까요. 흔히 말하는 꿈의 연봉 1억이어도 12개월로 나누면 월 833만원, 세금 떼면 월 600만원 수준이라는데요. 연봉의 50%, 아니 30%라도 성과급을 받으면 적당히 새 옷도 한두벌 사고, 부모님께 용돈도 조금 드리고, 가까운 해외나 국내로 가족여행 한 번 다녀와도 돈이 남을 것 같습니다. 통장에 8자리 숫자가 한 번에 찍히면 얼마나 든든할까요. 대출을 갚아도 이자가 한 달에 몇 만원은 줄어서 갚았다는 티가 나겠지 싶습니다.


그렇지만 배우자와 저의 통장에 그렇게 큰 금액이 찍힐 일은 없습니다. 배우자와 저는 개미라는 생각이 듭니다. 비스킷의 작은 조각조각을 주워 온전한 비스킷 하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몇십만 원 씩 모아 천만 원 단위의 마통을 갚아내고 있는 거죠. 작디 작은 비스킷 조각을 모으다가 조금 큰 조각을 몇 개를 주워 겨우겨우 조그맣지만 완성된 비스킷을 만들어 냈습니다. 조그만 조각만 모으다가 지쳐 나가 떨어지기 전에 말이에요. 비스킷 큰 조각, 목돈이 없었다면 조그만 비스킷 하나를 완성하는 데, 줄이고 줄인 마이너스 통장을 갚아내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요?

keyword
이전 08화할부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