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에 녹음은 못했다. 책도 못 읽었다. 여동생과 나는 오늘 원래 카레밥을 하기로 했었다. 집에 모든 게 다 갖춰져 있었다. 감자, 양파, 당근, 닭가슴살 그리고 카레 가루. 그런데 엄마가 우리 둘의 계획을 들은 뒤 그 계획을 막았다.
“채소 썰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그냥 하지 마라.”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집은 요리를 해 먹기가 너무 힘든 구조이기도 하고 해서 그 말이 약간 솔깃했다. 우리가 제 2의 안이었던 피자를 시키는 것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던 찰나, 안방에 누워있던 아빠가 그 계획에 대해서 들었나 보다.
“피자 시켜라.”
아빠는 말했다.
피자를 시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한 오늘 저녁 식사에 대한 가벼운 의견에 불과했는데 그것이 의무 사항이 되어 버린 것이다. 소곤소곤 우리들만 알게 말했어야 했는데! 쿠팡이츠에서 할인해주는 피자를 시켜먹을까 아니면 집 근처 피자스쿨에서 민생회복소비쿠폰으로 사 먹을까를 고민을 나누고 있는데 아빠가 소리쳤다.
“피자 사 와라.”
의견은 우리가 나누고 결정은 아빠가 했다. 우리는 집 근처 피자스쿨에서 피자를 사 먹기로 하고 희경이가 피자를 사 오기로 했다. 우리는 포테이토 피자를 사먹기로 했다. 희경이가 나갔다. 아빠가 또 주문하신다.
“큰 거 사 오라고 해라.”
나는 내 휴대폰 결제쿠폰을 희경이에게 보내며 gs25시에서 사이다도 좀 같이 사 오라고 했다. 희경이가 피자와 사이다를 사 왔는데 피자와 사이다를 같이 드는 게 너무 힘들어 보였다. 사이다를 사 오라고 시킨 것이 후회가 되었다. 피자는 맛이 괜찮았다. 그런데 우리는 피자를 먹느라 우리 집에 있는 식재료를 활용하지 못한 것이 많이 후회가 됐다. 꼭 카레밥을 해 먹지 않더라도 아침찬에서 온 소불고기도 남아 있었고 고추장찌개도 있었는데... 소불고기와 밥을 같이 넣고 볶아서 소불고기 볶음밥을 해 먹으면 맛있는데. 어제 어글리 어스에서 온 순두부도 남아 있었는데. 어제 이연님의 유튜브를 보다가 클리셰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클리셰는 너무 많이 인용되서 식상한 말이라는 뜻인데 이연님에 따르면 클리셰에 인생의 해답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야채를 많이 먹어라’,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 이런 구절만 잘 지켜도 우리는 훨씬 잘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것과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소불고기와 두부면, 순두부와 고추장찌개가 오늘 나와 희경이의 클리셰였고 등잔 밑이였다.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는 클리셰와 등잔 밑에 있는 것을 잘 활용한 날이다. 등잔 밑을 잘 봐야 한다. 거창하게 잘 살고자 하면 힘든데 등잔 밑만 잘 확인하고 활용해도 뿌듯한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오늘은 또 피자 이야기와 저녁 식사 이야기로 지면을 떼웠다. 있는 것을 잘 활용하자는 교훈도 함께 얻어간다. 한평생 깨달음만 얻다가 그걸 활용해 보지도 못하고 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매일 배우기만 하다가. 좀 서글퍼진다. 내일은 또 어떻게 지면을 때워야 할까? 오늘 그런 것처럼 또 소재가 잡히겠지. 오늘은 이만 쓴다. 지금까지 10쪽 썼고 10월 중순까지 하루에 한쪽을 쓰면 10+66=76장을 쓸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완성된 이 책을 어떻게든 팔아 볼 것이다. 이 책의 거취에 대해서 희경이와 의논하고 있다. 텀블벅 펀딩에 책을 내면 어떨지... 올해 안으로 내 에세이집과 그림책이 같이 나왔으면 좋겠다. 유명세는 나를 다듬어 줄 것이고 유명해진 다음에는 좀 더 좋은 작품을 써서 출간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지금 깨달은 것인데 목표한 것에서 조금씩만 더 해 놓으면 다음 날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원래 하루에 한 쪽씩 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면 한쪽보다 조금만 더 쓰자는 것이다. 그러면 내일 쓸 부담이 확 줄어든다. 지금 내가 써 보니까 에이포용지 한쪽 반도 너무 많고 에이포용지 한쪽에다가 1/3정도만 더 써 놓자는 것이다. 그러면 내일이 편할 것이다. 너무 무리하면 안된다. 그러면 내일 못쓴다.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