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중심 시각에서 시작된 히잡을 둘러싼 오해의 역사
히잡¹은 굉장히 상징적인 아이템이다. 무슬림 여성이라는 정보를 한번에 제시하기 때문이다. 히잡은 보통 여성차별적이고 지양해야 하는 대상처럼 여겨지지만,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히잡을 둘러싼 논란을 들여다보려 한다.
1) 히잡: 무슬림 여성이 쓰는 베일 중에서 머리와 어깨, 가슴을 덮는 하나의 종류를 의미한다. 하지만 종종 온몸을 덮는 부르카, 니캅 등 다양한 형태의 베일을 통칭하는 용어로도 사용되므로, 본 글에서는 제유법으로 쓰인 ‘히잡’과 세부적 개념의 ‘히잡’이 혼용된다는 점을 미리 언급한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진행한 일 중 하나는 아프가니스탄 여성에게 ‘부르카’를 강제하는 것이었다. 부르카는 얼굴까지도 망사로 덮여 온몸을 빈틈없이 덮는 베일이다. 탈레반은 부르카 착용을 폭력으로 강제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똑같은 형태의 부르카를 모두 뒤집어썼다. 우리는 이 모습으로 부르카를 비롯한 히잡이 이슬람 문화권에서 행하는 여성 차별의 상징이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하게 되었다.
히잡은 이슬람교의 여성 차별을 가장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는 소재다. 역사적 배경을 훑어보아도 확실하다. 7세기 이전의 아랍 사회는 부족 간 전쟁이 활발하던 시기였는데, 여성의 성적 피해가 극심했다. 이에 따라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의 신체를 가려야 한다며 히잡이나 부르카, 차도르 등의 베일을 착용할 것을 강제했다. 즉, 히잡은 여성의 신체를 성적 대상으로 여기고, 문제의 원인을 여성에게만 전가하는 남성중심적 사고의 산물인 것이다. 또한 니캅과 부르카는 온몸을 천으로 덮어버림으로써 ‘여성’이라는 특징 하나만 남기고 개성이 뭉개진 상태로 만든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의 여러 국가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했다. 오토바이 헬멧이나 의사의 마스크, 예술이나 축제 상황은 제외하였으니, 대체로 무슬림 여성의 베일이 금지대상에 해당된다. 그래서 이 법은 ‘부르카금지법’이라고도 불린다. 찬성하는 측은 ① 특정 종교의 복장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얼굴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이 있으며, ② 베일이 무슬림 여성의 인권을 침해하기 때문이고, ③ 얼굴 식별을 통해 테러를 예방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무슬림 여성의 복장에 대한 강제적인 폭력을 멈추고, 얼굴을 드러냄으로써 사회적 상호작용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잡이 단순히 무슬림 여성의 억압된 현실만을 담은 것일까? 많은 매체에서 무슬림 여성을 정의하는 방식은 ‘수동적인 피해자’이다. 히잡은 불평등의 상징물이고, 히잡을 착용한 여성은 남성중심적 종교와 권력에 부당하게 세뇌된 불쌍한 존재다. 정말 무슬림 여성은 구제되어야 하는 피해자인 것일까?
‘구찌(Gucci)’는 2018년 FW 컬렉션에서 ‘문화적 전유’라고 비난 받았다. 문화적 전유란, 타문화에 대한 이해나 존중 없이 문화적 요소를 사용하는 행위를 일컬으며, 보통 서구 문화권에서 비서구권 문화를 사용함으로써 지배적인 맥락이 확인된다. 이 컬렉션에서는 백인이 히잡과 터번을 쓰고 등장했고, 히잡과 터번에 대한 종교적, 문화적 존중 없이 디자인 요소로 차용했다는 점에서 비난을 받았다.
‘마린 세르(Marine Serre)’도 2018년 FW 컬렉션에서 같은 논란을 일으킨다. 마린 세르가 사용하는 초승달 문양은 이슬람교에서 상징적인 문양이고 눈을 제외한 모든 부위를 가리는 착장은 히잡과의 연관성이 두드러지지만, 무슬림 모델은 등장하지 않는다. 마린 세르는 자신의 디자인이 정치적 의미와 무관하길 바랐으나, 서구 패션 사회에서 이슬람교가 연상되는 이미지를 쉽게 차용하는 모습은 서구 중심의 권력이 문화적으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특히 유럽 국가에서 부르카금지법이 시행되는 상황에 마린세르가 얼굴을 가리는 디자인을 사용할 수 있는 건 백인의 특권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히잡에 이슬람교에 대한 정체성이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무슬림에게 히잡이란 여성만 쓰는 것 이전에,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뚜렷하게 전달하고, 종교적 신앙심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히잡에는 이슬람 문화권의 종교, 사회, 문화적 배경이 뒤섞여있으며, 무슬림 여성의 신분이나 민족, 신앙심 등의 복합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히잡에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다양한 의미가 있었다.
드라마 <볼드타입>에는 무슬림 페미니스트 ‘아디나’가 등장한다. 아디나는 항상 히잡을 쓰고 다닌다. (사실 실제 히잡의 생김새와는 차이가 있고, 복장 또한 무슬림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 논란거리가 있지만, 생략하고 간단히 히잡이라고 제시하겠다.) 아디나는 “페미니스트면서 히잡을 쓰고 다니는 건 모순이지 않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히잡은 저를 억압하지 않아요. 오히려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이미지로부터 자유롭게 해줍니다.” 이 답변은 히잡이 성차별적 관점으로만 해석되어 왔다는 점, 여성에 대한 이미지에는 서구 중심의 전형적인 시각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디나는 무슬림 여성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드러내고, 무슬림 여성의 소외성을 지적함으로써 페미니즘에 서구적 관점이 중심이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서구 중심의 페미니즘은 무슬림 여성을 소극적인 피해자로 규정하고, 이 편파적인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답습한다.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만이 자유로운 여성이라고 정의하고,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은 주체적인 여성상에서 배제한다.
물론, 이슬람 국가의 정치 체제는 대체로 남성중심적 구조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무슬림 여성이 낮은 사회적 지위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히잡을 옹호하는 것이 차별적인 정치 체제에 저항하지 않고 오히려 순응하는 태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것 또한 맞다. 하지만, 무슬림에게는 이슬람교가 곧 ‘정체성’과 연결된다. 히잡에 담긴 무슬림의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 정체성은 존중받아 마땅하며, 오히려 무슬림에게는 히잡을 당당히 쓰고 다니는 것이 스스로의 문화와 정체성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주체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슬람 경전의 내용을 재해석하여 이슬람 사회의 젠더 이슈를 조명하는 ‘이슬람 페미니즘’이 있다. 이슬람 페미니즘은 이슬람이라는 종교 및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여 실질적인 무슬림 여성의 권리를 위해 고민한다. 이슬람 페미니즘에서 히잡을 쓰는 무슬림 여성은,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동시에 강제적인 히잡 정책에 반대할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이다. 히잡을 단순히 철폐해야 하는 억압적 상징물로만 여길 수는 없다. 우리가 인식한 페미니즘에는 서구적 관점이 깊게 물들어 있으며, 지역의 문화와 역사, 종교적 맥락을 고려한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매체를 통해서 마주한 무슬림 여성의 모습과 그에 대한 인식은 편파적이었다. 수동적이고 불쌍하게만 생각했던 이들이 사실은 능동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더 나은 상황을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충분히 주체적이었던 삶을 감히 판단하고 있었다는 깨달음이 들었다. 우리가 동양인으로서 마주하는 고초 또한 마찬가지일 텐데, 필자는 그동안 지나친 연민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봐왔다는 점을 반성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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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문화예술 큐레이션 플랫폼 Antiegg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