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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Feb 12. 2021

마지막 간병일기: 긴 겨울을 함께 걸어준 당신에게

구독자님 전 상서



  안녕하세요, 구독자님들!

  펭귄이에요.

  어쩌다 보니, 민족의 대명절에 인사를 전하게 되었네요 :)


  저의 간병일기는 이렇게 뒤표지를 덮습니다. 몇 개월 전, 처음 글을 쓰기 시작하던 때만 해도 이 일기의 마지막 장을 이렇게 빨리 쓰게 되리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실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이별을 외면해 왔던 건지도 모르겠어요. 아참, 저는 저의 바람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엄마의 곁을 지켰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 없이 홀로 임종을 지켜야 해서 참 많이 힘들고 괴로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엄마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유일한 특권이 저에게 주어졌음에 감사했어요.


  브런치를 시작하기까지 참 많은 고민을 했는데요. 망설임의 가장 큰 원인은 이 삶을 기록하는 일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어요. 처음에는 엄마와 저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언젠가 엄마가 떠나면 세상에 홀로 남겨질 저를 위한 유품으로 남기고 싶다는 다소 이기적인 발상으로 시작했어요. 예상은 했지만,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더군요. 쓸 때마다 너무 마음이 아리고 고통스러워서 쓰는 일이 두렵고 겁이 났어요. 정말이지 수십 번 수백 번 포기하고 싶었어요.

  열 번째 글인가 싶은 글을 발행할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 이렇게까지 우울한 글을 도대체 누가 읽어?'라는 생각이요.

  그래도 이를 악물고 계속 썼어요. 엄마가 좋아했으니까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포기하지 않고 쓰다 보니 처음 겪어 보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작게나마 제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계셨고 비슷한 상황 가운데 계신 루게릭 환우와 저 같은 가족 간병인들이 찾아와 주셨어요. 참 신기했어요. 우리는 각자 간병인으로서의 삶에 철저히 갇혀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뭐랄까,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저의 친구들과 지인들 중 그 누구에게도 엄마의 병명을 말한 적이 없었어요. 이 브런치도 언니 외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어요. 가장 친한 친구들조차도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만 알 뿐, 제가 얼마나 극한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어요. 왜냐면 제 삶이 너무, 너무 견딜 수 없이 비루했거든요. 엄마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능히 견딜 수 있었지만 그래도 비루한 건 비루한 거였어요. 엄마의 기저귀를 갈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몸을 뒤집어 주고, 욕창을 소독하고, 5분 거리의 마트에 가는 것조차 벌벌 떨고, 밤에 잠들지 못하고, 매일 밤 엄마의 몸에 관을 연결해 도뇨(카데터를 통해 소변을 빼내는 것)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요.


  비루한 삶을 힘겹게 떠안고 용기 내어 양지로 나왔어요. 떠날 수 있는 산책은 여전히 집 문 밖의 복도가 전부였지만 이곳에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어 후련한 기분이었어요. 위로해 주신 분이 참 많아서 제가 남길 수 있었던 댓글은 감사하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만약 이 글을 읽게 되시는 루게릭 환우나 그 가족분들이 계시다면, 궁금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저라고 특별히 아는 게 많은 건 아니지만, 이 고독한 병과 홀로 싸워가는 과정들이 얼마나 힘든지 가장 잘 아는 사람이기에.. 아주 작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 글들을 쓰는 데는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애꿎은 키보드에 굵은 눈물을 뿌리며 써 내려간 밤들이 쌓여 이렇게 되었네요. 저는 주로 밤에 글을 썼습니다. 낮에는 제정신으로 쓰기가 어려웠고, 우는 모습을 가족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잊으려 넣어 둔 기억들을 애써 헤집고 문장을 이어 붙이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때로는 키보드에 손을 올려둔 채 한참을 망설였고 때로는 욱, 하고 치밀어 오른 감정을 견디지 못해 구역질하듯 울음을 쏟아냈습니다. 깊어가는 밤의 자락 어딘가, 제 모든 문장들은 무수히 흐른 눈물을 마시고 서글프게 자라났지요.




  이건 비밀인데요. 엄마가 돌아가시던 날 오전, 머리를 감싸고 보호자 침대에 앉아 있다가 문득 브런치고 뭐고 다 때려치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에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 부족한 글에 함께 울어주시고 기도를 보태 주시던 분들, 제 글로 인해 위로를 받으셨다던 분들이 자꾸 생각이 났어요. 제 글을 읽으려고 브런치 어플을 깔아주셨다던 감사한 분도 계셨고요. 길게 진동하며 울리던 알림들이 제 마음을 똑똑 두드렸습니다.


  저는 문예창작을 공부하고 소설을 전공했지만 합평을 정말 싫어했고 누가 제 글을 읽는 게 늘 민망하고 부끄럽기만 했었어요. 이 곳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한없이 우울하다고만 생각했던 우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울림이 되고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감사했어요. 그리고 그런 분이 단 한 분이라도 계시다면 힘을 내서 쓰는 것이 떠나간 엄마가 제게 남긴, 제게 맡겨진 사명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여기서 멈춘다면 이 글은 제가 걱정하던 것처럼 그저 한없이 우울한 이야기로 남겠죠.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요. 비록 '간병일기'는 여기서 끝나지만 제가 글 쓰는 걸 원했던 엄마를 위해서라도 계속 쓰고, 씩씩하게 이 삶을 이어나갈 거예요.

  지금까지 그래 온 것처럼 키보드를 느리게 천천히 두드리며 사랑하는 엄마를 기억하려고요. 엄마가 저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이렇게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이 이렇게 자랑스러운 사람이 저의 엄마라는 걸.


  지나온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비록 힘들었어도 이 기록을 남기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간병일기의 마지막 장을 덮는 오늘, 제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도록 마음 담아 응원해 주신 분들께 진심 가득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해요. 여러 번 메인에도 소개되고 하루 종일 알람이 울리는 수만 개의 조회수도 경험해 보는 등 소소한 기쁨들도 많이 있었네요.

  엄마를 돌보는 제게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신 분이 많이 계셨는데, 사실 저는 딸이기에 당연한 일을 했을 뿐 진짜 대단한 사람은 엄마였지 싶어요. 세상의 그 어떤 부모가 자녀에게 이렇게 기꺼이 헌신할 마음을 먹게끔 할 수 있을까요. 그건 엄마가 대단한 사랑을 보여준 사람, 더불어 충분히 제 생의 일부를 바칠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죠.

  가장 기쁜 수확은 그런 엄마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저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 저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걸- 떠난 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주었어요.   


  불행하다고 우울하다고 생각했던 글을 이렇게 많이 읽어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참 많은 위로가 되었어요. 덕분에 이 시간이 아주 슬프고도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이제 밤에 잠을 잡니다. 맘껏 돌아다닐 수 있어 복도에는 더 이상 오래 머무를 필요가 없으니, 거의 매일 마주치던-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던 옆집 남자는 어쩌면 별안간 사라진 제가 이사를 갔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생 베개에 머리만 닿으면 잠들었던 사람인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잠을 설치기 시작했어요. 괜찮지만 괜찮지 않아요. 이따금씩 슬픔이 견딜 수 없이 밀려들 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크게 숨을 몰아쉬어야 해요. 알아요. 당연한 일이에요. 5년 동안 저의 모든 삶이 엄마였으니까요.


  제 걱정은 마세요. 중에 후회하기 싫어서 엄마를 정말 아낌없이 돌보고 사랑했기 때문에, 마를 보낸 지금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아마도 제 평생의 자랑이 될 거예요. 엄마가 이제 아픔 없는 천국에 있고 비록 그리움은 오랠지언정, 제가 천국에 가는 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확신 하나로 저는 잘 견디고 있어요. 슬플 때는 아낌없이 슬퍼하겠지만, 더불어 최선을 다해 행복해질 생각이에요.

  아마도 제가 맨 처음 쓴 글엔가 이국종 교수님의 책 <골든아워>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죠. 우리가 치열하게 사랑했던 기록들이 오래도록 남겨져 누군가 뒤늦게나마 발견했을 때의 상상을 해보았어요. 언젠가 누군가 이 글을 발견할 때에도 이 글이 여전히 화석처럼 남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께 작게나마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죠.

  엄마가 아주 보고 싶은 날, 저도 연어처럼 이곳으로 돌아올 거예요.


  지금까지의 간병일기는 엄마의 생이 저를 어떻게 사랑했는지에 대한 기록이었다면, 이제는 그 사랑으로 제가 남겨진 내일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해 기록해 볼까 합니다.


  괜찮으시다면, 부디 함께해 주세요.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계속.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께

  길디 길었던 겨울을 함께 걸어준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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