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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혁신파크 Feb 18. 2021

쓰레기의 위기, 인류의 위기

[사회혁신 트렌드리포트 2]

‘쓰레기 박사’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홍수열 소장은 우리가 맞닥뜨린, 쓰레기로 인한 위기 상황을 일컬어 ‘교통사고가 났다’고 표현했다. 그리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만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 국한되지 않은, 전 지구적 사고. 우리가 처한 쓰레기 문제는 그만큼 심각하다.

홍수열 /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쓰레기 문제를 연구하는 박사가 되셨나요.

대학 때부터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환경운동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래서 환경 대학원에 진학했죠. 처음부터 쓰레기 문제를 공부하겠다고 특정 지은 건 아니었는데, 한 선배에게 잘못 걸렸어요. 한참 쓰레기 문제를 공부하고 연구하던 선배였는데 그는 가버리고 나만 남아서.(웃음)


환경이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들려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시나요.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인 1990년대를 일컬어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대중 소비 사회로 진입한 시기라고 합니다. 사치품 규제도 풀고 대중이 소비를 누릴 수 있도록 부추겼는데, 이와 동시에 쓰레기 발생량이 급증했어요. 그 결과 난지도 매립지가 포화되었고, 그 대안으로 수도권 매립지와 대형 소각 시설을 지었죠. 민원이 어마어마했어요. 그때 건설한 인프라로 20년을 버텼죠. 그리고 지금 인프라의 한계점에 도달했어요.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건 1995년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하며 재활용 체계를 구축하고, 소각장과 매립지에 유입되는 쓰레기의 양을 줄였기 때문이죠.


우리는 지금 배달 천국인 코로나19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인류가 헤쳐 나가야 할 팬데믹 상황이 쓰레기 문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든 건 국제 상황의 변화예요. 중국이 폐기물 수입을 금지하면서 세계적인 국제 쓰레기 처리 분업 구조 자체에 변화가 왔어요. 중국에 의존해서 편하게 재활용해왔는데, 직접 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거죠. 그런데 시스템이라는 게 단기간에 구축되는 것이 아니에요.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쳤죠. 코로나19 때문에 문제가 악화되었다고 이야기하는 건 맞지 않아요. 쓰레기 처리 문제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세계적으로 안고 있었어요. 단지 코로나19로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뿐이죠.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쓰레기 문제 대응책에는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이제 한 가지 방법으로는 안 돼요. 쓸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야 합니다. 단기적으로는 쓰레기 처리 시설을 늘리는 수밖에 없어요. 1990년대에 소각장 설치를 두고 정부와 지자체가 주민들과 대치하며 홍역을 치러왔기 때문에 이 문제를 피하고 싶어 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피하고 싶다고 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하지만 소각 역시 환경에 해가 되지 않을까요. 태울 때 오염 물질이 나올 수도 있고.

물론 문제는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우리가 최선의 대책을 찾을 상황이 아니라는 겁니다. 교통사고가 났다고 생각하면 돼요. 당장 응급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쓰레기를 줄이자, 재활용을 잘하자 하는 것은 수술하지 말고 보약을 먹자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오래 살려면 보약도 먹고 운동도 해서 체질을 개선해야 하겠죠. 그걸 하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지금은 덜 나쁜 쪽을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렇다고 모든 쓰레기를 그냥 태우자는 건 아니에요. 현대화된 소각 시설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검은 연기가 치솟을 것이라거나 쓰레기 냄새가 진동하고 다이옥신 같은 오염 물질을 뒤집어쓸 것이라는 건 모두 편견이에요. 오히려 그 옆에 살면 난방비를 지원받으니 어떤 부분에서는 더 좋죠. 저도 소각 시설 옆에서 15년째 살고 있습니다.


분리수거를 하다가 가끔 분리수거가 쓰레기 문제 해결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재활용의 시작은 분리배출이에요. 용기에 묻은 음식물을 깨끗이 씻어서 분리수거를 하는 것은 소비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생산자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렇다고 쓰레기 문제가 소비자만 실천한다고 해결되느냐 하면 절대 아닙니다. 물건을 생산할 때 재활용할 수 없게 만들면 소비자는 방법이 없어요. 이렇게 소비자의 실천 범위를 넘어서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소비자에게 뭐라고 요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이 경우 ‘쓰레기 우울증’에 시달릴 것이 아니라 그 에너지를 분노로 돌려야 합니다. 나로 하여금 쓰레기에 죄의식을 갖게 만드는 생산자가 문제라는 생각을 갖고 계속 항의해야 합니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해당 제품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소비자 행동입니다.


많은 사람이 분리수거를 까다롭다고 생각합니다.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쓰레기를 버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어릴 적부터 분리수거에 대해 하나하나 교육을 받았더라면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25년간 습관이 밴 상태에서 분리수거 방법을 바꾸려 하니 더 힘들게 느끼는 거죠. 우리나라 분리배출 교육의 문제점은 일방적인 지시형이라는 겁니다. ‘이건 이렇게 버리라’고 말하면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교육하지는 않았어요.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기본 구조를 알고 쓰레기 처리 전체 시스템을 이해한 후 각자 거기서 필요한 정보를 찾으면 되는데 말이죠.


서울환경연합 유튜브 채널에서 ‘도와줘요 쓰레기 박사’ 코너를 운영하고 있고, 얼마 전 <그건 쓰레기가 아니라고요>라는 책도 출간했습니다. 분리수거를 잘못하는 대표적인 사례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우리는 종이를 한꺼번에 섞어서 재활용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종이도 종류가 다양합니다. 따라서 종류별로 묶어야 해요. 예를 들어, 비닐 코팅을 한 종이는 코팅되지 않은 일반 폐지와 섞이면 재활용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컵라면, 아이스크림 컵, 일회용 컵, 팝콘 용기,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쓰는 종이 그릇까지 모두 비닐 코팅을 한 종이로 만들어요. 유리 역시 종류가 다양합니다. 내열유리의 경우 녹는점이 일반 유리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에 다른 쓰레기와 섞이면 안 돼요. 우리나라 분리배출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열심히만’ 한다는 겁니다. ‘정확하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요.


그렇다면 분리수거를 통해 생산한 재생 원료는 잘 활용하고 있나요.

순전히 필요에 따라 글로벌 기업들이 앞장서 투자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재생 원료를 쓰겠다고 발표했고, 코카-콜라와 펩시도 이에 동참했죠. 기업들이 비싼 돈 들여서 재생 원료를 쓴다? 사실 재생 원료를 쓰지 않으면 유럽연합(EU) 국가에 수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원료를 구축하는 것은 산업 경쟁력 확보를 의미합니다. 현 상태로 가면 재생 원료 품귀 현상이 일어날 테고, 5년 이내에 큰 변화가 나타날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 재생 원료의 사용과 이를 위한 투자에 소극적입니다. 잘못하면 실패해서 손실을 볼 수 있으니 서로 눈치를 보는 거죠.



팬데믹 시대에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가 변화를 위해 가장 주목하는 현상과 주력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또 그 변화를 위해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쓰레기 문제는 어떤 한 계층이나 조직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가는 일이 아닙니다. 범위가 워낙 넓으니까요. 그 폭넓은 범위의 쓰레기 문제를 누군가가 앞장서서 다 해결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쓰레기 문제를 고민하는 커뮤니티가 많아져야 합니다. 담배꽁초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고, 바닥의 껌, 비비탄 총알, 하늘에 날리는 풍선, 인공 눈물, 칫솔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죠. 이 많은 사람이 각자의 영역에서 활동하면서 필요할 때 연대해야 합니다. 단일 조직 중심으로 기획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가시적인 성과를 얻으려고 이 문제를 조급하게 생각하는데, 그래서는 안 돼요.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많은 사람을 쓰레기 문제에 입문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쓰덕’이 되게끔 안내하는 거죠. 여기서 조금 더 지나면 저희 역할은 끝날 겁니다. 쓰레기 문제는 워낙 복잡해서 저희가 다 감당할 수 없어요. 중요한 것은 쓰레기 문제를 종합적으로 바라보는 시야,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도록 가이드 역할을 해주는 일이라고 봅니다. 쓰레기에 대한 안내자. 쓰레기 해설가, 통역사 같은 역할이라고 할까요.


글 l 문은정, 사진 l 강민구


* 본 내용은 서울혁신센터에서 기획/발행한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 트렌드리포트> 에 수록된 인터뷰입니다. 리포트 전문은 서울혁신파크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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