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를 마셨다. 비틀거리던 나는 쓰러졌다. 마시고 싶어 마신 것은 아니었다. 오래되어 갈라진 방바닥을 아버지가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 제대로 메우지 못 한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연탄가스는 방 안으로 스며들었다. 식구 중 제일 어렸던 내게 먼저 반응이 왔다. 소변이 마려워 자리에서 일어나던 나는 엄마 쪽으로 쓰러졌다. 그런 일은 내게 몇 번 더 일어났다. 나는 연탄가스를 마실 때마다 식초나 동치미 국물을 마셨고 그럴 때 엄마는 찬 물을 입안에 넣고 내 얼굴에 품기도 했다.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살았던 시절, 일곱 살 아이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응급실에 실려가도 이상하지 않던 시절, 40년 전, 1979년이었다.
병원에서 깨어난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아침인지 저녁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처음 본 사람들이 나를 걱정하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아줌마가 내 얼굴을 감싸 쥐었다. '누구세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누구'라는 말이 튀어나오지 않고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내 얼굴을 감싸 쥐던 아줌마는 두 손으로 자기 입을 막고 흐느꼈다. 나는 날 내려다보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모두 익숙한 얼굴이었지만 모두 낯설게 느껴졌다.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몸이 빙글빙글 도는 것처럼 어지러웠다. 귀에서 모기 소리가 계속 들렸다. 아줌마의 입이 움직였지만 나는 정확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운동장에 아이들을 모아놓고 긴 연설을 하는 교장선생님의 목소리가 산까지 갔다가 돌아올 때 같았다. 나는 눈만 껌뻑거렸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다.
이틀쯤 지나자 아줌마는 엄마로 돌아왔다.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요양원에서 생활하면서 이곳이 어딘지 모르는 치매노인들의 마음도 그 시절 나와 같지 않을까 싶다. 연탄가스를 마신 듯이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몸은 비틀거린다. 모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몸은 모든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사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왜 죽지 않느냐고 하소연이다. 나날이 좋아지는 약들은 치매노인들의 희망과 달리 그들의 수명을 연장시켰다. 수명이 연장되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 대신 이런 상황이라면 우리는 어떤 심정이 될까.
내 직장인, 요양원에서 가장 오래 지낸 어르신의 입소기간이 8년이다. 모르긴 해도 어르신은 요양원에 오시기 전부터 상당기간 병원 치료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다음 요양원에 입소한 것인데 이후로 8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언제 끝날 지 모른다.
한 어르신이 자신의 처지를 이렇게 표현한다.
자식이 아프면 가슴이 아프고 부모가 아프면 머리가 아픈 법이라고.
힘없이 오래된 탁자 앞에 앉아 고개를 떨구는 사내가 있다. 작은 유리창을 덕지덕지 모아 만든 술집 문에는 그보다 작은 나무 판때기에 삐뚤빼뚤 메뉴판이 걸렸다. 파전, 골뱅이, 국수, 어묵이 사각형 판자에 매달려 각각의 몸값을 자랑하고 세월에 파인 누런 주전자는 전깃줄에 앉은 참새처럼 흔들거린다.
사내는 멍한 눈으로 앞에 놓인 식은 파전은 손도 대지 않은 채 연신 소주를 들이켰다. 멀리 보이는 흐릿한 산의 그림자 위로 팔각 성냥불 같은 노을이 화악 불을 붙이고 금세 사라졌다. 텔레비전에서는 하얀 분장을 한 여자가 무어라 떠들었다. 사내는 술 한 잔을 마신 다음 '씨발'이라는 작은 소리를 목울대로 삼켰다.
목수가 직업인 사내는 비가 올 것 같다는 일기예보에 얼굴을 찡그렸다. 휴대전화가 징징거렸다. 그는 앞에 놓인 소주잔을 급하게 비워냈다. 좁은 술집 바람벽에 부딪히는 담배연기처럼 사내의 시선 또한 이리저리 흔들렸다. 작은 소주잔 속에, 늙고 병든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미처 요양원에 보내지 못한 입원비가 어머니의 얼굴 위로 겹쳤다. 무거운 추가 목에 걸린 듯 사내의 고개가 탁자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처박혔다.
어디서 이렇게 많은 연탄가스가 생긴 걸까. 뭐 때문에 노인들은 연탄가스를 마셨을까. 식초나 동치미 국으로 연탄가스가 없어지면, 입에 머금은 찬물을 뿌려서 괜찮아지면, 어린 나처럼 이틀쯤 지나 치매노인들의 기억이 다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8년 동안 병상에 누운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들의 심정을 나는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매달 백여만 원에 달하는 비용은 나였다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여러모로 살아가기 어려운 시절이다. 아픈 사람도 아픈 사람의 보호자도 그들을 지켜보는 나도.
그럼에도 희망은 있다. 폐지를 주워 모았다며 강아지만 한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가득 채워 온 할머니의 미소로부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에 요양원 봉사를 왔다는 초등학생 남매가 맞잡은 손으로부터, 생업을 쉬면서 치매노인들을 태우고 나들이를 자처하는 택시기사님들로부터, 끊이지 않는 관심의 손길들로부터 절망이라는 생의 마지막에서도 희망은 피어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다. 우리라는 관심으로부터 희망이 시작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다. 그렇기에 언제나 희망은 있다. 우리 모두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