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사랑하는 엄마! 엄마가 떠난 지 3일째 되는 날이야. 사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어. 갑자기 입원한 날부터 지금까지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일까 싶다가도 갑자기 멍해지고 막 그래. 너무너무 피곤한데 밤에 자꾸 잠이 안 와. 1년 반 동안 엄마의 밤을 지키느라 밤에 잠든 적 없었잖아? 그래서인가 봐.
엄마의 장례를 치르면서, 우리가 함께했던 지난 5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봤어. 참 고통스럽고 긴 시간이었는데, 정작 돌아보니 왜 이렇게 짧게 느껴지는지... 엄마, 엄마가 항상 나한테 엄청 미안해했지? 내가 가야 너도 취업할 텐데, 내가 가야 네가 잘 수 있을 텐데, 네가 나 때문에 힘들어서 괴롭다고. 근데 아니야. 5년 동안 나는 엄마와 함께할 수 있어서 엄청 행복했어. 사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는 엄마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고, 엄마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도 알지 못했어. 그런데 5년 동안 진득하게 엄마 옆에만 찰싹 붙어 있으면서 깨달았어.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가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엄마가 어떤 생을 살아왔는지, 그리고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대해서. 지난 5년은 그런 엄마의 사랑을 마음껏 깨닫고 누리고 함께하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선물이었던 거야.
나 정말 행복했어. 비록 엄마를 돌보는 몸도, 아픈 엄마를 지켜보는 마음도 힘들었지만, 그 모든 것을 충분히 덮고도 남을 만큼 엄마의 사랑의 품은 넓고 따뜻했어. 엄마는 아파서 밥도 제대로 못 먹는 주제에 내가 밥 거르지는 않는지 허구한 날 걱정하고, 내가 뭐 먹고 싶은지 물어보고, 매일매일 짜장면을 사주고 싶어 했어. 지난번에 입원해 있던 어느 날 알로에 주스를 사 와서 먹는 나를 엄마가 빤히 쳐다봤잖아. 다음날 아침에도, 그다음 날 아침에도 내가 좋아하는 알로에랑 바나나우유가 냉장고에 야무지게 들어차 있더라고. 언니한테 물어보니까 엄마가 나 먹게 매일매일 사다 놓으라고 했다지 뭐야. 엄마는 그렇게 늘 내 생각뿐이었어.
엄마, 3일 동안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어. 영정 속에 담긴 엄마의 사진이 너무 예뻐서- 마음이 너무 아픈데, 자꾸자꾸 보게 되고 눈에 담게 되더라. 내가 만날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내 친구들, 엄마도 궁금하고 보고 싶었지? 5년 동안 내 슬픔에 동참해 주고, 내가 연락 못해도 먼저 연락해 주고, 내가 엄마 불안해한다고 멀리 못 가니까 매번 만나러 우리 집 근처까지 와 주고, 제대로 일할 수 없으니 오래도록 가난했던 나를 먹이고 입혀서 한 번도 부족함 없이 채워 준 사람들이야. 엄마도 다 이름 들어 본 친구들이야. 내가 미주알고주알 자랑할 때마다 엄마도 기뻐하고 고마워했었지. 엄마한테 소개하진 못했지만 엄마 가는 길까지 나와 함께 울어줬어. 엄마처럼 내 주변에도 참 좋은 사람이 많다. 그렇지?
엄마를 보내는 3일 동안 느꼈어. 다들 오셔서 하나같이 말씀하시는 게, 엄마는 좋은 사람이었대. 정말 정말 좋은 사람이었대. 앞에 나서지는 않지만 늘 뒤에서 한결같이 묵묵하게 일하고, 남에게 폐 끼치는 걸 죽도록 싫어하고, 빚을 졌으면 반드시 그 마음을 갚아야 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할 만큼 한없이 선하고 따뜻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대. 원래 엄마를 자랑스러워했었지만, 그런 엄마가 내 엄마라는 사실이 엄청 자랑스러웠어. 우리도 그렇고, 형제인 이모와 삼촌들도 그렇고, 엄마의 친구분들도 그렇고. 정말 진심으로 애통해하고 엄마를 그리워하는 걸 보니 엄마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새삼스레 느끼게 되더라. 나도 언젠가 엄마 곁으로 가는 날 사람들에게 이런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를 위해 저렇게 진심으로 울어줄 수 있을까? 아마 아무리 노력해도, 엄마만큼은 힘들겠지 싶네.
엄마를 사랑했던 분들이 오셔서 하나같이 우리에게 해주신 이야기가 있어. 이제 자기가 엄마래. 엄마라고 생각하래. 뭔가 필요한 게 있거나, 기쁘거나 힘든 일이 있으면 제발 연락해 달래. 엄마가 떠났다고 연락 안 하면 절대 안 된대. 결코 끝이 아니니 자주자주 만나재. 늘 기억하고 챙겨 주시겠대. 엄마가 평생 걱정이 참 많았잖아.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걱정해서, 그래서 우리한테 또 다른 엄마들을 이렇게나 많이 남겨주고 간 거지? 엄마는 정말 마지막까지 엄마답더라.
엄마, 내가 약속할게. 나 엄마처럼 좋은 사람이 될 거야. 엄마처럼 선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거야. 아파 누워 있는 와중에서도 주변에 뭐 필요한 것 없나 끊임없이 고민하고 챙기고, 사랑이 엄청 엄청 많고 섬세했던 엄마의 삶을 곁에서 오래도록 지켜보면서 내 삶에도 어느새 엄마의 흔적이 남았어. 나는 셋 중에서 엄마를 제일 많이 닮은 딸이니까 엄마가 내게 맡긴 가정의 부분들도 내가 엄마처럼 꼼꼼히 챙길게. 나 이제 시간 많으니까 반찬도 좀 만들어보고 아빠랑 엄마 아들도 잘 챙겨줄게. 늘 엄마 생각하면서 그렇게 할게. 언니랑 야무지게 손잡고 살림을 꾸리고, 엄마의 빈자리를 힘써서 채워 볼게. 그러니까 너무 걱정 마.
아직 실감이 안 나서 그런가, 입원에서부터 엄마를 보내기까지의 일주일 동안 정말 계속 울어서 그런가. 이젠 좀 괜찮아졌나 싶을 때쯤 갑자기 숨을 쉬기 힘들 만큼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와. 아마 이 그리움은 평생 나를 따라다니겠지만, 그게 많이 두렵긴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하면서 보고 싶어도 꾹꾹 참을게. 난 원래 죽는 게 되게 무서웠는데, 나중에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죽는 것조차 두렵지 않아지네. 행복하게 잘 살다가 엄마 곁으로 갈게. 그러니 이젠 행복한 천국에서 그동안 먹지 못했던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햇빛 좋은 곳을 걷고, 즐거운 노래를 불러.
엄마, 내가 꼭 엄마 몫까지 행복하게 살게. 나는 엄마가 정말 사랑을 넘치도록 부어서 기른 딸이잖아. 엄마의 생을 바쳐서 정성스럽게 길러낸 꽃이잖아. 그러니 비바람이 불어도 쉬이 꺾이지 않을게. 엄마가 바라는 게 오직 나의 행복이라는 걸 알아. 천국에서 지켜볼 엄마를 위해- 나는 반드시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질 거야.
그리고 나는 평생 기억할 거야, 엄마가 나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세상에 이렇게까지 자신의 전부를 바쳐 나를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아마도 그 사실이 그 어떤 풍파 속에서도 나를 오래도록 지켜줄 거야.
엄마, 사랑해 내가 정말 많이 사랑했어. 우리에게 만약 다음 생이 허락된다면 그때도 내 엄마가 되어 줘 내가 더더 잘해줄게.
그렇게 그리움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햇살 좋은 어느 날, 밝고 따뜻한 천국에서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