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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부 인생

마통 상환 프로젝트 8

by 단아정담

목돈 입금 기간이 지나고 몇 달 동안 발생한 적자로, 마이너스 통장 잔액이 증가했습니다. 배우자와 저의 급여도 월 10만원씩(?!) 오르고 나름 예산 가이드라인을 잡은 덕인지 예전처럼 월마다 백만 원 단위로 적자가 나지는 않았지만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습니다. 차 할부금 납입이 끝나는 날이요. 물건 산 기분은 이미 다 냈는데 꾸역꾸역 돈을 내는 기분이 상쾌하지 않아서 가급적 할부는 쓰지 않지만, 차는 금액 단위가 크니 어쩔 수 없더라고요. 계절 시간 가리지 않고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니 그나마 다행이었죠. 가계부 쓸 때는 부담이지만, 넓고 편안한 차를 탈 때면 이게 돈 값이지 하는 기분도 들었으니 말이에요.


차 할부금 납입이 끝나니 살 것 같았습니다. 매월 백만 단위 금액이 사이버 머니처럼 빠져나가다가 통장에 남는다는 생각만 해도 감개무량합니다. 매월 적자였던 가계부라서, 전부는 아니지만 차 할부금으로 나가던 금액 대부분을 마이너스 통장으로 넣는 상상만 해도 두근두근합니다. 몇 개월이면 마이너스 통장 다 갚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이렇게 간단히 정리될 마이너스 통장이었다면, 이렇게 커지지도 않았겠죠.




일이 바빠 여름휴가도 가지 못한 배우자가 극성수기인 추석 연휴에 여행을 가자고 합니다.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중년의 낀 세대 소심한 직장인인 저와 배우자는 비성수기 평일에 며칠씩 휴가를 쓰는 건 상상조차도 하지 못하거든요. 여름휴가도 제 때 못쓰는 걸요. 저도 마음이 동해 둘 다 마음 편한 추석을 노려봅니다.


전 국민이 쉬는 추석이다 보니, 이미 비행기 값은 비수기의 세 배로 뛰었습니다. 해외 호텔들도 한국 추석 시즌을 노리는 것 같아요, 숙박 가격이 비수기의 배 이상 이네요. 그래도 늘 열심히 지내는 배우자가 쉬러 가자는데 어쩔 수 없지요. 저도 복직 2년차를 맞아 열심히 지냈고, 아이도 여행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셋이 쿵짝이 맞아 한껏 값이 오른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했습니다.


할부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이 부끄럽게도 항공권은 많이 비싸 할부로 구입해요. 호텔도 오래 묵는 곳은 비싸서 할부로 결제합니다. 항공권과 호텔 할부금이 3개월 동안 차 할부금만큼 나오네요. 어쩌면 이렇게 비슷하게 나오는지요. 적자가 더 커지지 않는 것은 다행입니다만, 3개월 동안은 마이너스 통장은 현상유지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이왕 갔으니, 아끼지 않고 즐겁게 지냈습니다. 현지 분위기 물씬 나는 관광지와 시장도, 해외인지 한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음식점과 마사지샾도 두루두루 들려봅니다.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물가가 그렇게 저렴하지 않더라고요. 한국보다 약간 싼 정도인 것 같아요. 다녀와서 정산해보니, 역시나 차 할부금만큼 썼네요. 어쩌면 이렇게 딱딱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차 할부금 지불이 끝나고 딱 그만큼의 돈으로 할부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차 할부 끝났다고 마음이 풀린건가 싶어 걱정이 되다가도 일 년에 한 번 휴가인데 더 큰 돈이 들지 않아 다행이다 싶기도 했습니다. 내년부터 여행갈 돈은 꼭 따로 빼 놓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남은 기간 동안 꼭 차 할부금 만큼은 마이너스 통장으로 넣으리라 다시 한번 허리띠를 졸라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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