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동물 사이 그만큼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대한 유쾌한 성찰...
“... 내가 옆으로 다가가 바닥에 앉자, 그 조그만 황갈색 고양이는 내게 제 몸을 문지르더니 곧 두 앞발로 내 한 손을 붙잡고 핥기 시작했다. 개의 감격에 찬 핥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무적인 핥음이었고, 녀석의 까끌까끌한 혀에 살짝 아프기까지 했다. 녀석은 나를 자기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F와 나는 털 색깔 때문에 그 고양이에게 ‘비스킷’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pp.17~18)
나와 황갈색 고양이 비스킷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친구들이 이 어린 고양이를 먼저 발견했고 헛간에 임시 보호 조치 중이었다. 고양이는 호흡기 감염으로 상태가 좋지 않았고 얼굴도 지저분했다. 하지만 비스킷이 나의 손을 핥는 순간 둘은 연결되었고, 양쪽 모두 이를 거부하지 않았다. 논픽션인 책은 바로 이 비스킷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의 이야기이다.
“남편들도 물론 서정시를 남기긴 했지만, 그들은 사실 서정시에 썩 어울리는 부류는 아니다. 서정시는 남편이라는 존재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형식이 아니다. 누군가의 남편이라는 건 감정이 아니라 상태이기 때문이다... 감정은 잠깐이지만 상태는 일정 기간 지속된다. 물론 남편은 많은 감정을 느끼겠지만 남편이 즉 하나의 상태이고, 또 남편의 길로 들어서게 만든 감정들이 지나간 뒤에도 그 상태는 오랫동안 지속될지 모른다. 그런데 감정은 어디 평생 지속되는가? ... 남편 노릇을 한다는 것은 행동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남편의 이상적인 문학 형태가 서사인 것도 그래서이다. 때로 최초의 소설로 꼽히기도 하는 《오디세이아》는 자기 아내에게 돌아가려고 애쓰는 한 남편의 이야기이다. 보통의 남편들은 오디세우스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일들까지는 하지 안하도 되고 또 그렇게 오랫동안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오디세우스처럼 귀여운 님프나 공주를 만날 일도 없다...” (pp.302~303)
하지만 책은 내가 사랑하는 고양이 비스킷의 부재에 놀라 안절부절하는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가 (예전에는 여자 친구였고 이제는 아내인) F와의 관계를 실토하면서 사랑을 탐구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번역된 책의 제목이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이면서 ‘사람과 고양이를 사랑한다는 것’이라는 부제가 붙은 것은 F를 염두에 두고 내가 써내는 사랑에 대한 서술 또한 책에 가득하기 때문이다.
“세 개 대륙에 사는 집고양이와 야생고양이 979마리의 DNA 샘플을 채취해 - 별로 유쾌한 과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집고양이는 이스라엘과 아라비아 반도의 사막 지역에 서식했던 근동 야생고양이 펠리스 실베스트리스 리비카 Felis silvestris lybica(리비아 고양이의 학명)를 조상으로 두고 있다고 한다. 고양이는 약 1만 2000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시작된 농경생활 정착기의 초기에 인간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p.150)
여하튼 책에서 나와 F는 각자의 일을 위해 집을 비운 상태이다. 그 사이 브루노라는 청년에게 고양이들을 맡겼는데, 비스킷이 집을 나간 후 예상했던 시간이 지났음에도 복귀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브루노는 이 사실을 비스킷이 집을 나간 며칠 후에 내게 알렸고, 나는 이 사실을 또 다른 지역에 머무는 F에게 알린다. 게다가 하필이면 나와 F의 관계 또한 예전 같지 않은 상태이다.
“... 우리는 한참을 의논했고, 밖에 내보내면 고양이들이 행복해하니 원하는 대로 해주자는 데 동의했다. 개들처럼 혀를 빼물고 헥헥거리며 드라마틱하게 행복해하는 게 아니라 그들은 조용히, 여념 없이, 그리고 보는 이들에게 자기가 얼마나 행복한 상태인지 굳이 알리려고 하지 않으면서 행복해한다...” (pp.359~360)
책에는 고양이 비스킷이 나오지만 또 다른 고양이들인 바이티, 가티노, 티나, 수키, 칭 등도 등장한다. (동시에 나의 아내인 F 이외에도 D를 비롯한 과거의 여인들도 드문드문 등장한다.) 비스킷이 나의 첫 번째 고양이는 아닌 셈이다. 지금도 비스킷 이외에 다른 고양이들이 함께 한다. 하지만 지금 돌아오지 않는 것은 비스킷이고, 나는 결국 비행기를 예매하고 기나긴 시간을 들여 집에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사랑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욕망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기쁨도 이야기해야 한다. 욕망은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보통 삼 년 이상 가지 않는다. 기쁨은 그것보다 항상 오래가지 않지만, 오래갈 수도 있다. 그것의 상한선을 밝혀낸 연구는 아직까지 없었다. 기쁨은 결핍이 아닌 충족의 상태이며, 소유 여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태양을 소유하지 않고도 그 따스함 속에서 얼마든지 관능적인 만족감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대상을 소유하지 않고도 그로 인한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상대방을 멀리서 사랑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p.370)
고양이 비스킷을 걱정하는 마음 그리고 나와 고양이들의 역사와 번갈아가며 F와 나의 지난 역사 그리고 현재의 나와 F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정체모를 어둠이 등장하고, 이것은 고양이라는 종족에 대한 탐구와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와 고양이의 비교가 연신 페이지를 채우고,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동물 사이의 유대감에 대한 유쾌한 성찰이 가득한 책이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는 아내나 남편처럼 역할 혹은 직업이다. 데이트는 취업 면접과 크게 다르지 않다...” (p.99)
그건 그렇고, 내가 막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아내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라는 책의 제목에 유혹되어, 읽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게 된다며, 내게 조언을 구했다. 나는 그다지, 라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답변을 했다. 남자와 여자가 맺는 여러 관계 그리고 그로인해 획득된 아내와 남편 같은 지위에 대한 적나라한 언술이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데, 그것 때문일까 생각해 보았다.
피터 트라튼버그 Peter Trachtenberg / 허형은 역 /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아서 (Another Insane Devotion) / 책세상 / 408쪽 / 2014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