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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재 Jul 23. 2024

몽생미셸 3박 4일로 가봤어?

퇴사 후 프랑스에 갔다 - 4.

6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한 이후 프랑스에 3주간 머물렀다. 구체적으로 지내되 촉박하게는 지내지 말자는 생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경험한 것들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퇴사 후 프랑스에 갔다 - 3.>은 추후에 올리겠습니다. 일단은 몽생미셸이 쓰고 싶네요.



    프랑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어디가 됐든 한 지역에서 3일 이상은 머무르자는 계획으로 숙소를 예약했어요. 그때 모든 게 꼬여버린 것 같아요. 몽생미셸을 가야겠다고 결심을 했으니 그곳 숙소도 3박을 예약해 버린 거죠. 파리에서 당일 치기로 보고 오는 곳이 몽생미셸인데... 몽생미셸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줘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바다 한가운데 멋진 성이 있고, 주변으로 해변이 이어지는 곳이니까 오래들 머물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런데... 교통이 정말 안 좋더군요. 몽생미셸에서 바로 중부로 가려고 찾아봤더니 체크 아웃 다음날 출발하는 교통편 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뒤늦게 숙소 예약을 바꿔보려고 보니 과거의 제가 취소 불가 상품을 골랐더라고요. 그때의 저는 여행 계획을 못 박아 버리고 싶은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렇게 해서 동선이 ‘파리 3박 > 몽생미셸 3박 > 파리 3박’으로 정해졌어요. 흔치 않은 계획이긴 하죠. 그래도 알차게 보내보려 합니다.



    몽생미셸로 이어지는 해안가에는 호텔이 대여섯 개 있는 작은 마을이 있었어요. 도착했을 땐 12시 밖에 되지 않아 호텔Hôtel Saint-Aubert에 짐을 맡기고 걸어서 다리를 건너 몽생미셸로 갔습니다. 섬으로 향할수록 바람이 거세졌어요. 성벽에는 자전거가 줄 세워져 있었고, 갯벌을 맨발로 가로지르는 관광객도 많았습니다. 



    성 안에 들어서니 중세를 배경으로 한 테마 파크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관광객 중에는 소풍을 온 듯 한 현지 학생 단체가 가장 많았고요. 체크인 시간도 한참 남았으니 천천히 성의 가장자리를 걸었습니다. 갈매기는 길 가는 사람들과 대화하듯 성벽에 앉았고, 갯벌은 푸른빛으로 반짝였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쓱 둘러보니 금세 볼 게 없어진 거예요. 물론 성 꼭대기에 올라 바라보는 드넓은 바다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이 이곳을 당일치기로 오는 이유가 있었던 거죠. 이 성 말고는 주변이 허허벌판이니까요. (하필 그날따라 크레페La Belle Normande도 별로 맛이 없었어요.)


몽생미셸 수도원 내부와 갯벌을 즐기는 사람들


    몽생미셸을 다 보고 나왔을 때는 고작 3~4시였습니다. 호텔 체크인을 하고도 식당이 전부 닫혀있었어요. 호텔 프런트는 오후 7시부터 닫고, 주변 식당들은 바로 그때부터 문을 연다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근처에 사는 사람도 없고, 평일엔 관광객도 없어 장사가 안되니 그렇겠죠. 식당도 서너 개뿐이었습니다. 결국 지친 몸을 이끌고 수백 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한 슈퍼마켓을 가보기로 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기념품 과자들만 잔뜩 진열해 놨더군요. 초콜릿 과자를 한 박스 사들고 나와 우걱우걱 씹은 뒤 7시까지 배를 골아야 했습니다.

    마침내 7시. 구글 평점은 3점대가 많아서 개중 그나마 평점이 높은 식당Restaurant La Salicorne에 갔는데 단체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식당이었습니다. 생선 요리를 시켰고 맛은 나쁘지 않았어요. 다행히 바로 맞은편에 저처럼 혼자 식당을 찾은 아저씨가 있어서 마음이 편했던 것도 한몫 했습니다. 그 아저씨는 휴대폰으로 축구 영상을 보면서 밥을 먹더군요. 축동 보는 건 만국 공통입니다. 저는 배터리가 부족해서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음식에는 자꾸 파리가 꼬였고… 저 멀리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파리로 돌아가려고 모여 있는 것도 보였어요. 그걸 보니 외로움과 함께 걱정이 밀려왔습니다. 몽생미셸은 연박하는 데가 아니구나,라는 걸 첫날 절실하게 느껴버린 겁니다.


    괜찮습니다. 소화시킬 겸 다시금 걸었습니다. 구불구불한 길이 나있는 포토 스폿이 있대서 가보기로 했습니다. 걸어서요. 호텔에서 나와 몽생미셸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쭉 걸으면 됩니다. Méandres라고 검색하면 산책길이 나옵니다. 산책길에는 양똥이 무척이나 많아요. 냄새도 냄샌데 너무 빼곡하게 싸놔서 피할 길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왼쪽에 있는 몽생미셸과 바다를 보며 걷고 싶어도 발 밑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긴장 속에 걷고 또 걸었습니다. 저 멀리 다른 관광객도 보이는 걸 보니 가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결론적으로는 생각보다 많이 걸어야 했지만요.



    멋지긴 했습니다. 뭐 때문에 생긴 풍경인지는 몰라도요. 다른 관광객들이 찍은 사진을 보니 여기 물이 차있을 때도 있다네요. 그때는 더욱 비현실적인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들 보는 눈은 똑같은지 대포 카메라를 든 전문가들도 몇 명 서있었어요. 양을 좋아한다면 양도 지겹도록 볼 수 있는 들판입니다. 늘 느끼는 거지만 훼손되지 않은 자연에는 꼭 참기 힘든 냄새가 따라오기 마련인 것 같아요.



    산책길 출입구의 문짝은 들어올 때 그리고 나갈 때 닫아줘야 합니다. 산책길 끝을 지나 빨간 머리 앤에 나올 것만 같은 작은 농가를 지나면 다시 숙소입니다. 내일은 대체 뭘 해야 할까,라고 되뇌며 잠드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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