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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시 Aug 03. 2023

저녁 산책

대개는 몸이 먼저 움직인다. '오늘 저녁에 산책해야지' 하며 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게 아니라 몸이 먼저 움직이면, '산책해야겠구나' 하고 생각이 따라온다. 해가 서서히 줄어드는 저녁의 경계즈음, 꿈틀거리는 몸이 나갈 채비를 한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걷기에 좋은 저수지가 있다. 말끔하게 정리가 된 산책길을 따라 해가 지면 은은한 불빛이 길을 비춰 저녁 산책으로 나서기 좋다.


터벅터벅 걸음을 내딛는다. 오래간만에 걸어서인지, 걸음걸이가 낯설다. 평소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 걸을 일이 많지 않다. 이러다 걷는 법도 잊겠다 싶다. 불협화음처럼 어긋난 발걸음이 서서히 리듬을 타기 시작한다. 팔과 다리, 머리끝까지 걸음 하나에 집중해 또 터벅터벅 걷는다. 터벅터벅은 서벅서벅으로 걸음의 리듬이 좀 더 가벼워졌다. 서서히 걷는다는 사실조차 잊어간다. 몸은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로 향해도 길을 잃을 염려 없는 편안한 공간에서 몸은 그저 걷는다. 


얼마쯤 걸었을까. 저수지를 한 바퀴 돌면 1시간쯤 걸리는데, 대충 반은 온 것 같다. 이제 반만 남았다. 그렇다고 반을 향해 끝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저 한 걸음을 내딛을 뿐, 끝은 저절로 도달된다. 흠~ 뻐근해져 오는 엉덩이를 부여잡고 집으로 가려는 찰나, 눈에 물이 가득 고였다. 


눈꺼풀을 움직이면 그대로 물이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잠시만 눈에 물을 머금고, 그대로 천천히 걷는다. 걸음은 더디고, 이내 눈 안에 고인 물은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마음이 소리친다. '집에 가고 싶다.' 남편과 아들이 함께 기거하고, 잠을 자고 이빨을 닦고 밥을 먹는 집은 매일 간다. 아주 가까이 있으니, 곧 걸어서 집에 도착할 것이다. 마음의 소리는 물리적인 '집'이 아니었다. 


육체가 머무는 집이 아니다. 이게 뭔 소린가. 몸이 생기기 이전부터 엄마의 몸을 빌려 태어나기 전부터 기거했던 '영혼의 쉼터'와 비슷한 느낌이다.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애타게 맘 속에서 '집'을 부르짖었다. 한참을 홀로 어둠 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걸었다. 저수지의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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