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는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실은 나는 우리 아기가 태어나서 10개월까지의 사진을 모두 잃어버렸다.
아기가 태어난 뒤, 주변인들은 내게 아기의 사진을 가능한 한 많이 찍어두라고 조언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찍어둘걸 후회한다며. 특히 동영상을 많이 찍어두라고 했다. 사진보다야 찍기 번거롭겠지만 그 감동은 오래 남을 테니 퍽 맞는 말이다 싶어 틈만 나면 주야장천 아기의 영상을 찍어두었다. 아기의 탄생부터 쭉 모아둔 사진과 영상은 그야말로 나의 보물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사진이 완전히 날아가버렸다?
아기가 4개월이 되던 달이었다.
도무지 핸드폰을 찾을 수 없었던 그날 오후는 무지하게 날씨가 좋았다. 나의 핸드폰은 애초에 발이 달렸으므로 자주 마실을 나가 찾기 어렵기 때문에 보이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흥얼거리며 핸드폰을 찾다가 문득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쿵쿵 쿵쿵' 봄 이불을 빨던 세탁기 속에서 무언가가 세탁기의 벽을 치며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마 설마 아닐 거야 하며 세탁기를 열어보니 그곳에 나의 봄 이불이 물에 빠진 핸드폰을 처절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난 단지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저 이불 빨래를 했을 뿐인데... 넌 왜 거기 들어가 있니....?
설마 설마... 사진은? 영상은?
아니야 침수폰은 살릴 수 있댔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사망해 있는 핸드폰을 들고, 한 손에는 4개월 아기를 들쳐 안고 핸드폰 복구 센터로 쳐들어갔다.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아기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사진이 전부 들어있다고요!
결론은... 돈만 무지하게 쓰고 핸드폰은 살릴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통돌이 세탁기 이불 빨래 모드로 두 시간 넘게 물속에 잠겨있었으니..... 영원히 잠들 수밖에. 그와 함께 아기 사진도 모조리 사라졌다
그날 이후, 처음으로 산후우울증이 왔다.
아기가 태어나고 처음이었다.
가만히 있다가도 눈물이 났다. 마치 아기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바보 같은 나. 어떻게 그 소중한 추억을 하루아침에 날릴 수가 있니. 완전히 멍청해진 기분이었다.
우울증은 하루하루 날로 심각해져가고….. 급기야는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으러 갔다.
의사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의 뇌는 아기와 연결하기 위해 일부러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아기가 3살이 되면 자연히 뇌의 기능이 좋아져요.
그때까지 벌어지는 실수는 엄마 탓이 아니에요. 그냥 신체가 그렇게 변하는 것이랍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동안 내게 일어났던 멍청한 일들이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다. 나는 출산 100일 이후부터 복귀하여 다분히 고기능적인 일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는데 어느 경우에는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완전히 잊어버리기도 했다. 출산과 함께 뇌를 낳아버렸다는 사람들의 말이 이런 걸까 싶었지만 믿지 않았다. 나는 제대로 기능해야 했고 그렇게 기능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아기 사진이 날아갔을 땐 모든 희망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내게 소중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사진 덕분에 출산 후의, 그러니까 딩크 커리어우먼이 아닌 워킹맘이 된 나를 제대로 직면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출산 우울증을 치료하러 갔던 정신과에서 나는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
이 모든 게 나의 실수가 아니라니! 이 모든 것이 우리 아기를 위해서이고 3년 후에는 나의 뇌기능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니. 이처럼 완벽한 행복이 어디 있을까!
그날 이후로 나의 우울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핸드폰 속 사진은 사라졌지만 40대 딩크였던 내가 얼마나 아기를 사랑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나는 이제 40대 딩크가 아니다.
나는 이제 엄마다.
나는 이제 엄마다. 엄마.
안녕하세요!
송수연입니다.
정말로 무지하게 슬펐던 사건이었는데 말이지요.
이렇게 여러분께 털어놓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하군요! 껄껄
저는 그 이후로 새로운 프로젝트는 정중히 거절하고 쉬운 일만 골라하고 있답니다.
3년 후에는, 두고봐라. 아주 새로운 일들만 쏙쏙 골라할테니! 하는 마음으로 말이지요. :)
오늘도 행복하세요!
아기가 없던, 있던, 당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고, 앞으로도 계속 행복할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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