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침대에서 보낸다. 가끔 고개를 돌릴 때 나와 눈을 마주친다. 어떤 말도 없다.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있긴 하지만 할머니의 하루는 침묵과 침대 위의 시간이다. 나는 궁금하다. 할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걸까.
나는 하얀 천장을 바라보고 누웠다. 사각형의 무늬 아닌 무늬를 만든 천장은 56개의 판으로 나눠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누워서 천장에 사각판이 몇 개인지 세는 거다. 여기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 방 귀퉁이마다 침대가 놓였고 네 개의 침대에 한 사람씩, 이 방에는 네 명의 사람들이 누워 있다.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 아주 모르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이곳은 익숙하지만 낯선 곳이다.
창밖으로 해가 떠올랐다. 햇볕이 얼굴에 그대로 쏟아졌다. 눈이 부셨지만 몸을 돌릴 수가 없다. 내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색 바랜 붉은색 조끼 같은 앞치마를 입은 여자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는 말없이 내 뒷목에 손을 넣고 나를 일으켜 앉혔다. 그러고는 바퀴가 두 개 달린 의자를 침대 옆에 붙였다. 내 다리 사이에 자신의 한쪽 다리를 집어넣은 여자는 두 손으로 내 허리춤을 잡고 나를 세우더니 의자 쪽으로 집어던졌다. 내 몸이 출렁거렸다. 나를 들려다가 힘에 부친 모양이었다. 그 여자는 입을 벌려 뭐라 말을 했지만 내게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 엉덩이 쪽이 아팠다. 한쪽 손으로 엉덩이를 만지고 싶었지만 그 여자에게 곧 팔목을 잡혔다. 그 여자의 입이 다시 움직였고 허리 쪽으로 벨트 하나가 채워졌다.
나는 동그란 탁자로 옮겨졌다. 내 앞에 수저와 젓가락이 놓여있고, 목에 앞치마가 둘러진다. 한 사람이 손가락 하나를 세워 이마와 가슴을 찍고 어깨와 어깨를 짚었다. 고개를 숙인 모습이 기도를 하는 것 같다. 하얀 식판 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네 종류의 반찬과 하얀 대접에 담긴 죽이 놓였다. 나를 바퀴 달린 의자로 옮기던 여자와는 다른 사람이 내 옆에 앉았다. 내게 죽을 떠 먹이고 반찬을 먹였다. 어떤 반찬인지 알고 싶었지만 설명은 없었다. 죽은 자꾸 입 밖으로 흘러내렸고 잘 삼켜지지 않았다. 조금만 느리게 입에 넣어주면 좋을 텐데 내 입에 죽을 넣어주는 여자의 수저는 더 빨라지기만 한다. 내 앞에도 나처럼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밥을 먹는 노인이 있다. 그 노인 옆에도 한 여자가 앉았다. 두 명의 여자는 서로 대화하기에 바쁜 것 같다. 나는 치아가 하나도 없다. 죽을 거의 다 먹게 되자 내게 밥을 떠 먹이던 여자는 식탁에 놓인 약봉지를 찢고 흰 가루약을 죽에 털어 넣는다. 약을 따로 줘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죽에 약을 넣지 않으면 안 될까? 말하고 싶지만 목구멍에만 걸린 채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말하는 법을 잊은 것 같다.
식사시간이 끝났다. 넓은 응접실 같은 곳에 노인들이 줄을 맞추어 텔레비전을 바라보고 앉았다. 휠체어에 탄 채다. 이십여 분이 지나자 노인들이 한 사람씩 사라진다. 나도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돌아왔다. 의자에서 침대로 옮겨진다. 이번엔 두 사람이다. 한 사람은 내 다리 사이에 자신의 다리를 끼웠고 내 허리와 어깻죽지를 잡았다. 다른 한 사람은 내 뒤에서 바지춤을 잡는다. 나를 세우고 침대로 옮긴다. 내 몸이 침대에 떨어지며 머리가 흔들린다. 조금만 조심히 다뤄주면 얼마나 좋을까. 바지춤을 어깨 아래까지 당기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에도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 남자가 내 방에 들어오며 고개를 숙인다. 환한 웃음을 띈 얼굴이다. 나도 모르게 입가가 올라가며 미소를 지었나 보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가 웃었다고 좋아한다. 그는 왜 내가 웃었다고 좋아하는 걸까. 그의 손이 내 이마를 짚는다. 따뜻했다. 그는 고개를 요리조리 돌려가며 나를 살펴본다. 그로 인해 한 자세로만 누워있던 내 몸이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된다. 몸이 편해졌다. 그는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갖다 됐다. 그때 들리지 않는 내 귀를 뚫고 그의 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구멍에서만 맴돌던 말이 튀어나온 것도 바로 그때였다. 내 목소리에 그도 깜짝 놀란 표정이다. 두 손을 얼굴에 올려 눈 끝을 매만졌다. 눈물을 닦는 것도 같다. 그는 왜 내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는 걸까. 나는 가만히 그를 바라봤다. 내 아들보다 어리고 손자보다는 많아 보이는 나이, 내가 잃어버린 기억 속에 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들일 수 있고 손자일 수도 있었다. 나는 기억을 잃어버린 치매환자다.
나는 요양원에서 생활한다. 내 방문 앞에는 내 이름과 함께 76이란 숫자가 적혀있다. 요양원에 온 지는 몇 달 되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요양원에서 주로 누워 지낸다. 식사를 할 때는 휠체어에 옮겨진다. 물리치료란 것도 가끔 받는다. 뜨거운 팩을 수건에 돌돌 말아 허리 밑에 두는 것이다. 그럴 때면 옛날 생각이 나기도 한다. 먼저 죽어버린 남편 생각, 두 아들 생각, 내가 아직 아프기 전에 일들 말이다.
나는 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시집을 가야 했다. 조그만 땅도 있고 사람도 그만하면 괜찮다더라. 그게 끝이었다. 그 길로 나는 조그만 땅을 가지고 있고 사람도 그만하면 괜찮다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조그만 땅은 정말 조그맣게 있었다. 204평이었다. 괜찮다던 남편은 어땠을까.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남편은 매일 물을 끓였다. 여자가 찬 물에 씻으면 피부가 거칠어진다는 이유였다. 남편은 아랫집 남자가 자기 부인을 대하는 것처럼 한 번도 나를 야! 어이!로 부르지 않았다. 항상 여보! 하고 불러줬다. 읍내에 나가면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었다. 동동 구루무는 내 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아들 둘을 낳으며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했다. 하혈이 멈추지 않은 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그날로 읍내 병원에 가서 아이 못 낳게 하는 수술을 받았다. 남편은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남편은 204평의 땅을 부지런히 일궜고 나는 그 땅에서 난 파, 마늘, 양파, 상추 등을 마을에 있는 새마을금고 앞에서 팔았다.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새마을금고를 이용해야 했다. 은행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다. 팔던 파가 떨어지면 남편은 금세 밭에 가서 파를 뽑아다 주었다. 넉넉하지 않았지만 두 아이들과 배는 곯지 않고 살 수 있었다. 남편에게 다른 불만은 없었다. 한 가지만 빼고.
유달리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겨울에 남편은 잔뜩 쌓여있는 장작에도 뭐가 불안했던지 마당에 장작을 쌓을 수도 없게 많이 만들어두고는 읍내에 나간다며 길을 나섰다. 낡은 트럭이 미끄러졌고 남편은 그 길로 세상을 떠났다. 내가 50이 되던 해였다. 그는 너무 빨리 내 곁을 떠나버렸다.
두 아이들이 가정을 이루고 내 곁을 떠났다. 아들이 함께 살자고 했지만 나는 남편의 땅이 좋았다. 도시의 아파트보다 남편이 손수 지어준 작은 집이 내게는 평안했다. 204평의 땅이 주는 선물은 나 혼자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아무 일도 없이 늙어가다가 남편의 뒤를 따르면 될 일이었다. 그 일이 일어나지만 않았다면. 절대 오지 말아야 할 것이 오지만 않았다면.
서울에서 내려온 두 아들의 큰 소리가 작은 집을 흔들었다. 부엌에서 새까만 연기가 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방문을 열고 나간 나를 보며 큰 아들이 입을 막았다. 아니 작은 아들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놈이 큰 놈인 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내가 입고 있던 몸빼바지에서 소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리고 있다. 내일은 뭘 또 잃어버릴지 모른다. 결국 내 이름 석 자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쭉 봤는데 그래도 자신의 이름은 기억하는 것 같았다. 내 이름 석 자에 아들놈들, 손주들 얼굴만이라도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나는 요양원에서 지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요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것을 말이다. 뜨문뜨문 나는 생각이지만 내가 야채 장사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싱싱한 채소를 살 수 있어서 고맙다는 이도 있고 괜한 시비를 붙이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여기도 그랬다. 거친 손길이 있는 반면에 나를 아끼는 것이 분명한 손길이 더 많다. 왜 내가 몇몇의 사람들 때문에 슬퍼해야 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내 아들일 수도, 내 딸일 수도, 내 손자, 손녀일 수도 있는 이들이 나를 귀하게 생각해주니 말이다. 나는 그들과 함께 내 남은 시간을 보낼 것이다. 서로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말이다.
하루하루 자꾸 사라지는 기억이지만 알 건 나도 안다. 치매에 걸렸어도, 늙었어도, 제 손으로 밥을 먹지 못하고 기저귀를 사용해야 하는 처지이지만 나는 알고 있다. 나, 아직 살아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