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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 일을 줄이자 완성도가 높아졌다.

40대 워킹맘이 자체 부여한 육아휴직 이야기

by 송수연


이제 아기가 1살이 되었습니다.


43세 겨울, 아기를 낳기 전까지 일에만 빠져있어도 괜찮았던 저는 아기를 낳고 지난 1년 동안 커리어우먼과 아기 엄마라는 두 가지 큰 역할을 잘 해낼 수 있도록 예행연습을 한 듯합니다. 좌충우돌 곤란한 일들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적응이 되어 양대산맥과 같았던 두 역할은 이제 제 몸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저는 아기가 4개월이 되던 2024년 4월, 다시 업무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곧 아기를 맡아줄 수 있는 외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시는 강동구로 이사를 했지요. 아기는 엄마가 일하는 동안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냈습니다.


지방 출장을 가서도 저녁이 되면 집으로 쪼르르 달려와 아기를 재우고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나가곤 했습니다. 그러니 잘하고 있다고, 출산 후에도 마치 출산 전과 같이 일하는 저를 스스로 대견해했지요.


일할 수 없게 되는 게 싫어서 출산이 싫었던 건데 이 정도면 출산도 꽤나 할만한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일찍 복귀하니 몸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고 제 삶은 똑같은데 그저 예쁜 아기가 덤으로 생긴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8시간 강의를 하러 가서는 쉬는 시간마다 아기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문득, 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아 내가 지금 밖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6개월짜리 아기를 맡겨두고!




모든 부모가 평생을 아기의 유아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하죠. 전 현재 아기의 유아 시절을 보내고 있음에도 그 소중한 시간을 실감하지 못한 채 아기와 떨어져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아무리 일이 좋다지만 아기의 세월은 엄마를 기다려주지 않고 무심히 지나가버릴 테니까요.



아기가 3살이 될 때까지 스스로에게 육아휴직을 부여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선 한시적으로 일주일에 2번 이상 일하지 말자고 결심했죠. 물론 가끔 하는 수 없이 하루를 더해야 할 때가 있었지만 결코 세 번은 넘기지 않았습니다.



어느 주에는 이미 일하는 날이 세 번이 꽉 채워졌는데 아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들어와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제가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었던 회사인 맥도 XX의 신규 입사자 교육을 의뢰받은 것입니다. 저는 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거절했고 후회는 없습니다. 다음에 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답니다.



그렇게 일을 줄이고 자주 아기와 시간을 함께 했지만 아기는 여전히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엄마와 있을 때도 할머니가 오면 발발 기어가서는 안아달라고 보채지만 할머니와 있을 때 엄마가 가면 오든지 말든지 그야말로 본체만체였으니까요.


이대로도 괜찮은 걸까? 실제로 나는 아기의 엄마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걸까?


만일 엄마의 역할을 아기가 정해준다면 과연 나에게 엄마 역할을 줄까?


2024년 겨울, 아기가 자는 시간을 틈 타 <2025년을 위한 송수연의 셀프 워크숍>을 하면서 제가 가진 여러 역할 중 아기 엄마의 역할을 1순위로 결정했습니다. 기존의 잘하는 일은 계속하되 완전히 새롭게 과정개발을 해야 하는 일은 아기가 3살이 되면 그때 하는 것으로 정했죠. 그리고 고객들에게도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전달하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일을 줄이자 오히려 일의 완성도가 높아졌습니다.




이전에는 일이 마무리될 때쯤 스스로에게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오히려 만족스러운 감정이 더 자주 듭니다. 고객들에게도 훨씬 좋은 평가를 받게 되어 놀랍습니다. 왜일까요?


우선순위를 정해서 스스로 단단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만, 진실은 좀 더 탐구해봐야 할 듯합니다.




아기는 두 살까지 엄청나게 빨리 자란다고 합니다. 실제로 지난 일 년을 돌이켜보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랐습니다. 그 모든 순간을 눈에 담는 것은 어렵겠지만 가능한 많은 장면을 눈에 담고 싶습니다. 이 시간은 결코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요.



마흔 중반이 될 때까지 생산적인 활동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고 살았던 송수연은 아기와 함께 외계어를 하고 도형 맞추기를 하고 노래가 나오는 버튼을 누르는 시간을 몇 시간씩 보내다 보면 마음에 불안이 찾아옵니다. 왠지 짬을 내어 일도 해야 할 것 같거든요. 아기가 잘 때를 틈 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압박을 받다 보니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틀렸습니다. 지금 이 시간은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아니거든요. 아기와 보내는 시간도 충분히 생산적입니다. 저의 오랜 습성에서 비롯한 생산 강박은 자주 찾아오지만 그때마다 새롭게 생각 (Reframing) 하려고 합니다.




아니,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게 아니야.
이렇게 아기와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나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가치 있는 일이야.





오랜 시간 켜켜이 쌓인 저의 습성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생각을 고쳐먹고 있습니다마는 괜찮습니다! 이렇게 수백 번 수천번 강박적 생각을 고쳐먹다 보면 아기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값진 시간이라고 자연스레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잖아요?



드디어 아기와 함께 하는 시간 그대로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미 아기가 다 커버려서 엄마보다 친구, 엄마보다 애인이 좋다고 떠나가버리면 그도 곤란하니까 지금의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로 합시다!




안녕하세요! 워킹맘 송수연입니다.

후훗.

딩크족일 때는 여러 날 출장 가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지금은 아주 곤란해졌습니다. 그래도 눈칫밥 먹으면서 호텔 침대에 누우면 언제 곤란했냐는 듯 꿀잠 자는 절 보며 인생이 무지하게 풍부해졌다고 새삼 깨닫습니다.


집에 가면 아기가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오르는 중년이지만 아직 새내기 아기엄마입니다


그럼 이번 주도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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