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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오리 Feb 07. 2024

번역가의 슬픔과 기쁨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노지양 지음(북라이프, 2018

코로나를 통과하면서 떠오른 인기직종 중 하나가 ‘번역가’였다고 한다. 자택근무를 할 수 있고 근무시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으며 책을 찾는 사람도 큰 폭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나날이 발전하는 AI기술로 제일 먼저 사라질 직업중 하나가 번역가라는 의견도 있다. 격주간지 「기획회의」587호에서는 ‘챗GPT시대의 번역’이라는 이슈를 통해 번역가의 현주소를 탐색하기도 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번역가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늘고 있다 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과연 번역가라는 직업은 어떤 면을 가지고 있을까? 번역가 노지양의 에세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북라이프, 2018)를 통해 조금이나마 그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저자는 연세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고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하다 번역가가 되었다.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 <헝거>를 등 다양한 분야의 책 80여권을 우리말로 옮겼다. ‘“글쓰고 싶다”라는 가사로 된 99절 노래를 부르며 주변인을 괴롭힐‘정도로 자신의 글을 쓰고 싶었던 저자는 ‘머리로만 에세이를 쓰’던 자신을 버리고 글쓰는 사람으로 변신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영어단어와 매칭된 각 에피소드는 번역가의 불안과 만족감, 자괴감과 긍지, 실패와 반전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일상에서 고군분투하는 번역가의 리얼한 모습을 보여준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서와 독서대, 마우스로 ‘대치동 학원가 고3의 백팩’을 메야 했고, 검색을 위한 빵빵한 와이파이가 없다면 ‘분노조절장애’에 휩싸이게 되는 것이 번역가의 실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원고를 넘기고도 출간이 되지 않아 8개월이 지나도록 원고료를 받지 못하기도 하고 마감을 연장하려 했다가 오히려 책을 돌려달라는 편집자의 회신을 받기도 한다. 번역이 형편없고 오역이 많다며 “백 번 천 번 생각해봐도 번역료를 다 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메일을 받은 경험은 ‘실존적 위기’ 그 자체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성공 이후 쏟아지는 의뢰를 거절해야만 하는 대목에 이르면 독자도 그의 성공을 덩달아 기뻐하게 되지만, 사실 일이라는 게 그렇지 않은가. 항상 나쁘지만은 않듯이 항상 좋지만도 않은 것이다.


“나는 넓은 안목으로 다양한 인간군상과 직업군에서의 야망과 심리를 연구하는 데는 아무런 소질이 없고 오로지 내 감정과 내 생각과 내 야심과 내 실패만 나노 단위로 들여다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이기에 어디까지나 내 위주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p.188)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보편적인 것’일수도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는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지 않는다. ‘실패와 우울과 좌절’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자신을 긍정하는 저자의 모습은 독자에게 공감과 응원, 위로의 메시지를 전한다. 곳곳에 포진한 유머 또한 읽는 맛을 준다. 번역가라는 직업을 가진 한 사람의 책이지만 사실은 일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제목에서도 말하듯이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날도 있는’ 법이니, 마음속에 하고 싶은 일을 품은, 간절함이 있는 독자가 읽게 된다면 같은 편을 갖게 되었다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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