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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펭귄 Jan 16. 2021

내 이동반경은 50센티미터

한밤중의 복도



  “엄마, 나 잠깐 코에 바람 좀 쐬고 올게!”

  눈을 깜박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엄마가 알겠다는 긍정의 뜻으로 눈을 한번 깜박인다. 나갔다 오라는 신호다. 하루 종일 입고 있던 잠옷 위에 패딩을 껴입고 모자를 쓰고, 모자가 벗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 목도리도 두른다. 멀리 나갈 것이 아니기에 마스크는 하지 않아도 된다. 완연한 겨울이니 양말을 신어야 하나 고민하다, 양말과 운동화를 신는 행위는 내가 밖에 머무르는 시간에 비해 지나치게 거창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부디 동상만 걸리지 않기를 기원하며 맨발에 단화 뒤축을 구겨 신고 문을 연다.

  매일 보는 풍경, 아파트 복도와 주차장과 정문이 늘 그렇듯 그 자리에 있다.    





  엄마의 발병 초기까지만 해도 친구들을 만나거나 먼 곳에 다녀오는 일에 큰 제약이 없었다. 루게릭병의 경우 팔부터 약해지는 사람, 다리부터 약해지는 사람, 구마비부터 오는 사람 등 각자 병이 진행되는 방향과 속도에 차이가 있는데 엄마는 평균 정도였고, 팔부터 못 쓰게 되었기 때문에 발병한 후 3년 정도는 걸을 수 있었다. 팔만 쓰기 어려웠을 뿐 다른 사람들과 큰 차이 없이 걸어 다닐 수 있었고 내가 없을 때는 언니나 아빠, 이모가 엄마의 곁을 지켜주었다.

  하지만 병이 점점 진행되고 휠체어에도 앉을 수 없어 침대에만 누워 있는 생활을 하게 된 후로는 엄마를 위한 고급 간병 기술(?) 기능 보유자인 언니와 나,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반드시 엄마의 곁에 있어야 했다. 석션(흡입기와 호스를 이용해 가래를 빼주는 일)이 필요할 때 가래를 뽑아줄 수 없거나, 숨이 찰 때 네빌라이저(폐 확장 기구)에 약물을 넣어 분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엄마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투병과 나의 이동 반경은 반비례하듯 점점 짧아졌다. 발병 초기에 예전에 미리 해 둔 비행기표를 취소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다녀왔던 해외여행 이후로 해외에 가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고, 30분 이상 소요되는 다른 지역에 가는 것도 부담스럽고 힘겨워졌다. 집에 엄마와 단둘이 있을 때는 5분 거리에 있는 마트조차 갈 수 없었다.

  고민 끝에 공방에서 진행하던 모든 원데이 클래스와 창업반 수업을 중단했고 친구와의 약속은 일주일에 딱 한 번만 잡기로 다짐했다. 바깥에 잠깐 나와 있을 때도 혹시나 엄마에게 무슨 일이 있을까 봐, 그사이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늘 마음 졸여야 했다. 모든 삶의 순간이, 살얼음 낀 물가를 비틀거리며 걷는 걸음과 같았다.


  5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하루의 대부분을 엄마 옆에 꼭 붙어서 보낸다. 새벽 1시부터 7시까지 졸린 눈을 비비며 불침번을 서고, 오전에 일어나 공방에 가서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손을 씻고 엄마의 부은 손발을 주무르며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이나 속상했던 순간,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있을 만한 다양한 찰나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로 이 모든 이야기들을 부지런히 듣고 눈을 깜박이거나 자음판으로 대답해 준다. 안마 타임이 끝나면 엄마에게 이어폰으로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려주고 곧 퇴근할 언니를 기다리며 저녁을 준비한다. 도란도란 함께 저녁을 먹고 나면-그렇게 하루가 흘러가고 밤이 온다.



  

  밤이 되면 잠깐씩이라도 아파트 복도로 나간다. 어차피 지치고 고단한 몸을 멀리 움직일 수도 없는 데다 엄마와 멀리 떨어질수록 불안해지기 때문에 내가 움직일 수 있는 이동 반경은 집 대문에서 복도까지, 딱 50센티미터가량이다. 하루 중 제대로 바깥바람을 쐴 수 있는, 아마도 가장 유일한 시간. 복도에 나서서 난간에 기대면 집안 공기와는 다른 바깥바람이 콧속에 스며든다.


  바람에서는 그리움의 냄새가 난다. 이를테면 아프기 전 엄마와 함께 걷던 산책로의 공기, 졸업 전 친구들과 떠났던 제주도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짭짤한 바다 내음, 아무것도 몰랐고 철없이 행복했던 날의 기억 같은 것들. 그리움이 길어지면 쉽사리 마음이 약해지기 때문에 나는 사무치는 생각들을 단호하게 구겨서 마음속 깊은 곳에 던져놓는다. 상념이 끝난 뒤에는 찬 공기를 마시며 휘영청 떠오른 달을 감상하거나, 최근 반해버린 노래를 들으며- 이제는 쉽게 나갈 수 없는 아파트 정문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스스로에게 정해둔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면 느리게 도어록을 누르고  집으로 돌아온다. 새벽 1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늦어도 11시엔 잠에 들어야 한다.   


  잠옷 바지에 패딩을 입은 채로 복도에 서 있다 보면, 담배를 피우고 돌아오는 거구의 옆집 남자와 자꾸 마주친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저런 차림으로 밖에 나와 가끔 국민체조를 하는 옆집 여자를 퍽 이상하게 생각하진 않을까 괜히 민망하고 걱정이 된다.

  기묘한 10분을 제외한 23시간 50분 동안 옆집 여자가 굉장히 특이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한번도 보이지 않는 그녀의 어머니가 거실에서 얼마나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지 아마 그는 결코 알 수 없겠지. 그 생각을 하다 피식 웃으며, 운동이 부족한 몸뚱이를 조금이나마 움직여 볼까- 하고 오늘도 보름달 아래에서 길게 스트레칭을 해 본다. 에만 있어도 괜찮아, 집순이라서 다행이야! 엄마만 있으면 나는 행복해.


  휘영청, 하고 달이 밝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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