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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상혁 Sep 18. 2024

안전벨트를 안맸더니 삐 삐 삐 소리가 울렸다

나도 효도하고싶다고

안전벨트를 안맸더니 삐 삐 삐 소리가 울렸다. 누나와 매형이 김해 집으로 돌아간다. 나는 아빠 집에 하루 더 남기로 했고. 매형이 내가 카페 가는 길에 태워다준다고 했다. 당연히 카페는 걸어서 10분쯤 되는 거리이기 때문에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삐-삐-삐. 나를 안전벨트 빨리 매라고. 안전밸트 안매면 너 죽는다고. 안전밸트 안매고 너 죽으면 내가 너 책임져야한다고. 차가 계속 소리를 울려댔다. 나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 어차피 곧 도착할거고 어차피 난 안죽을걸 알기 때문이었다. 원래는 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나는 그 소리라도 멈추려고 안전벨트를 꽂는 스위치를 눌러보기도 했는데 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그러다 카페에 도착하기 1분쯤 전인가. 소리가 멈췄다.



나는 누나를 만나는게 영 불편하다. 누나는 맨날 나에게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너 때문에 아빠가 돈도 못모으는거 아니냐고. 왜 지금까지 아빠 용돈쓰고 사냐고. 빨리 돈이나 벌으라고. 20대 중반까지는 누나는 나에게 큰 기대를 품었다. 그래 돈이나 많이 벌어라. 유투브 해서 구독자 많이 모아서 너가 좀 아빠 잘 챙겨줘라. 누나의 목소리는 내 내면의 소리였다. 나는 그 내면의 소리를 따라서 최선을 다해 내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으나. 삶은 생각대로 풀리지 않았다. 누나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게 내탓인 것처럼 느껴졌으므로. 난 하루하루를 곧 내일 당장 죽는 것 같단 마음으로. 하지만 1년 후의 영광을 위해서 살았으나. 나는 내일 죽지도 않았고. 1년 후에 영광도 없었다. 그러면 그럴수록 누나의 잔소리는 내 내면 깊숙히 파고들었다. 누나가 없어도 파고들었고. 누나가 있을 때 누나가 하는 한 마디에 나는 금방 슬픔구덩이가 건드려져 속으로 울음을 터트렸다.


누나의 잔소리는 이제 많이 축소되었다. 더 핵심을 짚게 되었다. 안전벨트를 매라고 하는 삐 삐 소리처럼. '이젠 그냥 돈이나 좀 벌어라.' 아주 현실적인 잔소리다. 아주 비현실적으로 돈도 안벌고 있던 돈 다 축내고 있던 나. 주변 사람들 다 걱정끼치고 주는 것들 다 받아 쓰고 있는 나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하지만 나는 더 바라고 있었다. '아니 누나. 이제 잔소리좀 그만하고 그냥 받아들여. 동생의 삶이 이렇다는 것을. 아빠가 돈이 없건. 아빠가 앞으로 어떻게 살지 누나가 걱정이 되건. 그건 내 책임이 아냐. 누나가 그렇게 걱정이 되면 누나나 좀 더 잘하면 될 거아냐. 만나서 맛있는거 사주는 정도 말고. 아빠가 보고싶다고 하면 좀 바로 광양으로 가. 아빠가 술먹고 친구들이랑 지내는 삶이 행복하다고 하면 그냥 그게 행복이라고 인정해. 누나가 안정적으로 삶을 꾸리면서 했다는 책임도 책임이겠지만. 아빠의 행복을 존중하는 거. 아빠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최선을 다한거. 그것도 내가 다한 책임이었어. 이제 그만 내가 다했던 책임도 인정해.'


그렇지만 난 누나의 잔소리가 축소되어가는 과정에서 누나가 동생인 나에게 갖는 애정을 본다. 내가 점점 한심해지면 한심해질수록. 내가 초라해지면 초라해질수록. 누나는 나를 더 한심하다고 말하고. 나를 더 초라하게 바라볼 수도 있었을텐데. 누나는 나에 대한 초현실적인 기대를 점점 내려놓으며 이제는 나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의 아주 현실적인 잔소리만을 내뱉고 있었다.


누나의 잔소리가 다 지나가길 나는 바란다. 누나가 나에게 잔소리하는 것을 포기해버리길 나는 바란다. 누나가 바라는 아빠의 행복. 누나가 지키고 싶어했던 우리 가족의 행복을 나도 바라고, 나도 지키고 싶다고. 외치고 싶지만 누나는 인정해주지 않는다. 내가 방향을 세우고 노력하는 과정이 아직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나가 내가 그 결실을 보기 전에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바라봐주길 나는 원한다. 언뜻보기에는 내가 무책임하게 엄마 아빠의 등골을 다 빼먹은 것처럼 누나 눈에는 보이겠지. 누나가 그거 빼먹지 않으려고 열심히 살 때 나는 이기적으로 하고싶은거 다하면서 산 것처럼 보였겠지. 하지만 아냐. 나는 어떻게든 누나가 바라보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열심히 찾아 헤매고 있었던거라고. 누나가 아빠를 바라보듯이, 누나가 아빠에게 아쉬운 마음을 품듯이 원망 위에서 내가 잘하는 그런 행복 말고. 아빠의 삶에 완전히 감사하고 아빠에게 아쉬운 것없이 다 받고 나서 아빠에게 되갚는 그런 효도를 나는 해보고싶었던거란 말야. 난 한 번도 아빠를 죽이고 싶지 않았고. 난 한 번도 아빠를 놓지 않았어. 내가 크게 성공해서 우리 가족의 운명을 바꾸겠다고 했을 때도, 돈을 벌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듣지 않는 척 딴 청을 피우는 지금도.


누나의 잔소리는 이제 나의 슬픔구덩이를 건들지 않는다. 이미 내가 혼자서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다 풀어헤친 슬픔구덩이이기 때문이다. 그냥 단지 바랄 뿐이다. 누나의 잔소리가 더 사글아들어 가라앉아 모두 지나가기를. 안전벨트를 매라는 경보음이 멈췄더니 매형이 놀란다. 어 소리가 멈추네? 이거 포기했네 포기했어 ㅋㅋㅋ  야 나는 이게 멈추는지 몰랐네. 이거 이 차 회사 이놈들 자기들 책임 다 했다 이거지. 사고 나도 내 책임 아니라고 하는거고만. 나는 할 일 다했으니 사고나면 당신 책임이라고 소리 끝까지 안내네 하면서 허허 웃는다. 나도 같이 허허 웃으면서 덧붙인다.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끝까지 버티면 다 포기하더라고요. 허허" 매형은 크게 웃는다. 카페에 도착했다. 나는 매형과 누나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둘째를 가지게 된 누나에게 몸조리 잘하라는 인사를 한 뒤 우리는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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