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Oct 22. 2018

가출하는 마음

걸어서 버스타고 광화문으로


토요일 오후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가는 길이었다. 노약자석에 앉았다가 크로스백을 맨 칠십대쯤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두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한 그의 표정에는 그만큼의 미안함도 담겼다. 그는 의자에 반쯤 걸터앉아서 불룩한 내 가방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나는 무심히 창밖만 바라봤다. 서너 정거장이 지난 후에야 그는 엉덩이를 의자 깊숙이 밀어넣었고 십여 분 뒤 앞자리가 비자 내 손을 톡톡 치며 앉으라고 눈짓했다. 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린 채로 꾸벅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쌀쌀한 아침 기온에 맞춰 두꺼운 외투를 입었더니 후텁지근했다. 덥다, 덥다, 덥구나 멍하니 생각하는데 돌연 입이 삐죽거린다. 입술을 안으로 말아 꾹 잠그는데도 어김없이 눈물이 차올랐다. 안경 아래로 손가락을 넣어 눈물을 걷어냈다. 쇠약한 몸으로 사는 건 고달프다. 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앉아야만 하는 상태의 자기 몸을 나는 과연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늙고 병드는 일이 나에게만 닥칠 것 같아서 수치스럽고 서러웠다.






뜬금없던 눈물은 어제부터 고이기 시작한 우울감이었다. 가을 햇살이 등 뒤에서 쏟아지는 작업실 책상에 앉아서 나의 활기가 소멸해가는 소리를 들었다. 퐁, 퐁, 퐁, 손가락을 톡 대기만 해도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비눗방울처럼 사라지는 중이었다. 텅 빈 에너지 창고에는 괜찮은 줄 알았거나 괜찮았지만 다시 안 괜찮아진 어제의 상처들, 그 상처에서 비롯된 분노와 연민과 불안들이 자리를 메웠다.      


외부에서 새롭게 일어난 사건은 없었다. 내 안에서 불쑥 상처가 튀어나왔고 고구마를 캐듯 얽힌 감정들이 줄줄이 고개를 들었다. 위기를 감지한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SNS를 열어 새소식을 확인했다. 나의 불안을 다독일 만큼 재밌거나 관심을 끌만한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무음으로 설정된 카카오톡을 열어 내 마음을 보듬어줄 메시지가 때마침 도착하지 않았을까 기대했다가 금세 실망했다. 네이버와 쇼핑몰 앱을 순식간에 훑었다. 고통의 태풍이 가까이 왔음을 느낄 때 즉각 도망가버리는 나의 탈출구다.      


불안의 강도가 세질수록 스마트폰을 자주 손에 쥐었다. 어떤 SNS도 5분마다 한번씩 새로운 소식을 기대하는 나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새로운 피드가 올라오면 올라오는대로 남들은 성실히 성과를 쌓거나 즐기고 있는데 나는 ‘언제나’ 제자리인 것 같아 자괴감에 시달렸다. 두통과 소화불량도 느껴졌다. 마음과 몸이 연달아 탈이 나면 나는 예언자가 된다. 익숙한 일상에서 특정 장면들만 잘라 악의적으로 편집하여 예언한다.     


남편과 오늘 나눈 장난스러운 문자와 웃음은 이번이 마지막이리라. 앞으로는 물기 없고 생기 없는 목적 있는 말들만 나누게 될 것이다. 미움과 원망의 씨앗은 머지않아 이별이라는 열매를 맺는다. 딸 아이는 세상이 갈라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는 어쩌면, 사실은 아주 높은 확률로 아이의 스무 살을 보지 못하리라. 죽기 전까지 병든 나의 몸은 가족들을 지치게 할 것이고 장례식장에서 십대의 딸 아이는 무서움에 떨고 있을 것이다. 나는 흔적도 없이 세상에서 사라지리라.      




지금 느끼는 절망감이 영원할 것 같은 두려움


티슈를 뽑아 두 눈을 꾹꾹 누르기를 몇 번,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당신과 조금 전에 나눈 농담과 웃음으로 지금 행복하지만, 아주 잠깐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다. 종일 슬프고 눈물이 나는 하루다. 저녁 때 만난 남편은 내 표정을 살폈고 나는 입꼬리만 살짝 올려 보였다. 나는 잠시 무대에 오르는 배우의 마음으로 딸 아이와 웃으며 안부를 나눈 뒤 서둘러 욕실로 향했다. 평소보다 더 오래 씻고 괜스레 거실과 아이 방을 정리했다. 남편이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동안 나는 덤덤히 빨래를 갰다. 이렇게 우리 셋의 평온한 밤은 이제 몇 번 남지 않았으리라 또 다시 절망을 예언하며 울었다. 잠들어버린 아이의 등과 엉덩이에 가만히 손을 올려보며 내 감정에 발목 잡혀서 아이의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나를 원망했다.  

   

열두 살쯤 비슷한 느낌에 짓눌리며 컴컴한 날들을 보낸 적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현관에서 아빠 신발부터 찾았다. 신발이 보이면 안도했고 없으면 저 멀리 달아나고 싶었다. 밤이 되면 엄마와 아빠는 싸울 것이고 나는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고성과 상대를 찌르는 말들에 압도당해 떨고 있을 것이 뻔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갈 때면 거대한 태풍을 향해 걸어가는 것처럼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겁먹었던 것보다 덜 소란스럽게 싸움이 끝났더라도 아침은 24시간마다 성실히 찾아왔으니 불안은 내게서 좀처럼 멀어지지 않았다. 뻔한 내일이 지겨웠다.

     

어느 날 출구 하나를 발견했다. 가출이었다. 나는 토요일마다 오빠와 함께 할머니와 할어버지가 사는 강남의 어느 빌딩 옥탑방으로 가서 주말을 보내곤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이 되고부터 해왔던 주말여행이다. 할아버지는 빌딩의 경비로 일했고 할머니는 가끔 파출부 일을 했다. 그 무렵 제대한 다섯째 삼촌도 같이 살았다. 가출하기로 마음먹었던 날 나는 티비 보는 오빠와 삼촌 몰래 빌딩을 빠져나왔다. 강남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노선도를 살폈다. 익숙한 지하철이라 긴장되지는 않았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정거장을 지나다가 사람이 가장 붐비는 신도림역에 내렸다.     


낯선 곳에 놓인 나는 일단 가출에 성공했음을 자축했다. 부모의 잦은 싸움이라는 타당한 가출 사유도 마련해놓았으니 크게 혼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조금 더 버티면 엄마와 아빠에게 가출 소식이 가닿아 생존의 불안감에 매몰된 나를 구해주겠거니 예상했다. 우는 나를 의식하며 앞으로는 덜 싸울 것이라고 기대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계획과 달리 초조해졌다. 뻔한 내일은 아닐 것 같았으나 알 수 없는 내일 또한 설레는 일은 아니었다. 내가 가출한 아이라는 걸 눈치챈 누군가가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지자 한달음에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오빠가 전화를 받았다. “야 너 어디야?” 나의 가출을 눈치채고 있었다니 다행이었다. “신도림역” “거긴 왜 갔어?” “엄마랑 아빠가 자꾸 싸우니까” 삼촌이 전화기를 넘겨받았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 말을 듣기 위해 가출이라도 한듯 나는 순순히 되돌아갔다. 빌딩 앞에 다다르자 오빠와 삼촌이 보였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온몸이 쭈뼛거렸다. 삼촌은 신도림의 ‘신’자도 언급하지 않은 채 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나와 오빠에게 삼겹살을 구워 먹이고 서점에 데려가 책을 한 권씩 들려주었다. 나는 노란색 표지의 ‘사방팔방 안 가는 데 없는 팔방이의 웃음 폭탄, 팔방이 만화일기’를 골랐다. 당시 소년일보에 연재되던 만화로 교실에 신문이 오면 가장 먼저 찾아 읽었다. 배도 부르겠다, 좋아하는 만화책도 얻었겠다, 나는 신이 났었다.      



익숙한 기쁨을 찾으러 가는 길


서른여섯의 나는 지금도 가출을 감행한다. 나가고 싶어서 나갈 때도 있지만 이번에는 등을 좀 떠밀었다. 일단 두 발로 걸어서 움직여보자는 단순한 마음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목적 없이 걸으면 머릿속은 비워지고 내가 놓인 그 자리, 그 순간을 더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 부풀려진 절망감과 과장된 예언을 다독이러 간다는 목적은 있었지만 마치 목적이 없는 것처럼 어딘가에 간다는 행위에만 집중한 이유다.


목적지는 주로 광화문의 카페와 서점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그 카페에서 즐겨 마시는 정성스러운 라떼와 서점에서 만나게 될 이름 모를 책들을 떠올리며 창밖을 내다볼 수 있는 버스를 탔다. 카페에 도착해서 주문을 하고 자리에 앉아 나를 위해 만들어질 커피만 생각했다. 따뜻한 5온즈(oz) 라떼를 호로록 마셨다. 단숨에 잔을 비우고 카페에 앉은 사람들과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봤다. 서점에서 신간 서적 코너와 매대를 둘러보는 동안 내 마음에 탁 걸리는 책 서너 권을 만났다. 오랜 시간 자기 영역에서 몰두해온 사람들의 이야기는 위로가 된다. 저자의 삶이 깃든 글에서 나와 연결되는 지점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두근거려 책을 품에 안았다.      


서점에서 나오는 길에 어느 노동조합의 행진을 보았다. 빨간 풍선이 물결을 이루고 조합의 깃발이 휘날리는 그들의 무리는 경찰의 가이드라인을 따라 청와대로 향하고 있었다. 그중 단 한 사람의 얼굴에 시선이 멈췄다. 행진을 마친 후 그의 저녁은 어떤 그림일까 상상했다. 신발을 벗고 다리를 주무르며 고단했다고 말할까, 그들의 목소리가 들어야 할 사람에게 가닿았는지 걱정을 할까, 지난한 과정에 한숨을 쉴까, 그래도 다시 희망을 찾을까? 그러는 사이 또 눈물이 솟아 콧등이 시큰했다.   

   

거리와 종이책 위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에 맞딱드린 내 삶의 생생한 한 장면 속에서 나와 함께 걸었다. 그들과 연결되었던 순간은 불확실한 내일의 슬픔을 저만치 밀어둘 만큼 긴급한 오늘의 감정을 일으켜주었다. 노동조합의 뉴스를 찾아 읽고 십년간 식물세밀화를 그려온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밑줄을 그었다. 그들에게 기대어 잠시 쉬어간다.

작가의 이전글 이름을 통과한 역할로 만나리-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