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ryam Sep 06. 2021

채식을 하지만 식물도 동물만큼 사랑한다

잘라내기로 결정한 동네 나무를 지켜주고 싶다

“내가 살려 줄게... 꼭”

이렇게 말은 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면 한 번 내려진 결정이 번복이 되어 저 커다란 나무를 살려낼지 잘 알지 못합니다.     

제주시 중앙로 원도심에 가면 옛 제주대병원 그러니까 지금은 제주대학교 창업보육센터와 예술공간 이아 건물 옆으로 난 작은 골목길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중앙로에 들어선 예멘 식당 와르다의 단골이 되고 바로 그 옆으로 난 작은 골목에 가끔 눈이 갔습니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들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은 작은 골목 입구, 바로 창업보육센터 옆으로 난 골목의 맞은편 쪽 끝부분입니다. 


와르다에서 식사를 주문해 놓고 우연히 들어선 그 골목에서 마치 보물을 찾은 것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골목 안에는 아주 오래된 초가집이 있습니다. 민속촌 초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멋진 초가입니다. 할머니가 사신다고 하시는데 마당에는 장독대 기능을 하는 듯한 높은 단이 있고 생각이 많은 듯 보이는 꽤 성숙한 느낌의 개, 빤히 바라볼 줄 아는 개가 한 마리 있습니다. 동화 속 공간처럼 신비로워 보이는 곳입니다. 널찍한 마당에는 염색한 천을 널어 말리는 듯 커다란 이불보 같은 천이 빨랫줄에서 바람을 탑니다. 사실 이 집은 담이 높아서 168cm 인 저도 깨금발을 들어야 살짝 엿볼 수 있습니다. 


초가집을 지나 조금 더 가다보면 골목의 한 가운데 쯤 공동수도가 있습니다. 예전 우물이 있던 자리라고 누군가에게서 들었던거 같습니다. ‘저 수돗가에 앉아서 물을 팔아볼까? 봉이 김선달처럼?’ 이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판다는 말은 우스개 소리고 수돗물 홍보를 해볼까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하고 있습니다. 아마 곧 그러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우측으로 빨간 벽돌집이 있습니다. 지은지 50년이 되었다는 집입니다. 꽤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아서 더 이상 집으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집이지만, 비가 오면 물도 새고 벽에 금도 간 집이지만, 우연히 이 집에 들어가 금방이라도 무너질듯한 철로 된 계단을 올라 폐허같은 2층에 올라가 본 이후로 이 집 2층은 우리 단체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한눈에 반해버렸습니다. 


누구 말처럼 허물어져가는 집을 꾸며 이슈를 만드려는 것이 아닙니다. 2층에 올라 바라본 풍경은 누구든 호감을 가게 했을 겁니다. 이렇게 멋진 공간이라니. 이런 공간이 이렇게 버려져 있다니 안타깝고 또 반가운 마음에 당장 그 공간 관리자 분을 만나 월세 20에 계약을 했습니다. 거저먹기지요. 우리 공간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바로 2층 공간에서 바라본 멋진 뷰입니다. 


허물어져 가는 공간 내부로 조금은 심란해진 마음도 눈을 돌려 골목길 쪽을 바라보면 금새 가슴이 탁 트입니다. 살짝 경사진 대지에 조금 조그맣게 들어선 집들과 그 사이사이 나무들. 마음이 웃습니다. 무엇보다 이아(창업보육센터)건물 옆의 웅장한 나무를 좋아합니다. 창업보육센터 건물 높이 만큼 키가 큰 이 나무 이름이 뭔지는 모릅니다. 인간이 붙힌 이름에는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름은 모르지만 키가 크고 그 키만큼이나 나이도 많아 보이고 그러면서도 아직도 활기차게 잎을 피우고 가지를 뻗쳐서 골목길을 지키는 대장군 같습니다. 너무 멋진 조화입니다. 


여름이 끝나가고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하던 며칠 전부터 슬슬 공간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기부받은 쓰다 남은 페인트로 실내 벽을 칠하니 그래도 단정한 느낌이 납니다. 천정에서 돌가루에 부서져 내려서 걱정하는 친구도 있지만 주문한 아이비 화분들이 들어오니 공간이 금새 달라진 듯합니다. 흙 14포대를 혼자서 2층으로 올리는데도 즐겁기만 합니다. 공사중인 옆집에 들러 버리는 화분을 얻어오는데 사장님이 불쑥 말을 꺼내십니다. “이 나무들 다 베어낸대요. 나무가 너무 커서 집 지붕을 덮어서 피해가 있나봐요. 그래서 이아에서 밑둥까지 다 잘라내기로 결정했대요.”

잠깐 흥분해서 뭐라뭐라 떠들었습니다. 이미 다 결정났다니. 


가끔 생각합니다. 동물과 식물의 차별이 타당한가. 이렇게 커다랗고 생명력이 왕성한 나무를 불편이란 이유로 그렇게 쉽게 잘라내는 것이 맞는 걸까? 인간은 어쩌다가 이렇게 다른 생명들의 목숨을 쉽게 거둬가는 권한을 가지게 된걸까? 물론 당장 이 나무들이 없이 창업보육센터 건물 몸뚱아리가 그대로 노출되면 우리공간에서 보는 뷰도 한등급 떨어지겠구나 하는 이기적인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진심은 그 크고 멋진 생명체를 살려내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는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입니다. 서울의 세배나 되는 제주도를 사람들은 마치 작은 소도시처럼 생각하기도 하는 듯 합니다. 생활반경이 큰 사람들은 대중 교통이 너무 불편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꾸 차를 사고 도로를 더 넓히려 듭니다. 그냥 생활 반경을 좀 좁히고 건강을 위해 몸을 좀 더 쓰면서, 좀 더 걷고 움직이면서 살면 안되는 걸까요? 제주버스시스템을 많이 좋아하지만 몇 년 전 버스노선을 정비할 때 아라동 성안교회 근처의 도로 중앙에 있던 멋진 나무들이 베어졌을 때의 그 서글픔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제주에 이사 온 첫해에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 되고 차들이 멈춰섰던 그 때, 저는 운동화 위로 아이젠을 끼고 거리를 걸었습니다. 흰 눈으로 뒤덮힌 도로 가운데에 우뚝 솟은 나무들에 반해서 무신론자면서 성안교회를 참 많이도 갔습니다. 그 길이 걷고 싶어서요. 그런데 어느날, 아무 예고도 듣지 못했던 어느날, 도로에서 그 나무들이 모두 베어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바보처럼 울었었습니다.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우리 공간 앞의 그 나무가 같은 신세가 되었다는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말해 버렸습니다. ‘내가 살려 줄게.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살려 줄게’     

집에 와서 오늘 일을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려는데 좀 무서워졌어요. 혹시 당장 내일 베어지면 어떡하지?

지금 새벽 2시를 조금 넘어섰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씁니다.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우선 쓰고나서 누군가가 떠오르길 그리고 그 누군가가 또 누군가를 떠올려서 

그 나무를 죽이지 않고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내길 말이죠.     

내가 살려줄게... 말했지만 저혼자서는 어떻게 당장 해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가 아니라 우리가 살려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이 글을 다시 읽어보니 뭘 이렇게 구구절절 길게도 썼는지... 수다스럽다는 걸 알았지만 글로도 참 수다를 떨었어요. 더 이해받고 싶어서라고 생각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