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LOST STORY 14화

어떤 곳이 좋은 요양원인가요?

어르신 입장에서는 간단한 문제다

by 고재욱

"어떤 곳이 좋은 요양원인가요?"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내게 사람들이 자주 묻는 질문이다. 몇 년 전 같으면 꽤 복잡한 리스트를 설명했을 테지만 지금은 간단하게 대답한다. 얼마 전 요양원에 입소한 할머니의 변화를 지켜보며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딸과 함께 요양원에 들어선 할머니의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했다. 따님은 애써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지만 근심은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보였다. 할머니의 보호자인 딸은 서울에 거주하지만 할머니는 원주에서 오래 사셨다고 했다. 거기에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이라는 점이 선택의 이유라고 했다. 할머니의 현재 치매 진행 정도에 대한 설명과 관찰이 이어졌다.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마친 보호자는 간단한 인사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할머니는 유리창 너머로 사라지는 딸의 뒷모습에 한참 시선을 고정했다.

그날 이후로 할머니는 입을 꾹 다물고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낯설어서, 며칠 지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일주일이 지나고 다시 일주일이 흘러도 할머니의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부랴부랴 서울에 사는 보호자에게 연락했다. 보호자가 급하게 서울에서 원주까지 내려와 할머니를 만났다. 하지만 할머니의 어떤 말도 들을 수 없었다. 할머니는 치매 3등급으로 인지 능력은 떨어지지만 청력과 언어구사에는 문제가 없었다. 충분히 말을 할 수 있는데도 안 하는 것은 마음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나도, 보호자도 할머니의 마음이 풀릴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할머니의 보호자는 그날 이후로 원주에서 당분간 지낼 거처를 마련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엄마에게 문안인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오래 머물지 않았고 대략 10분 정도의 짧은 만남을 가졌다. 그렇게 하루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되던 날이었다. 침대에서 상체를 조금 세워 창밖을 보고 있던 할머니께서 드디어 말씀을 하셨다. "애가 올 때가 됐는데..."

요즘 할머니는 많은 말은 아니지만 필요한 말을 곧잘 하시는 중이다. 따님은 서울로 돌아갔고 서울 집 근처에 요양원을 알아보는 중이라고 한다.


많은 분들이 배우자나 부모님의 입소 상담을 하기 위해 요양원을 방문한다. 사회복지사와 상담을 한 후 시설 내부를 한 번 둘러보고 어르신의 입소를 결정한다. 물론 여러 요양원을 이런 식으로 방문해서 비교할 것이다. 어르신은 짧게는 몇 개월부터 길게는 몇 년을 훌쩍 넘겨 생활할 수도 있는 곳이 요양원이다. 또한 치매환자에게 생활환경이 자주 바뀌는 일은 아주 좋지 않다. 짧은 상담과 시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내 배우자, 부모님이 생활할 요양원을 선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식사시간에는 한 번쯤 참관할 것을 권하고 싶다. 깨끗하고 최신의 시설을 갖추고 있음에도 바쁜 시간에 쫓겨 짧은 시간에 식사시간이 끝나는 시설이 많은 실정이다. "본다고 뭘 알겠어"라고 반문하겠지만 이미 그 시간에 익숙해진 어르신들은 5분도 안되어 식사를 끝마치게 된다. 어르신들의 습관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 식사 시작 후 5분 만에 식사를 다 드시는 어르신들이 많다면 조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24시간 케어를 위해 일하는 종사자의 인원 또한 적당한 지 살펴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는 어르신 2.5명당 요양보호사 1명으로 종사자 인력을 책정했다. 뭔가 잘 돌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인원은 24시간 기준이다. 8시간 근무하는 인원으로 계산하면 요양보호사 1명당 7.5명의 어르신들을 돌봐야 한다. 만약 직원이 연차, 휴가를 가게 되면 요양보호사 1명이 돌봐야 하는 어르신의 숫자가 껑충 뛴다. 야간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조금 알려진(요양원 평가가 좋은 곳) 요양원은 어르신 숫자에 맞는 요양보호사 인원에 대여섯 명을 추가로 고용한다. 인력구조가 법규에 딱 맞춘 곳이라면 좋은 돌봄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추가로 개인 옷을 사용할 수 있는지. 잠자리와 환기 시설, 냉난방은 잘 되는지. 물리치료와 의료 처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지는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일단 좋은 요양원의 기본에 이러한 내용들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에서 거론됐다는 부모님 모시기에 좋은 거리가 있다. 그들이 말하는 부모님과 자녀 사이에 좋은 거리는 수프가 식지 않는 거리라고 한다. 즉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따뜻하게 가져갈 수 있는 거리 정도에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주장이다. 같은 맥락으로 일본에서는 10여 년 전, 장국으로 식지 않는 거리를 측정했다고 한다. 날씨가 영상 4-5도 정도일 때 국이 식지 않는 거리는 도보로 1.8km 정도였다. 부모님을 모시기 위한 곳이 너무 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전적으로 동감한다. 입을 닫았던 할머니께서 다시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더욱 그렇게 느꼈다.

지난해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치매환자는 70만 5473명으로 추정되고 치매환자 수는 20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보건복지부) 참 무섭고 힘든 싸움을 준비해야 하는 병이 치매다. 홀로 싸우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보호자는 요양원과 함께 부모님을 모신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결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어떤 요양원이 좋은 요양원인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출근길에 들려 안부를 묻고 퇴근길에 인사를 드린 일이, 좋아하시던 반찬 하나 따뜻하게 가져온 일이 말문을 닫았던 할머니의 마음을 연 것은 분명하다.

이제 할머니에게 요양원은 언제라도 따님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에 더 이상 불안과 슬픔의 장소가 아닐 것이다.

"어떤 곳이 좋은 요양원인가요?" 나는 자신 있게 대답한다. "보호자께서 자주 찾아뵐 수 있는 요양원이요."

keyword
이전 13화나는 왜 '저런 일'을 선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