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urekim Aug 14. 2019

빅컵: 땅 밑에 있는 섬

무리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이런 태도는 사실 강박적으로 무리했던 한 시절의 소산이다. 성취에는 중독적인 도취감이 있다. 불필요한 성취를 자꾸만 지향하게 하는 덫이 있다. 내가 누구인지 몰랐을 때, 더욱 그랬다. 나는 자꾸 내가 해낸 일들의 총합처럼 느껴졌고, 나는 자꾸 더 많은 일을 해내지 못해 안달을 했다. 아무리 무언가를 해내도 그 합계분은 너무나 작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다가, 문득 내가 지나온 일들과 내가 만들어낸 것들과 나 자신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해낸 것들과 내가 다르다고 할 때, 이 다름은 전혀 별개라는 의미가 아니다. 사실 나도 그게 어떻게 정확히 다른 것인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혹은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해온 것들을 통해서 내가 정의될 수 없다는 생각이 점점 팽팽하게 당겨지던 생활의 긴장을 풀어줬던 것은 확실하다. 그 후부터 나는 무리하지 않는 것에 가장 우선순위를 두었다. 그렇다고 언제나 육체적으로 무리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에 연연해서 고통받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내가 사람을 만날 때 자주 가던 카페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곳은문 밖에서 보면 갤러리 같고, 문을 열고 들어서면 카페가 되는 공간이었다. 드물게 있는 일인, 혹은 이인용 소파를 제외하면, 삼인용 소파가 과도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커다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공간이 넓은데도 불구하고, 사적공간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까닭은 역시나 과도하다 싶게 넓은 테이블 간격 때문일 것이다.


생활에서 멀어지지 않으면서 일에 몰두하고 싶을 때, 집중은 하고 싶지만 긴장은 하고 싶지 않을 때, 나는 책을 들고, 노트북을 들고 그 카페의 지하로 내려갔다. 나는 검은색 이인용 가죽 소파에 앉아 무릎 위에 책 한 권, 탁자 위에 또 한권을 펼쳐 놓고 노트북의 자판을 두드리다가 어느 순간에는 책을 다 치우고 써 놓은 내용만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다가, 머리를 젖혀 소파에 기대고 쉬었다. 차갑게 식은 차를 마시면서, 나는 내가 해 놓은 것들을 멀리 두고 보곤 했다.


딱 그만큼의 거리, 소파에 온 몸을 기대고 앉아 테이블 위에 놓인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는 그 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곳은 사적이지만 열린 공간이었다. 내가 해 놓은 것들은 내가 한 것이지만 내가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때로 저편 테이블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를, 또 저편 테이블에서 공부하는 로스쿨 학생들을 바라보기도 했다. 케이크를 먹기도 했고, 차를 마시기도 했다. 창 없는 지하의 시간은 언제나 찻집의 여유로 흘렀다.


나는 한낮에서 와서 밤으로 돌아갔다. 날씨가 천국같이 화창한 날도 있었고, 비가 쏟아지는 날도 있었다. 그 지하의 시간은 일기 없는 시간이었다. 날씨도, 계절도 타지 않았다. 그곳에는 조급함이 없었다. 괜히 들뜨는 마음도 왠지 모를 울적함도 없었다. 그래서 보고 듣고 마시고 먹는 감각이 온전할 수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하늘은 검게 변해 있었다. 그 길에서 나는 가만히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세운상가 5층: 이렇게 고요한 그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