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요양보호사들을 위한 작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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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를 맞으면서까지 일하는 거야
소란한 웅성거림, 한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어르신에게 맞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양원에서는 요양보호사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기저귀를 교체하는데 어르신이 갑자기 주먹으로 요양보호사 얼굴을 때린 거다. 평소에도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할머니였다. 맞은 요양보호사의 오른쪽 얼굴이 붉게 상기되고 턱 쪽이 부어올랐다. 아파 보였다. 얼굴을 맞은 요양보호사는 괜찮다고 했다. 대수롭지 않게 괜찮다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나는 울컥 눈물이 날 뻔했다. 무방비 상태로 얼굴을 얻어맞는 일이 대수롭지 않다니. 그녀는 한 남자의 아내고 두 아이들의 엄마였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터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몇 년 전 돌아가셨다. 이후로 요양보호사 일을 해오고 있었다. 그녀 역시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었다.
안타깝지만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에게 폭행을 당하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이다. 어르신들이 할퀴고 물고 주먹을 휘두르는 일. 보름 전쯤에는 할머니 한 분이 요양보호사의 가슴을 물어뜯었다. 휠체어에서 침대로 할머니를 옮기던 중이었다. 가슴을 물린 요양보호사는 그 순간에 할머니를 뿌리치면 낙상 사고가 발생될 까 봐 할머니에게 가슴을 물린 채로 고통을 참고 할머니를 침대에 뉘어야 했다. 혹시 사람에게 물려본 이들은 알 것이다. 그런 분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물린 상처는 잘 낫지도 않는다는 것을. 50대의 여성으로 가슴을 어디 내 보일 수나 있었을까. 피맺힌 가슴을 감싸고 병원 치료를 받았다. 사고를 낸 어르신의 보호자와 요양원 측은 끝내 모른 척했다. 그들은 '정신없는 어르신이니 돌보는 사람이 조심했어야지'라는 입장을 전했다. 다친 요양보호사는 자비로 병원비를 치러야 했다. 죽은 피가 피부 안쪽에서 굳었다. 수술을 했다고 한다. 돌보는 이들의 인권은 어디에도 없다. 몇몇 국회의원들이 요양보호사의 질 낮은 처우와 인권에 대해 성토하는 내용을 발표했지만 그들의 주장은 몇 줄의 댓글과 함께 곧 잊혔다.
치매라는 병, 낯선 사람의 탄생
치매라는 병은 사람을 낯선 인격체로 만든다. 평소의 성격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인자한 성품의 어르신이 치매를 앓으면서도 인자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에 전혀 다른 성격으로 변하기도 한다. 다른 어르신들을 때리거나 돌보는 이들에게 폭행을 행사한 어르신의 가족들은 말한다. '우리 어머니가 혹은 아버지가, 그런 성격이 전혀 아닌데요. 뭐 잘 못 아신 거 아니에요?'라고. 갑자기 변한 어르신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당혹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폭력적인 어르신이나 그 가족들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요양원과 요양병원과 정신과 병동의 환자들이 구분 없이 입소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치매노인을 보살피는 현실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한다.
"정신과 병동에 가면 사지 결박을 해야 하니 요양원에 입소가 가능할까요? 물론 묶지 않고 말이에요."
"네, 그럼요. 환자 상태를 봐야겠지만 가능하도록 해봐야지요."
이 따위 상담을 통해 요양원 입소가 이뤄진다.(간혹 있는 일부의 내용이다.)
보건복지부의 이중적인 잣대도 문제다. 일부 정신 나간 요양원에서 어르신을 하루 종일 묶어둔 것이 보도된 적 있다. 나도 분개했다. 댓글 창에는 극악무도한 죄를 저질렀다고 성토의 글이 이어졌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뭔가 석연치 않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지가 묶여있는 노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병원이다. '치료를 목적으로'란 단서가 붙는다. 굳이 묶지 않아도 되지만 보살필 인력이 부족하다는 거다. 노인이 주사액을 뽑거나 소변줄을 만진다는 이유다. 그럼 인력을 충원하면 될 일이 아닌가. 현재 의료수가나 구조상 그럴 수 없다고 한다. 병원에서는 인력 부족을 이유로 움직임이 많은 어르신을 24시간 묶어둔다. 체위변경(보건 복지부 지침에는 2시간마다 환자의 몸을 돌려드려야 한다고 규정되어있다.)은 전혀 되지 않는다. 요양원에서 지내다가 갑작스러운 지병 악화로 병원에 입원 한 어르신들은 대부분 엉덩이나 허리 쪽에 욕창(피부 괴사)이 생긴 상태로 돌아오신다. 팔목과 발목에는 피멍이 들어있다. 사람들은 이런 일에는 매우 관대하다. 병원이니까 그래도 된다라고. 노인이 병원에 있을 때는 노인으로 존중받지 않아도 되는 사회다. 이상하게 그게 당연시된다. 정말 이상하다.
원래 요양원은 이런 건가.
몇 년 전 T.V에서 미국의 한 요양원이 소개되었다. K.B.S였던 거 같다. 요양원에 입소한 노인들은 100여 명. 100여 명의 노인들을 보살피는 직원 수는 200명이 넘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며 우리나라의 요양원 현실에 한숨이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백여 명의 노인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법적으로 40명의 요양보호사만 있으면 된다. 사회복지사, 물리치료사, 주방 등의 직원을 더해도 60명을 넘기지 않는다. 거기다 미국 요양원 어디에도 비위관(코로 영양액을 섭치 하는 관)을 하고 24시간 누워있는 환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하게 요양원과 병원의 환자를 구별하고 있었다. 요양원에 병원에 있어야 할 환자가 입소하는 이유는 요양병원을 이용하는 것은 의료보험, 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이라는 다른 혜택이 한 몫했을 것이다. 같은 환자라도 요양병원을 이용하면 환자의 보호자는 요양원에 비해 훨씬 많은 금액을 지출해야 한다. 장기요양보험에서는 요양원 이용 비용의 80%를 국가에서 지원하기 때문이다. 요양원에 중환자실이 생긴 이유다.
2018. 12월 말 기준으로 77, 370개의 노인복지시설이 운영되고 있으며 요양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입소 정원은 238,744명이다. 노인의료복지시설(노인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은 2008년 1,832개소에서 2010년 3,852개소, 2018년에는 5,287개소로 2008년 배비하여 3,455개소가 증가했다.(보건복지부 노인복지시설 현황)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 중 치매환자는 70만 5473명으로 추정되며, 치매 유병율은 10%로 나타났다. 65세 이상 노인 열 명 중 한 명이 치매환자란 뜻이다. 치매환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24년에는 백만 명, 2039년에 2백만 명, 2050년에 3백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치매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약 2,074만 원으로 추정되며, 국가 치매관리비용은 연간 약 14조 6천억이다. (중앙치매센터,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
엄청난 비용이 치매환자에게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실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르신을 보살피는 방법이나 직원 복지가 좋아진 느낌은 없다. 수십억을 들여 지역 곳곳에 치매센터는 들어서는데 6년 전이나 지금이나 어르신들을 보살피는 데 전문적인 손길이 더해진 것 같지가 않다. 최저임금이 상승함에 따라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종사자 임금이 소폭 상승했다. 그뿐이다. 법이 정한 최저임금에 딱 맞춘 금액. 휴일 수당이라던지 연차 수당 등은 먼 나라 일이다. 극심한 감정 노동자 중에 한 직업군일 요양보호사를 위한 심리지원 따위는 없다. 요양보호사들은 대부분 손가락 통증, 팔목, 허리가 아프다. 견딜 때까지 일을 하다 상태가 악화되면 자비로 병원치료를 받든지 회사를 떠난다. 허리 디스크 판정을 받은 한 직원은 산재신청을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어르신들을 들었다 났다 하는 일이 요양보호사 일이다. 산재보험 담당자는 그건 노화현상이라 산재가 안된다고 했다. 요양보호사들은 허리디스크나 손가락이 휘는 정도는 산재신청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안될 것을 안다.
그렇게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잖아.
맞다. 하지 않으면 된다. 지인이 물었다. 하고 많은 일 중에 왜 다른 사람 똥이나 치우는 일을 하냐고. 술자리에서 날 걱정해서 하는 소리일 게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어르신들이 하루 종일 똥만 누고 계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지인은 치매환자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완전히 틀렸다. 치매환자라고 해서 일상이 없는 게 아니다. 그들도 일상생활을 한다. 멀쩡한 사람이 보기에 느리고 불편해 보일 뿐이다. 하루를 새롭게 시작한다는 점에서는 구태한 일상을 반복하는 바깥의 사람들보다 훨씬 신선한 하루를 보낸다고 느낀다. 기억이 10분 이상 지속되지 않는 어떤 분에게는 순간이 삶의 시작이니까.
한 사람이 살아온 길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 딱히 바쁘지 않은 치매환자들이라 느리게 이야기를 전해오신다. 나는 느린 이야기를 듣기 위해 기다림을 배워야 했다. 일부러 꾸밀 필요가 없는 그분들은 자신이 본 대로 들은 대로 살아온 길을 말한다. '스몰스텝'에 참여하고 스몰 스태퍼로 활동하면서 사람책이란 단어를 알게 됐다. 사람이 책이다란. 정말 그랬다. 사람이 책이 되어 읽히는 경험.
얼어붙은 한강을 걷는다. 6.25 전쟁 당시 피난길이었다. 얼음이 깨져 황소가 빠지고 놀란 주인이 황소의 고삐를 당긴다. 하얀 눈을 뒤집으며 물에 빠져가는 황소를 바라보던 어린 소녀. 멀리 대포소리가 난다. 어린 소녀는 더 어린 남동생의 손을 잡고 죽어라 뛴다. 띄엄띄엄 전쟁을 말하는 어르신은 한 권의 책이었다. 나는 그 책을 매일 읽는다. 수십 권의 책을 힘도 들이지 않고 말이다. 이보다 생생하게 삶을 그려내는 책이 어디에 있을까.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하나의 박물관이 문을 닫는다는 말이 있다. 내게 수 십 개의 박물관이 문을 열고 초대장을 보낸다. 나는 주저 없이 박물관으로 걸어간다. 나는 박물관 구석구석 숨겨진 보물을 찾아내고 기록한다. 내가 전하는 이야기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질 것이다. 전쟁을 지나고 일제강점기를 만나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삶을 듣게 되는 일, 수많은 박물관 서기가 되는 일, 그렇게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잖아. 틀렸다. 싫지 않다.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전국의 340,624명의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에게 감사와 진심을 다한 위로를 전한다. 나는 앞으로도 요양보호사 일을 계속 할 것이다. '기꺼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