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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an 19. 2021

마지노선: 병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

맘대로 아플 수도 없는 간병인의 삶이란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 보니 운동을 너무 심각하게 안 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아파트 계단을 오른 적이 있었다. 밖으로 나가기엔 이동거리가 길어 부담스러우니 나름 고심해서 선택한 장소였다. 평소 겁이 많아 쉽게 무서워하고 잘 놀라는 편인데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사위에는 점점 더 짙은 어둠이 깔렸다. 괜히 겁먹은 몸을 움츠린 채로 그렇게, 이 아파트에서 몇 년을 살면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꼭대기층에 도착했다.

  고소공포증도 심한 쫄보인지라 평소 같았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왠지 그날은 그냥 꼭대기층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싶어졌다. 막는 이도 없는데 괜스레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겨 난간으로 향했다. 잠깐 망설이다가, 이윽고 고개를 쭉 빼고 아래를 내려다봤다.

  고층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돋보기를 거꾸로 들고 내려다보는 풍경인 것처럼 생경했다. 잊고 있었던 고소공포증에 시야가 울렁거렸다. 꼭대기층이라곤 하지만 별 장치가 되어 있지 않아 맘만 먹으면 누구든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바닥에 닿으면 온몸이 짓뭉개질 것 같은 까마득한 세상. 멍하니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여기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될까?'

   물론 진짜 뛰어내릴 생각 따윈 전혀 없었음에도 그런 상상을 하는 순간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아났다. 그 와중에도 제일 처음 떠오르는 얼굴은 엄마였다. 내가 없어지면 엄마는 어떻게 되지? 누가 나 대신 밤을 새워 엄마를 돌보고 부은 발을 주물러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엄마는 언젠가 중국 설화에서 읽은 자식을 잃은 어미 원숭이처럼,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오장육부가 끊어질지도 몰라. 쓸데없는 상상이 지나치게 길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 도망치듯 내달려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애초에 시도하지 않은 게 나았을 운동의 결말은 가혹했다. 지나치게 빠르고 급하게 계단을 오르내린 탓에 놀란 근육이 시도 때도 없이 쥐를 일으키는 바람에 며칠은 족히 고생했더랬지.

  그날 이후로는 두 번 다시 계단을 오르지 않았다.




  엄마가 아픈 이후로 내 몸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폐렴을 특히 조심해야 하는 루게릭 환자인 엄마를 위해 가벼운 감기라도 절대 걸려서는 안 됐다. 겨울에는 꼬박꼬박 면 마스크를 착용했고 독감백신도 꼬박꼬박 맞았다. 격한 운동을 할 순 없었지만 틈나는 대로 시간을 내어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하려 애썼다. 어렸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비타민이나 홍삼을 챙겨 먹지를 않나, 가벼운 기침만 있어도 집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지를 않나.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하루는 언니가 비실비실 앓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무려 독감(구. 신종플루)이었다. 행여 엄마에게 옮을까 싶어 언니를 방에 가두고 식사 때마다 밥과 물을 넣어주었다. 그녀는 타미플루를 먹고도 3일이 꼬박 지나서야 감금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호되게 겪고 난 다음부터는 감기 기운만 있어도 온몸을 무장하고 목이 조금만 부어도 하루 종일 목캔디를 달고 산다. 감기 기운이 있는 것 같아 하루 종일 목캔디를 빨아먹었던 어느 날은 이러다가 평생 입에서 목캔디 맛이 날 것 같은 공포에 휩싸였더랬다.


  사실 나는 아플까 봐 정말 너무 무섭다. 그게 감기처럼 금방 떠나갈 병이든, 내 몸 어딘가에서 무시무시하게 자라난 병이던 간에. 병드는 게 이토록 무서운 이유는 아픔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아프면 엄마를 돌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해도 간병하는 하루는 이미 충분히 힘든데, 행여나 아프기라도 하면 나랑 엄마는 어쩐담.


  엄마를 오랜 기간 돌보다 보니 몸도 제법 상했다. 오랜 시간 엄마를 들어 올려 휠체어에 앉히고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허리가 성할 날이 없고, 목을 돌릴 때마다 뚜두둑 하는 소리가 난다. 수면 부족과 만성피로에 물든 하루를 살다 보면 내가 피곤하지 않았던 날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정신적으로 받는 이런저런 스트레스들은 끝이 날카로운 바늘로 둔갑해 머리 깊숙한 곳을 편두통으로 찔러댄다.



  지독히도 조심한 덕분인지- 엄마를 돌보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감기조차 거의 걸린 적 없었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열로 응급실에 가서 수액을 맞고 온 적이 있었다. 간신히 열이 내리고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마주한 건 속상함을 견디지 못해 일그러진 엄마의 표정이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돌보느라 무리해서 쓰러진 거라고 했다. 한없이 심란해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엄마가 저런 생각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다시는 아프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인생이 내 마음대로만 되는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배수진을 치고 버티고 있는 이 마지노선에서 물러나면 갈 곳이 없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곁에 있는 걸 제일 좋아해서 내가 잠깐이라도 집을 비우면 불안해하는 우리 엄마. 하루는 엄마에게 약속이 취소됐다고 말하는데 엄마의 표정을 보니 저렇게 나 몰래 웃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설마 지금 내가 약속 취소돼서 안 나간다고 좋아하는 거야...?라고 기가 막히다는 듯 추궁해도 계속 웃기만 했다.



  엄마, 날 이렇게 좋아하는 엄마를 두고 내가 어딜 가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안 아플게. 내 몸 엄마 줄게. 내 거 아니고 엄마 거니까 최대한 오래 써먹을 수 있게 맛없는 도라지라도 먹으면서 잘 관리해 볼게. 내 몸이 허락하는 한 건강하게 엄마 곁에 있을게. 엄마가 내 곁에 있는 동안 끝까지 최선을 다해 엄마를 지켜줄게.

  지금처럼, 꼭 붙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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