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잎클로버 찾으려고(0)

세 잎 클로버를 밟지 마세요!

by 홍정주

이런 글을 인터넷에서 봤는데 뜻이 기가 막혔다.

흔하디 흔한 세잎클로버는 행복을 상징하고

귀하디 귀한 네잎 클로저는 행운을 상징한단다.

그런데 사람들은

귀하디 귀한 행운(네 잎 클로버)을 찾으려고

흔하디 흔한 행복(세 잎 클로버)을 마구 짓밟는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뜻을 담은 격언도 있다. 바로

"별을 따려는 자는 자기 발밑의 꽃을 잊어버린다"

제레미 벤담이 남긴 말이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매사에 별을 따려고 정신없이 까치발을 하다가 퍼득 정신을 차리고 내 발밑의 꽃을 부리나케 찾는 사람인 것 같다. 그리고 내 발에 밟힌 아직 죽지 않은 시들시들한 꽃에게 물을 줘서 어떻게든 살리려고 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만약 내 밟에 밟힌 꽃이 죽어버렸다면? 살려 볼 수 없다면?


이걸 내 이야기에 대입해 보면 이렇다.

나는 학창시절 공부한답시고 엄마에게 온갖 스트레스를 전가 했다.

엄마는 정주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이모들에게,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울며 말씀하셨다.

엄마는 그때 살아계셨다.


나는 재수해서 들어간 대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삼수를 하겠다며 방황했다.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내가 밖에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현관 문고리를 세계 잡아 당겨서 엄마가 손가락이 결쇠에 끼여 다치셨다.

엄마는 그 때 살아계셨다.


그때의 나의 태도들은 별을 따려고 꽃을 밟고, 네 잎클로버를 따려고 세 잎크로버를 짓밟는 것이었다.


나는 요즘 보다 시피 에세이를 쓰고 있다. 하루에 한 두시간씩 한쪽은 꼭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것인데 세 잎클로버를 안 밟고도 네 잎클로버를 따고, 발밑의 꽃을 잊어버리지 않고도

별을 따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잘 하려고 하면 악에 받치고 매 순간 발 밑의 꽃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찾고 서야 깨달은 것이다.


꽃을 밟게 만드는 별은 진정한 별이 아니고 , 세 잎클로버를 짓밟게 하는 네 잎클로버는 행운(네 잎클로버)이 아니다. 이걸 깨닫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엄마는 많이 아프시긴 하시지만 아직 살아계시다. 나의 꽃, 나의 세 잎 클로바 우리 어머니.

어머니께 이 글을 바친다.





















혹시 나도 그렇지 않았나 하고 반성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도 들었다.

행복이라는게 세 잎클로버 처럼 흔한거라면 나도 매일 매일 행복할 수 있겠네?

네 잎클로버만 찾다가 지쳐 버려서 세 잎 클로버가 눈에 잘 안들어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본능적으로 네 잎 클로버를 찾는 건 어쩔 수 없다.

특히 가난하고 잘 못수록 더 네 잎클로버의 행운을 바라게 되는 것 같다.

세잎 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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