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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연길모 Apr 08. 2024

다이소 플라워

너의 이 시간, 나의 그 시간

가방을 손에 들고, 이른 아침 딸아이는 등굣길을 나서죠.

멍한 미소를 머금고 손을 흔들어요.

하지만 난 이제 그 아이를 떠나보낼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에

한참 동안 앉아 있어야 했답니다.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저 작고 귀여운 것!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 같은 시간을 난 모두 잡아두려 애쓴답니다.

내가 딸아이의 마음을 정말 알고는 있는 걸까요.

뭔가 알게 될 때쯤이면 아이는 벌써 훌쩍 자라 있겠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

-ABBA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처럼(Slipping through my fingers)’」-     



  스웨덴 그룹 ABBA의 「Slipping through my fingers」의 시작 부분이다. 이 곡은 그룹 멤버이자 부부였던 비에른 울바에우스와 아그네사 팰츠콕의 7살 딸을 보며 아버지인 비에른이 만든 곡으로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며 회한에 젖는 엄마의 심정을 담고 있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4년 만에 어렵게 딸아이를 얻었다. 그 아이는 올해 15살, 사춘기의 한가운데에 있다. 눈썹 한참 위로 짧게 자른 앞머리가 귀엽던 앞짱구 아가의 현재 앞머리는 눈을 덮고도 남는 길이로 세상을 향해 커튼을 쳐버렸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와 반짝이로 친구들보다 주목받길 원했지만, 지금은 행여나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중딩들의 대열, 완벽한 까마귀 떼에 합류했다.

  4학년까지 딸아이는 내 품에서 잠이 들곤 했지만, 지금은 자기 방에서 스트레이 키즈(아이돌 그룹)의 노래와 사진을 보며 꿈나라로 간다. 예전 같으면 나의 단호한 “안돼!” 한마디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상황이 종료되곤 했지만, 지금은 “내가 알아서 할게!”라는 말로 내 잔소리를 막는다.

  이젠 아이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다. 딸아이 친구 엄마들을 만나면 외계인처럼 변해버린 아이들에 관해 앞다투어 분통을 터트린다. 나도 낯설게 변한 딸을 보며 답답하고 섭섭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든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부부 싸움에는 패턴이 있었다. 한창 일할 나이인 40, 50대에도 경제활동을 하지 않던 아버지는 해가 지면 만취해 귀가했다. 그런 아버지를 향해 엄마는 잔소리를 퍼붓는다. 그러면 아버지는 ‘여자 하나 잘못 만나 내 신세가 이렇게 됐다’라고 받아친다. 이에 질세라 엄마가 ‘그럴 힘이 있으면 돈이나 벌어와!’하고 악을 쓰면 지옥문이 열렸다. 부아가 머리끝까지 치민 아버지는 자식들과 엄마를 때리고 살림은 나뒹굴었다.

  형제들이 자라면서 아버지가 들어올 때쯤엔 싸움을 피해 집을 나가고 막내인 나와 엄마만이 아버지를 맞이했다. 내가 집을 나가지 못한 이유는 어리기도 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엄마가 우리를 버릴까 봐 두려워서였다. 우리 6남매의 저 깊은 무의식에는 ‘엄마가 우리를 버릴지도 모른다’라는 공포가 있었다. 엄마가 새처럼 훨훨 날아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해서도 있지만, 객관적으로 봐도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나가는 게 행복할 것 같았다.

  온종일 고무 타는 냄새와 먼지로 뒤덮인 부산 사상 공단 신발 공장에서 일했던 엄마는 늘 두통에 시달렸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엄마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 밤새 시달리고 출근하면 엄마는 커피믹스와 뇌신(하얀 종이로 한약처럼 접은 뇌선이라는 두통약을 엄마는 뇌신이라 불렀다)으로 견뎠다. 그러나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 대신 우리 6남매는 철이 빨리 들었고 그와 동시에 엄마라는 진영에 똘똘 뭉쳐 아버지를 공공의 적으로 두고 엄마의 짐을 공동 부담했다.

   중학교 시절 조숙했던 나는 김완선, 소방차에 열광하며 그들의 책받침을 사 모으는 친구들을 보며 철이 없다며 깔봤다. 전학 간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도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고 옷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던가 흔한 반찬 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죽고 싶다, 피곤하다, 느그 아버지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 등 엄마의 푸념을 들으며 그 감정 찌꺼기를 내 안에 심었다.

    

  성인이 된 후 어느 날 KBS 아침마당 ‘부부 상담’을 보게 되었는데 상담자로 나선 신경정신과 전문의 송수식 박사의 말이 내 안에 돌을 던졌다. 그는 엄마와 딸은 내면 깊숙이 연결되어 있는데 부부 사이가 나쁜 엄마가 자신의 고단함, 두려움, 불안 등을 딸에게 쏟아내면 모녀는 ‘미분화 未分化 감정의 덩어리’ 상태에 놓이게 된다고 했다. 이 현상이 낳는 큰 문제는 딸이 성장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고 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 것, 바로 ‘자존감’을 얻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 엄마에게서 지속해서 아버지 욕을 듣고, 아버지를 혐오하며 자란 딸들은 성인이 된 후 원만한 이성 관계가 어렵다고 했다.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엄마가 보는 대로 세상을 봤고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았던 나는 조숙한 아이가 아니라 가짜로 성숙한 아이였다. 이성과의 관계에서도 겉으로는 센 척했지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나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란 두려움 때문에 남자를 피해 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침마당 시청 이후로 엄마를 향했던 관심은 점점 ‘나’ 자신으로 향했다. 심리학책을 읽으며 내 상처를 돌보기 시작했고 피를 빼서 다시 수혈하고 싶을 만큼 미웠던 아버지의 외로움도 볼 수 있었다. 그 무렵 결혼했고 다행히 엄마처럼 살지 않았다.      


  딸아이는 올해부터 용돈을 5천 원 올려달라고 주장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었으니, 화장도 해야 하고 아이돌 굿즈 등 살 게 많다는 이유였다. 인상된 용돈을 주니 설날 세뱃돈 일부까지 꺼내어 중딩들의 방앗간, 다이소에 간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화장품과 스트레이 키즈 오빠들 사진 수납함을 사기로 했다나. 우리 부부는 외출하는 길에 다이소 앞에 딸아이를 내려 주었다. 백미러로 보니 느닷없이 매장 앞 대형 거울 앞에서 셀카를 열심히 찍는다. 친구들이 도착하자 웃으며 다이소로 들어가는 모습이 꽃처럼 환하다.

  새 학기가 되자 친구를 사귀기 위해 반 친구들을 열심히 관찰하고 아이돌에 희희낙락하며 학원 숙제가 고민인, 그저 15살 소녀로 사는 딸의 삶은 그 어떤 것보다 위로가 된다. 아이와의 시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동시에 자식을 향한 짝사랑의 길이 시작되었지만, 웃으며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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