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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고기는 고마웠어 May 28. 2018

사랑하는 이에게 1,000만 개의 별을 선물하

술가게의 술 이야기 1 - 신혼부부를 위한 와인 선물



8년간 교제해오던 대학 동아리 후배 커플이 절반은 상기되어, 절반은 멋쩍다는 듯 청첩장을 주었다. 결혼하는구나 하는 반가움과 기쁨이 우선이고, 이미 함께 있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커플에게 어떤 결혼 축하 선물이 좋을까 하는 고민이 이어서 일어났다.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로제 샴페인.  


샴페인, 넓은 명칭으로 스파클링 와인. 처음으로 마셔본 소위 '샴페인'은 어렸을 적 동네 우리슈퍼와 경쟁관계에 있던 대전슈퍼에서 팔던 복숭아맛 '샴페인'이다. 막 대학생이 된 큰오빠는 초등학생 막내에게 여러 신문물을 알려주고 싶어 했는데, 그 중 하나가 12월 31일 자정이 되면 '샴페인'을 터트리며 새해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90년도 대학에 입학한 큰오빠는 LP와 영화 잡지를 수집하고 동시 상영관에 즐겨 갔는데, 그 상영관 어느 영화에선가 본 것인지, 어느 영화 잡지에서 본 것인지 12월 31일 자정에 '샴페인'을 꼭 마시고 싶어 했다.  


그렇게 갓 대학생된 19살과 12살 초등학생은, 미성년자 주류판매금지가 아직 터잡기 이전인 1990년도 세밑에 대전슈퍼에서 800원짜리 피-치맛 '샴페인'을 사들고 새해를 맞으러 집으로 향했다. 고급 '샴페인'을 사고 싶었던 큰오빠는 5,000원짜리를 챙겨왔는데, 복숭아맛 '샴페인'이 800원이라는 것을 알고 한편으로는 기뻐하면서 한편으로는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당시 진로가 한 병에 400원이었으니, 지금 가격으로 환산하면 한 3,000원쯤 하는 '샴페인'이었던 것 같다.) 


신년맞이 카운트다운 세계 버전을 본 적 있는지? 3...2...1 해피 뉴이어!!를 외치며 비추는 뉴욕의 타임 스퀘어는 와!!! 런던의 트라팔가 스퀘어도 와!!! 대만의 101 타워는 펑펑펑 와!!! 동경의 도쿄타워도 와!!! 그러나 종각의 보신각종 앞은 3...2...1...뎅.... 하는 종소리와 함께 순간 명상, 침묵 그리고 고요가 펼쳐진다. 새해를 평온하고 엄숙하게 맞이하는 시장님과 새해의 복을 조용하고 간절하게 기원하는 수만 관중이 화면에 잡힌다.

                                       

신년을 맞는 대만의 101 타워

그렇게 뎅... 소리와 나의 최초 피-치맛 '샴페인'은 퐁 하고 터졌고, 들큰하고 시금털털한 첫 샴페인을 경험했다. 음주는 식생활의 일부라는 가풍 덕분에 첫 숙취가 9살에 있었던 필자는, 12살 나이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샴페인' 테이스팅이 가능했다.  


샴페인은 축하와 흥겨움 그리고 희망과 어울리는 DNA를 가진 것 같다. 그 '퐁'하는 소리는 언제 들어도 경쾌하고, 잔에 부었을 때 폭폭폭 솟는 거품과, 입에 물었을 때 솨 하고 입안 가득 물리는 버블은 심장을 반 계단쯤 올려려 두근거리게 한다.  


이 두근거림. 신혼에 이보다 어울리는 선물이 있을까? 꼭 비싼 샴페인일 필요는 없지만, 이왕이면 프랑스 샹파뉴 지역에서 생산되어 합법적으로 '샴페인'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 주류라면, 최고의 선물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샹파뉴 지역은 프랑스 왕이 대관식을 올리던 지역. 11세기부터 19세기까지 8세기에 걸쳐 약 30여 명에 달하는 프랑스 왕들이 대관식을 올린, 프랑스 왕가의 ‘하이엔드’ 지역이 이 곳 샹파뉴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프랑스 왕들, 삼총사로 유명한 루이 13세,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 등등도 모두 여기서 대관식을 올리셨다. 이 곳 샹파뉴 지역은 북위 약 49도로, 상당히 추운 곳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신선한 와인을 생산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1500년대 '소 빙하기'가 유럽을 덮치며 샹파뉴 지역은 운명이 바뀌었다.  


포도를 가을에 수확하여 즙을 짠 다음에, 오크통에 담아 두면 효모가 포도즙에 들어있는 당분을 분해하여 알콜이 만들어진다. 와인이 만들어지는 원리가 그렇다. 그런데 소 빙하기가 도래하여 날씨가 많이 추워진 까닭에, 배럴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효모가 겨울을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동안 동면하고 봄에 깨어난 효모가 다시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 탄산이 만들어 지고 마는데, 이렇게 탄산이 들어간 와인은 당시 고급 귀족과 왕족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샹파뉴 지역의 명성은 점차 떨어지게 되었고, 그 반사 효과로 그 이웃 지역 브루고뉴(버건디)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나 입맛도 세월 따라 바뀌게 되는 법, 점차 탄산이 들어간 와인이 인기를 끌게 되었다. 특히 태양왕 루이 14세가 스파클링 와인을 좋아하자, (모에샹동의 ‘돔 페리뇽’ 브랜드로 한국에서도 유명해지신) 돔 페리뇽 수사를 비롯하여 이미 프랑스 왕조 및 귀족에게 고품질 와인을 공급하던 샹파뉴 지역의 와인 생산자들은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어 냈고, 이제 샹파뉴 지역의 와인은 유일하게 '샴페인'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초여름에 많이 팔리는 로제 와인을 좋아하시는지? 레몬빛도, 자줏빛도 아닌 핑크빛(내지는 연어빛)으로 낮술로 딱 좋은 술이다. 로제와인은 보통 레드와인을 만드는 빨간 포도로 만드는데, 다만 빨간빛을 만드는 포도껍질을 일반 레드와인보다 빨리 걷어내고 나머지 포도즙만 발효시켜서 만든다. 하지만 로제 샴페인은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섞어서 분홍빛을 만드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종류의 로제와인이다. 서로 다른 두 빛깔의 와인을 섞어 감탄이 나오는 색깔의 와인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신혼 선물에 안성맞춤 아닐까 싶다.  


과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샴페인은 병 속 기압은 약 6기압 상당인데, 이를 컵에 따랐을 때 컵이 너무 깨끗하지 않고 섬유 조각 등이 있으면 거품이 나기 시작한다(소믈리에들은 헝겊으로 컵을 닦는다 -- 컵 내부를 거칠게 하는 효과와, 미세 섬유를 남긴다는 효과가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 버블의 수는 한 병에 1,000만 개 상당이라고 한다.  


“빨리 오게, 나는 별을 맛보고 있다네! (Come quickly, I am tasting the stars!)” – 돔 페리뇽 수도사님께서 하셨다는 말씀이라고 19세기의 광고에 나왔던 말이다. 과연 돔 페리뇽께서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없지만, 돔 페리뇽님을 가져다 두고 지어낸 말이라고 하더라도 하늘하늘 아름답고 어디까지 세었는지 헛갈리게 한다는 점에서 별이라는 비유가 너무나 완벽해서 충분히 용서가 되고도 남는다.  


1,000만 개의 별이 담긴, 서로 다른 두 종류의 와인이 섞어 핑크빛을 내는, 퐁퐁퐁 두근거림을 주는 핑크 샴페인이야 말로 신혼부부에게 최고의 선물 아닐까.


[왼쪽부터 돔 페리뇽 로제, 모에샹동 로제, 뵈브 클리크 로제, G.H. 멈 로제, 도멘 생미셀 로제 (필자가 아는 가격으로 높은 순에서 낮은 순으로 정렬. 구체적인 가격은 마트에서 확인하자. 와인이 생산된 연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연도 표시 없는 논-빈티지(non-vintage)가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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