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1개월간 벌어진 6.25 전쟁에서 1950년 7월 5일 미군과 북한군의 ‘죽미령 전투’가 있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된 오산 유엔군초전기념관에는 주로 성인들이 온다. 어린이는 단체로 오거나 부모를 따라오는 경우가 많다. 그곳에서 해설사로 일하는 나 또한, 어린이에게 해설할 일은 없었다. 코로나19가 온 세상을 휩쓸기 전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단체 관람이 예약되면 교육 해설사들이 아이들의 해설뿐만 아니라 죽미령 전투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해 단체 해설이 중단되자 교육 해설사는 모두 그만두고 해설사도 여섯 명 중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코로나19가 물러가고 기념관에도 단체 관람객이 밀려들었다. 근처 국군, 미군 부대뿐만 아니라 각종 기관에서 예약하기 시작했다. 반가운 소식들 사이로 걱정스러운 예약도 있었다. 그것은 초등학교 단체 관람이었다. 기념관에서는 예산 문제로 교육 해설사를 예전처럼 많이 뽑지 못하기 때문에 성인 대상만 하던 내게 어린이 해설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번잡스럽다. 떼로 몰려다니면 더욱 용감하다. 튀기 위해 엉뚱한 질문으로 무장한다. 집중 시간은 평균 10분이다. 이런 것이 내가 초등학생에게 가진 편견이었다. 예전에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쳤었지만, 학습 의욕이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몹시도 고통스러웠다. 그리 반갑지 않은 아이들을 그것도 단체로 해설할 생각을 하니 심란해졌다.
올해는 수원에 있는 보훈 관련 기관에서 초등학생들을 많이 데려왔다. 그곳은 반 단위로 교육을 한 뒤 우리 기념관에서 전시 관람으로 마무리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했다. 지난 4월 수원에 있는 초등학교 4학년 한 반 24명이 왔다.
어린이에게 해설하니 그동안 습관처럼 썼던 말들을 쉽게 풀어내야 했다. 예를 들어 ‘지연 작전’, ‘포로수용소’, ‘포위’와 같은 말뿐 아니라 ‘여든아홉’, ‘쉰여섯’과 같은 우리말 숫자도 알아듣지 못해서 쉬운 말로 천천히 말해야 했다.
1층에서 신이 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2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해설의 시작은 6.25 전쟁 발발 배경을 우리나라 지도를 보며 한다. 아이들은 그 지도를 서로 가까이 보겠다고 순식간에 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나는 꼼짝없이 벽에 갇혀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본 어느 남학생이 소리쳤다.
“선생님, 앉으라고 하세요!”
그 얘기를 듣자 나는 외쳤다.
“모두 앉아!”
아이들이 앉자, 불평의 구시렁거림 하나 없이 신기하게 고요해졌다. 지혜로운 남학생 덕분에 해설은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애국자가 되는 지점이 있는데 죽미령 전투 장면을 위해 미니 입체 세트를 만든 디오라마 전시실에서다. 전투 장면에서 유엔군이었던 스미스 특수 임무 부대가 북한군에게 포위당하면 여기저기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 나오고 어린이들의 감정이 격해진다. 그러다 장면이 바뀌어 유엔군의 참전을 뜻하는 만국기가 지나고 마지막으로 태극기가 나오면 환호성을 지른다. 깜깜한 전시실에서 애국심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들을 보면 굳었던 나의 얼굴은 미소로 번진다.
어느 오후 오산의 한 초등학교 5학년 선생님 몇몇이 단체 관람에 앞서 답사를 왔다. 다음 주 이틀간 5학년 네 개 반이 오는데 해설 예약을 부탁했다. 유엔군초전기념관과 2021년에 개관한 스미스 평화관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듣고 돌아서던 학년 주임 선생님이 내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학교는 다문화 가정이 많아서 아이들이 이해력이 떨어지고 아주 산만해요. 힘드실 거예요. 참고하세요”
나를 위해 건넨 말이었지만 오히려 내 속을 쏘삭쏘삭 들춰놨다.
며칠 후 드디어 아이들이 도착했다. 두 반이 왔는데 두 번째 반이 학년 주임 선생님의 7반이었다. 외모가 다문화 학생이다 싶은 아이들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유달리 산만하고 내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또 부스스한 머리를 하거나 다른 가족이 많이 입어서 늘어진 큰 옷을 입은 아이들이 몇몇 있었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기에 앞서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해설사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면 공원 놀이터에서 놀다가 학교 갈 거야. 알았지? 조용히 집중 잘하자?”
“네!”
그러나 2층으로 올라가 해설을 시작하니 조금 전 대답이 무색하게 두 남학생이 까불기 시작했다. 통통하고 키가 큰 아이와 삐쩍 마르고 작은 키에 아버지의 옷을 입고 온 것 같은 아이 둘이 내 말꼬리를 잡고 약을 올리기 시작했다. 점점 용감해지는 두 아이를 보며 나는 그들의 이름을 물었다. 민서와 정현이라고 했다. 30분 정도 이어지는 해설 시간 내내 그 두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집중을 시키자, 초반에는 놀랐는지 해설 방해가 누그러졌다. 그러나 나중에 배가 나온 민서가 바닥에 누워버리고 그 옆에서 정현이가 낄낄대자 그마저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담임 선생님은 학교가 아닌 공원 놀이터로 가자고 했다. 그녀는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에게 나가기 전 화장실에 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7반 아이들이 다 나간 줄 알았는데 정현이가 뒤늦게 화장실에서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향했다. 까치집 머리를 한 정현이를 보며 말했다.
“정현아, 선생님은 네가 안 나온 줄도 모르고 가셨나 봐. 대박이다.”
그러고 나서 아이를 보니 울고 있는 게 아닌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센 척하며 삐딱하기만 하던 녀석이 금세 아기같이 울었다.
“아니야, 아니야, 바쁘셔서 깜빡 하셨겠지. 설마 너를 잊으셨겠어?”
나의 어설픈 위로에도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정현이와 담쟁이 벽을 돌아 놀이터로 향하자, 민서가 달려왔다.
“야, 너 어디 갔었어! 내가 찾으러 다녔잖아!”
민서의 말에 정현이는 활짝 웃으며 친구를 앞서 달려 나갔다. 두 마리 강아지처럼 엉켜 장난치며 멀어지는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속에 봄볕 아지랑이가 몽실몽실 피어나는 것 같았다.
어린이는 예상대로 귀찮고 손이 많이 갔지만, 생각보다 지혜롭고 사려 깊었다. 거기다 어른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그들의 연약한 뒷모습을 발견하자 어린이를 향한 냉담함이 누그러졌다. 11월 단체 예약을 받은 주임님이 내게 전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