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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빽언니 Jun 05. 2024

흉기 들고 윗층 만나지 말고

위층 아랫층 같이 손 붙잡고 국회로 처들어가서 따지자

중국에서 살던 미국인 선생님이 택시를 타고 기가 막힌 일을 당했다고 하소연을 했던 일화가 떠올랐다. 중국어를 거의 못하는 미국인 선생님은 택시기사가 시끄럽게 틀어놓은 음악소리를 좀 줄여 달라고 손짓을 하며 부탁을 했다고 한다. 그래도 말이 안 통하자 폰을 이용해서 번역앱을 돌려서 보여줬다고 한다. 그러자 기사는 "내 차에서 내가 음악을 크게 들든 말든 네가 왜 난리냐?"라며 번역앱에 써 줬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디자이너의 AI 이미지 크리에이터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고 한다. 목숨 맡기고 있는 입장에서 더 이상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았지만 화가 난 듯 완강한 택시기사의 말도 안 되는 개떡 같은 서비스는 집에 도착하고 택시운임을 지불하면서도 공포스러웠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층간소음 칼부림뉴스가 있다. 이제 놀랍지도 않다. 

층간소음이 시끄럽다고 위층에 가서 항의하면

내 집에서 내가 뛰거나 말거나 네가 왜 지랄이냐?라고 대꾸하는 사람도 있다.

한 두 번 말했지만 말이 안 통했다고 폭력을 행사하거나 그냥 칼로 찔러 죽이는 사람도 가끔 뉴스에 등장한다. 택시는 다른 거 타면 되지만 거주는 그렇게 하루에 한 번 바뀌는 게 아니지 않은가?. 


사회구성원으로 사는 우리들의 권리라는 게, 각자 자신의 집구석에서는 나름 귀한 자식새끼들이었기 때문에 우리들의 소중한 권리는 이렇게 마냥 지꼴린대로 살면서 부딪혀도 되는 걸까? 일단은 힘이 세거나 목소리 큰 놈의 권리가 우선이 되면 되는 걸까? 


법이나 제도는 이 따위의 상황을 컨트롤하기 위해 있어야 한다. 문법도 그렇지만 법은 항상 나중에 생긴다. 인간들의 말이 이상하게 변해가도 그 말이 그 사회가 받아들이고 고정적인 표현으로 굳어진다면 문법으로 자리 잡고 사전에 실리는 어휘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인간들의 권리가 자꾸 부딪혀서 이상한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면, 그걸 다루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 소중한 자신의 권리만이 최선의 가치가 있다고 지랄을 떠는 것들을 통제하고 제재하기 위한 제도가 일이 터진 후에라도 생겨야 한다는거다. 


층간소음살인이 나오지 않으려면 소음이 생기게 지은 아파트나 건물은 절대 허가를 내주지 않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 여태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고통을 주고받고 찌르고 죽이고 난리부르스를 했다.  


올해부터 국토교통부가 신축 공동주택 건설 시 층간소음 기준에 미달하면 준공을 불허하는 등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지만 이미 지어진 집들은 여전히 칼부림의 여지가 남아있는 거다. 아파트에 대한 최소한의 층간소음 가이드라인이 생겼지만 이미 건축된 공공주택의 경우 개선된 제도의 해택을 볼 수 없는 실정이다. 다가구주택과 원룸 등 다중주택은 건축법에서 단독주택으로 분류돼 이곳에서 발생한 소음은 층간소음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따라서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중재 대상에서도 제외돼 있다. 부산과 경남 등 일부 지자체가 층간소음 관리 대상을 다가구주택 등 공동주거시설로 확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법적 사각지대가 큰 실정이다.


오랜 세월 위층 아래층이 칼부림하면서 싸워 왔는데 '그냥 분노조절 못하는 이상한 애들의 얘기'로 치부하고 뭉기적거리고 법안 하나 제대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끼리는 직접 싸워오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우리의 삶을 제도가 너무 못 따라가는 이유는, 우선 내 일이 아니니까 나 몰라라 하는 구성원들의 이기심에 플러스, 맨날 당대당으로 싸움질만 하는 국회가 놀고 자빠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민생에는 관심이 없고, 에브리데이 자신들이 다시 재집권해서 완장질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느냐 아니냐에만 초점을 맞추고 몰입되어 있다. 


저들의 싸움은 TV뉴스에 그 어떤 걸러냄도 없이 생중계된다. 


안 볼 권리는 그냥 TV나 뉴스를 끄는 방법뿐이다. 우리는 두 놈 다 꼴 보기 싫은 데 다른 녀석에게 일을 좀 맡겨보고 싶은데... 안된다.  다음 선거에도 또 이당 아니면 저당에서, 그 나물에 그 밥을 섞어 주는 대로 그중에서 골라 먹어야 한다. 잠시 고개 숙인 그들의 참한 연기를 보면서 역겨워도 다시 그들 중에서 또 기어 나오는 누군가를 뽑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악순환이다.  3선 의원, 4선 의원이상은 진짜 말도 안 되는 고인 물인 거고 여러 목소리를 내는 소수의 정당이 자라지 못하는 우리 정치권의 모습은 참 아쉬운 일이다. 


유권자들도 떼거지로  몰려있는 곳에만 표를 주는 습성을 바꿔야 할 것이다. 안 그러면 계속 윗층 아랫층 모두 흉기들고 이웃을 만나러 다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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