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펭귄 Feb 03. 2021

안 아팠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우리가 그냥 평범한 삶을 살았다면,

  엄마가 안 아팠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

 계속해서 데면데면하고 건조하기 그지없는 관계의 모녀였을지도. 엄마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는지, 내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엄마가 아프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

  졸업 후에는 아마 열심히 취업 준비를 했을 게 틀림없다. 문예창작을 전공했지만 소설가로 먹고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졸업이 다가올수록 점점 선명해졌다. 어느 소설 창작 수업에서 교수님은 대한민국에서 시만 써서 먹고살 수 있는 시인은 열 명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이상주의자보다는 차라리 염세적인 현실주의자에 가까웠으므로 한 번도 회사원이 아닌 미래는 상상해보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친구들처럼 평범한 회사의 평범한 사원이 되어 9시부터 6시까지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입사동기와 함께 상사의 뒷담도 해보고, 때로는 야근에 지친 몸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겠지.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삶에 만족하고 있지만 그래도 종종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는 친구들이 한없이 부럽다. 나도 건강한 엄마가 있는 평범한 회사원 1이 되고 싶다.  

  

  /

  첫 월급을 받으면 엄마에게 꼭 사주고 싶었던 가방이 있었다. 평생 자신을 위해 돈을 써본 적 없는 엄마가 제일 자주 들고 다녔던 가방은 어디서 났는지 알 수 없는 짝퉁 샤넬백이었다. 아무리 앞뒤로 뜯어봐도 절대 샤넬에서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싸구려 패딩 가방의 우측 상단에는 당돌하게도 조그만 샤넬 로고가 야무지게 달려 있었던 것이다. 로고를 달아 놓을 거면 정면에 달아 놓지, 저 어정쩡한 위치와 조그만 크기는 또 뭐람. 이럴 거면 그냥 대놓고 '나 짝퉁이오' 하지 왜?

  아무리 먹고살기가 어려워도 엄마가 우리에게만큼은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고 싶었다. 진짜 샤넬백을 사서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에.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게 참 많았다.


  /

  졸업을 했고 그토록 원하던 '돈 버는 사람'이 되었지만, 엄마에게 샤넬백을 사줄 수가 없다.


  /

  엄마가 아프고 난 뒤 창업을 했기 때문에 엄마는 한 번도 내 공방을 실제로 보지 못했다. 엄마와 손잡고 공방에 가고 싶다. 일부러 배달음식을 시켜먹고, 햇볕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대단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가 선물해 준 아프리카 어디쯤에서 온 커피도 진하게 내려주고 싶다. 엄마는 헌신적인 사람이라 공방 꾸밀 때도 도와주고 작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설거지도 대신해줬을 텐데.

  공방에서 설거지를 할 때마다 공연히 서러워진다.    


  /

  내가 만든 요리를 먹는 엄마를 보고 싶다. 위에 관을 뚫어 유동식만 먹는 엄마는 입으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지 1년 하고도 반이 넘었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엄마를 대신해 앞치마를 입은 지 5년, 이제 나 요리 진짜 잘하는데. 엄마한테 알려줄 방법이 없네.


  /

  엄마는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격한 운동을 하지 않아서 헬스 등을 한 건 아니지만, 집 근처 공원이나 한강변을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병이 진행되는 중에도 행여나 걷지 못하게 될까 봐 운동을 한다면서 집 근처의 공원 트랙을 부지런히 걷곤 했다. 각자의 삶이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와 오래도록 걸어 본 기억이 없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다면, 하다못해 걸을 수라도 있었다면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어디든 오래도록 걸어 다니지 않았을까. 햇빛에 눈이 부셔하면서, 때로는 하늘이 검푸르게 물들 때까지.

이전 26화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를 결혼기념일을 위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