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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Feb 05. 2021

내일은 오늘을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엄마가 갑작스러운 컨디션 난조를 일으켜 다시 병원에 왔다. 어느덧 다섯 번째 입원.

  사실 확진자 200명일 때도 병원 가기 너무 힘들었어서 이번에도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지 하고 체념하고 있었는데 극적으로 자리가 나서 오히려 저번보다 쉽게 입원할 수 있었다.

  병원에 올 때마다 기존의 지병에 자꾸 어이없을 정도의 합병증들이 추가되는데 이번에는 그게 심근경색이었다. 가족력에도 심장 쪽은 전무하고 나야 주변 또래가 앓을 만한 병이 아니라 잘 몰라서 별 느낌이 없었는데. 듣는 사람들이 다 깜짝 놀라는 걸 보고 찾아보니 생각보다 더 나쁜 병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어떤 합병증이 찾아오든 어차피 기존의 지병을 이길 수 는 데다 매번 찾아오는 합병증에 지칠 대로 지쳐서, 이젠 무슨 어이없는 얘기를 듣던지 별로 놀라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해탈해서 거의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

  늘 그렇듯 이번에도 입원 첫날은 참 힘들었다. 새벽같이 병원에 오느라 전날도 세 시간밖에 자지 못했는데, 상태가 좋지 않은 엄마의 곁에서 또 밤을 새우는 동안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버렸다. 탈진한 채로 벽에 기대어 있다가, 이제 그만 이 불안하고 지치고 두렵고 슬픈 삶을 끝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상황이 이전보다 심각하다 보니  이번에는 교대가 아예 불가능해서, 손님들께 양해를 구해 남아 있던 모든 공방의 예약을 취소하고 병원에서 모든 숙식을 해결하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꽤나 오랫동안 집에 가지 못할 것임을 예상하고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해졌는데 우습게도 인간은 늘 그렇듯 적응의 동물이라 사흘이 지나니 능숙하게 찬물로 5분 만에 머리를 감는 내가 되어 있었다.


  입원하기 며칠 전, 부쩍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 엄마를 보며 언니와 거실에 누워 이런 얘기를 나누었다. 저번 입원 때 큰 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 또 입원을 하게 된다면 아마 그때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우리의 예상은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입원한 지 이틀 만에 엄마는 의식을 잃었고, 의사 선생님은 나를 불러내 주말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38-40도를 오가는 고열이 펄펄 끓어서 이틀 넘게 떨어지지 않고 있고 검사 결과는 매번 안 좋게 경신되고 엄마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를 걱정해 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제발 잘 자고 잘 먹으라고 했지만, 교대를 해주지 못해 미안해하는 언니가 매일 식사나 간식거리를 가져다 주지만 딱히 자고 싶지도, 뭔가를 먹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엄마의 얼굴만 봐도 눈물이 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수천 번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너무 많이 울어서 인간의 눈물샘이 어디까지 깊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해보고 있는 기분이다.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지만, 이제 심장까지 약해져 버린 엄마의 모습이 예전과는 분명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가슴으로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엄마의 얼굴을 최대한 많이 봐야 해서 밥 먹는 시간도 아깝고, 누워서 잤다가는 너무 오래 일어나지 못할까 봐 의자에 앉은 채로 엄마 옆에 기대어 잔다.  

  며칠 동안 너무 많은 고비가 있었지만, 아직 우리는 함께 있다.



 

  다인실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없다고 해서 1인실로 옮겼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기분이라 이곳은 제발 오고 싶지 않았는데, 간호사들이 빠져나간 1인실에 이런저런 짐들을 쌓아둔 채로 북받치는 감정을 한동안 다스려야 했다. 오늘은 단 10분 동안의 면회가 허락되어서 이모와 삼촌들, 그리고 아빠와 언니 동생이 올 예정이다. 퍽 힘겨운 하루가 될 것 같다.


  내일은 분명, 오늘을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그래도 남기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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