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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궁은정 WiseFrame Nov 02. 2019

자격인가 능력인가

자격이 없엇 무언가를 고민한다면...

자격을 갖추어야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아주 오래 했었다. 그 말은 나 스스로 ‘내가 자격이 없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자격지심’이라고 한다. 나처럼 자격지심에 시달리는 사람은 또 있을까 모르겠다. 어떤 자리에 있으면 온전히 그 자리를 누리지 못하고, ‘과연 내가 이 자리에 있어도 괜찮을 것일까?’를 끊임없이 물어본다. 


아주 선명하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 하나가 있다. 날씨가 좋았고, 분위기 좋은 이탈리아 레스토랑이었다. 대학원 선배와 식사를 하고 있는 자리였다. 나이 차이가 좀 있으신 분이라서 편하진 않은 자리였다. 논문을 같이 진행하기로 해서 만난 자리였다. 그때 나는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들어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박사 진학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누었다. 박사에 들어올 거냐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주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나의 습성대로 석사 과정에 다니면서도, ‘과연 내가 대학원에 다닐 자격이 되나?’라고 의문을 품었었다. 경제적 여유도, 학문적 실력도 없는 내가 대학원에 계속 다녀도 될까 엄청 고민을 했었다. 한 학기마다 너무 힘들어서 ‘대학원 그만둘 거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심해질 때마다 방학이 돌아왔다. 그 사이 마음이 진정이 되어서 다음 학기를 다시 시작하곤 했다. 


석사는 이왕 시작했으니까 마치자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박사에 들어가는 건 좀 어려운 선택이었다. ‘내 형편에 어떻게 박사를 하나. 엄마 말대로 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버는 게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편으로는 자유롭게 글 쓰고 공부하고 싶어서 직장 대신 대학원에 들어갔던 것인데, 해야 하는 일과 내 의지와는 다르게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얽매여 있는 것이 너무 싫어서 박사에 가는 것이 망설여졌다. 


이러저러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작가가 돼서 자유롭게 책 쓰고 싶어요. 박사과정에서도 그런 게 어려울 것 같아요.”


그랬더니 그 선배는 정말 현실적인 대답을 들려주었다. 


“요즘 출판계가 얼마나 어려운데. 그리고 요즘 작가들도 다 학력 있어. 다들 박사 땄다고.”


이 말에 저항을 했어야 했는데, 확 와 닿고야 말았다. 이 말을 믿고서 나는 박사를 가야겠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스펙을 쌓아야 사람들이 내 책을 읽어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작가가 되려면 박사가 되어야 한다는… 물론 이것이 박사과정에 가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다. 그 이후로도 박사과정에 가야 하는 이유 수십 가지를 더 찾은 다음에야 원서를 겨우 낼 수 있었으니까.


여하튼 이 장면이 나에게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것은, 박사를 따야, 다시 말해 자격을 얻어야 책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나의 모습이 조금은 아쉽기 때문이다. 


‘스펙 따위는 상관없이 나는 자유롭게 책을 쓸 수 있습니다. 좋은 글을 계속해서 많이 쓰면 언젠가 세상이 알아줄 것입니다.’라고 말했더라면 더 멋있지 않았을까? 

현실의 나는 계산기를 머릿속으로 막 두드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후에도 영향을 미쳐서, 책을 써서 끝 마치지 못하는데 일조하였다. 나에게 조언을 해 준 선배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그저 세상의 말을 내뱉은 것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그대로 곧이곧대로 믿었다는 것. 한 번도 저항해 보지 않았다는 점이 늘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나는 초심을 잃고,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자유롭게 책을 쓰기보다는 논문 쓰고 일하고 강의하면서 교수가 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유학 준비도 한 것이고 말이다. 결국 선망했던 교수는 되지 못했다. 이제 자유롭게 책 쓰는 일만 하면 된다는 것이 홀가분하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 과 선배였던 분인데, 현직에서 광고일을 하시다가 지방의 어느 대학교의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그분은 내가 그토록 열망했던 교수직을, 홀연 그만두고 여행작가를 하고 계신다. 교수가 자신이 바라왔던 그런 직업이 아니기에 그만둔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하고 전임 교수가 되신 것을 축하는 해 드려 보았는데, 그만둔 경우는 본 적이 없어서 조금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들어가기 어렵다는 자리를 마다하다니… 지금에서야 그분의 선택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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