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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Nov 07. 2022

헬스 첫날에 내일을 걱정하다

몇 년만의 근육통인지, 새삼스럽기만 하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적당히 조금만 조심조심 해볼 요량이었다. 그러니, 개인 PT는 부담스러웠다. 유행하는 바디프로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단백질을 따로 섭취하면서까지 몸을 키울 생각은 더더구나 없었다. 떨어지는 체력을 올릴 수 있다면. 유튜버의 힘을 많이 빌렸다. 필요한 정보들이 널렸다. 다만, 나에게 적절한지 판단할 눈은 없었다. 따라 할 만한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면서 머리로 숙지했다.


헬스장 문을 열어 제꼈지만, 쫄았다. 상체가 누구보다 커 보이는 한 남자가 “안녕하세요~”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트레이너이다. 눈도 제대로 맞추지 않고, “아, 네~ 안녕하세요.” 어설픈 인사를 나누었다. 순간, 발이 갈 길을 잃었다. 주춤하다가 긴장된 몸을 풀어야 할 것 같아 전면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거울에는 스트레칭 동작을 하는 여성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몇 가지 동작을 대충 눈대중으로 따라 했다. 목을 죽 늘여서 원을 돌리고, 팔은 쭉 뻗어서 등 뒤로 깍지를 끼고, 양다리를 벌려 앉아서 골반 끝을 쿡쿡 눌러줬다. 긴장된 근육이 조금은 풀린 것 같다. 몸 스트레칭도 끝났고, 어디로 가야 하나. 헬스장을 한번 훑는다. 내가 다니는 헬스장의 규모는 한 눈에도 모든 전경이 시야에 들어올 정도의 아담하고 작은 규모이다. 학교 교실을 떠올린다면 교실보다 약간 큰 정도. 운동 기구는 최소한만 놓여 있다. 광택으로 번쩍이는 최신식의 운동 기구는 없다. 괜찮다. 딱히 운동기구에 욕심부릴만한 헬스 경력이 없다. 완전 초보자인 나는 이대로도 만족한다. 


말을 구태여 하지 않아도 경직된 나의 몸짓과 갈 곳 잃은 눈빛이 ‘처음 왔다고’ 말한다.  기구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것을 눈치챈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기구 사용법을 일러준다. 휴~ 안심이다. 이럴 때는 누군가의 오지랖이 도움이 된다. 고맙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감사함이다. 아주머니는 헬스 경력이 꽤나 오래되었는지, 트레이너 하고도 서슴없이 말을 나눈다. “기구 사용하는 방법은 트레이너한테 물어봐도 돼요.” 아주머니는 마지막에 그 말을 남기고 유유히 자기 운동으로 돌아갔다. 첫날이니 욕심은 없었다. 아주머니가 알려준 랫풀다운 기구에 앉아 제일 낮은 무게로 어제 봤던 동영상을 떠올리며 동작을 했다. 분명 등 운동하는 동작인데, 등에 기별이 없다. 팔만 아프다. 그래도 차마 트레이너에게 묻진 않는다. 왠지 영업을 당할 것만 같다. 나는 개인 PT 안 받아요. 굳게 마음먹었던 차라, 트레이너에게는 어떤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외롭다. 스피커에서는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지만 내 취향은 아니다. 내일은 이어폰을 챙겨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함께한다면 헬스장에서의 시간이 마냥 외롭지만은 않을 것 같다. 


한 눈에도 쉽게 해 볼 만한 기구를 찾았다. 다리를 걸어 윗몸일으키기 하는 기구. 고등학교 때도 체육시간이면 으레 해봤던 동작이다. 누구의 도움 없어도 이건 자신 있다. 온몸에 힘을 빡 주고, 상체를 접었다. 안 쓰던 근육을 쓰려하니, 근육이 다소 당황했다. 


어머, 얘 지금 뭐 하는 거야! 20년을 운동과 담쌓고 근육에는 관심도 없더니. 체력은 말해 뭐해. 가까스로 버티는 인생이었지. 차를 끌고 다니더니, 100m도 걷지 않네. 이러면 나도 어쩔 수 없어. 사용하지 않는 근육은 점점 사라질 운명인걸. 근육의 쓸모를 모르니, 어쩔 수 없을 걸. 공기가 없어야 공기가 소중함을 알 듯, 근육이 늘 그 자리에 있었으니까. 

근육이 당황하며 심히 고통스러웠다. 애써 부인했다. 난 괜찮아. 난 아프지 않아. 난 할 수 있어. 내일도 헬스장에 갈 수 있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첫날이었지만 집에 돌아와서, 녹초가 됐다. 무슨 운동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이 욱신거리는 게 ‘쑤신다’는 표현이 적절할까. 가족들에게는 최대한 아픔을 숨기며 질질질 간신히 몸을 이끌고 잠자리에 누웠다. 이런 근육통이 몇 년 만인지, 새삼스럽다. 누워서 생각한다. 왠지 헬스장은 내가 갈 곳이 아닌 것만 같다. 어설픈 동작으로 몸만 헤치는 건 아닌지, 성치 않은 이런 몸으로 내일을 견딜 수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내일 또 갈 수 있을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 헬스장에 가지 못할 이유를 떠올리다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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