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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점 Nov 24. 2020

디자인 레퍼런스의 활용

거인 어깨 위에 올라타기

나는 레퍼런스 자료에 대한 욕심이 조금 있어서 학생 때부터 꾸준히 모아왔다. 또 모은 레퍼런스 자료를  분류하고 정리하는 취미 아닌 취미가 있다.


아무래도 자동차를 그리는 일을 하다 보니 자동차 관련 레퍼런스가 많다.

나의 자동차 관련 레퍼런스의 종류를 크게 분류해보면 다음과 같다.


-렌더링들

-사진들 (아름답게 찍힌)

-인스퍼레이션 이미지

-휠, 디테일

-블루프린트

(자동차뿐만 아니라 건축, 일러스트, 패션, 사진 등 기타 관심 분야의 자료들도 다양하게 모으고 있다.)



내가 이렇게 탐욕스럽게 레퍼런스를 모으는 이유는 레퍼런스가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처음 어떤 디자인을 시작하면 자기가 그 디자인에서 추구하는 느낌 같은 느낌이 있을 것이다. 

(우아하면서 샤프하게, 미래적이면서 프로덕션 느낌 나게 등등)

그런데 정작 빈 종이를 보면 막막하다.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미지는 희미하게 머리 안에서 떠다니고 있는데 나조차 그게 뭔지 정확히 잘 몰라서

종이나 포토샵에 재현해내기 곤란할 때가 많다.

그럴 때 모아 놓은 레퍼런스를 훑어보면서 내가 구상하는 이미지와 비슷한 레퍼런스를 찾다 보면 

희미하고 추상적이던 이미지가 점점 구체화되며 내가 찾던 이미지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머릿속에만 있던 이미지와 실제 눈으로 형태와 면이 보이는 것은 확연히 다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은 힘들어하지만 이미 있는 것을 평가하는 것은 쉽게 생각한다. 힘들게 영화를 만든 영화감독들이 쉽게 말하는 평론가들 보고 '네가 해보든가'라고 말하는 경우나 남들이 옷 입은 걸보며 이쁘네 별로네 하지만 막상 내가 외출을 하려 하면 입을 옷이 없어 곤란한 때를 떠올려보자.


이렇듯 사람은 뭐라도 베이스가 있으면 좋고 나쁨을 구분하고 거기서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 베이스가 되는 레퍼런스 자료가 있으면 디자인 프로세스가 휠씬 빨라진다. 여기서 레퍼런스 자료는 자기가 추구하던 이미지를 구체화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 되든 상관이 없다. 새로 나온 차가 될 수도 있고 패션이나 추상화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구체적일수록 적절한 레퍼런스 자료를 찾기가 수월하다. 디자이너들이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인스퍼레이션 이미지들을 많이 찾아보는 게 그런 이유이다. 자기 머릿속의 이미지를 인스퍼레이션 이미지로 빠르게 구체화한 뒤 자기의 생각을 더해 조합하면 나만의 새로운 것이 탄생하는 것이다.





인스퍼레이션 이미지의 예들. 예시처럼 멋진 사진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멋있으면 왠지 있어 보인다.





기존에 있는 것들을 변형한 예를 간단하게 알아보자. 애플 제품을 예로 들면

아이폰이나 아이패드의 경우 이미 오래전 나와있던 자사의 제품 뉴턴 메시지 패드에서  펜을 없애고 현대적으로 디자인을 단순화한 경우다. 반대로 아이패드의 커버는 점차 기능이 복잡해지고 추가되었는데 처음엔 단순했던 커버에 결국엔 키보드까지 달려 나오게 되었다. 이렇듯 디자인은 기존의 것에서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지 하늘에서 바로 새로운 게 떨어지진 않는다. 







얼핏 보기에 이런 방식의 레퍼런스 활용은 타인의 아이디어에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럴 땐 '내가 인스퍼레이션으로 사용한 이미지도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일 것이고 내가 만든 작품도 누군가에 (hopefully..) 영향을 줄 것이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그렇다고 듕국처럼 작정하고 베끼지는 말고..) 무엇보다 디자이너로서 스스로 떳떳하다면 괜찮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은 디자이너들 사이에 즐겨 쓰는 말이다.(약간의 자기변호;) 특히 익스테리어 디자인의 경우 새로운 건 다 나왔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모름지기 실력 있는 디자이너란 이미 있는 것들을 잘 조합하고 변형시키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정말 새롭고 멋진 디자인을 보았을 때 '와 천재네 어떻게 저런 생각했을까..' 라며 감탄하기보다 '아 저렇게 단순한 걸 왜 나는 왜 진작 생각 못 했을까..' 라는 탄식에 가까운 기분이 더 많이 든다. 기존의 것과 사소하게 다른 차이가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만들 때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비록 난쟁이여도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다면 더 멀리 볼 수 있을 것이다.

인터넷, SNS의 발달로 다양한 분야의 퀄리티 있는 이미지를 예전보다 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나보다 휠씬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은 작품들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포토샵 스킬이나 디자인의 발전 속도가 예전보다 많이 빨라진 것 같다. 레퍼런스 이미지를 활용하는 것은 거인의 어깨 위로 오르는 좋은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영감만큼 나의 작품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어 그 선순환에 미약하게나마 기여가 되었으면 한다.  




*레퍼런스 자료를 웹상에서만 모으는 사람이 있는데(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레퍼런스는 가급적 컴퓨터에 모으는 걸 추천한다. 컴퓨터에서 관리하는 게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이다. 또한 무작정 모아두지만 말고 필요 없어진 레퍼런스는 지우며 정리를 해줘야 필요할 때 신속하게 찾을 수 있다.


* 디자인에서의 레퍼런스 활용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였는데

다른 분야 예를 들면, 스케치나 렌더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원하는 느낌의 렌더링과 비슷한 느낌(색이나 빛의 방향, 러프한 정도)의 렌더링을 참조해가며 렌더링을 하면 휠씬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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