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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주삭 《내 첫번째 여자친구는》

사랑과 형제애가 위태롭게 양립되어가는 성장의 소설...

by 우주에부는바람

《내 첫번째 여자 친구는》은 마커스 주삭의 전작들인 《책도둑》과 《메신저》에 이어 세 번째로 출간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책들은 역순으로 출간되었다. 그래서 이번 책이 그의 첫 책이고 맨 처음 나온 《책도둑》이 그의 가장 최근의 책이다. 청소년 문학으로 시작한 작가의 이력답게 (그의 다른 책들의 주인공들 또한 나이가 많지 않다.) 이번 책의 주인공 또한 고등학생인 십대의 청년 캐머런이다.


“내 이름은 캐머런이야. 늘 여자 안에 푹 잠기고 싶다고, 여자의 영혼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 근처에라도 가본 적은 한 번도 없어. 심지어 여자 몸에 손이 닿은 경험도 없어. 나한테는 친구가 없어. 나는 두 형의 그늘에서 살고 있어. 한 형은 성공을 향해 일편단심 나아가고 있지. 또 한 형은 멋지고, 거친 미소를 띠고,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어...” (p.145)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여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캐머런에게는 전혀 다른 성향의 형 둘이 있다. 그중 루브는 캐머런과 같은 방을 쓰고 있으며,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아 수시로 여자를 갈아치우는 것이 일이다. 큰 형인 스티브는 독립하여 집 근처에서 동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것으로 보이는 캐머런을 무시한다. 캐머런은 두 형과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그 차이가 소설을 만들고 있다.


“나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글리브에 사는 아이를 내가 기쁘게 하고 싶은 아이, 내가 푹 빠져들고 싶은 아이로 선택했을까?” (p.96)


캐머런은 그가 사는 도시를 돌아다니기를 좋아한다. 그가 자주 가는 곳은 스테파니라는 여자 아이가 살고 있는 글리브이다. 그는 그녀의 집 앞에서 그 집을 향한 채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 캐머런은 스테파니에게 푹 빠져 있지만 어쩌면 스테파니는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캐머런은 자주 그 집 앞에 머문다.


“내 호주머니에는 글이 있었다... 어쩌면 내게 있는 뭔가가 그것인지도 몰랐다... 그거하고, 또 내가 혼자 수도 없이 이 도시를 걸어다녔다고, 마치 내 속을 걷듯, 그 누구보다 많은 것을 느끼며 이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 실제로 나는 그랬다고 확신한다-겉모습보다는 속을 느꼈다고.” (p.39)


그리고 캐머런은 글을 쓴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것들을 글로 적는데 그것이 그를 유별나게 만들지는 않지만 그를 좀더 특별하게 만들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이제 그는 작은형인 루브와 잠시 사귀다 헤어진 옥타비아, 형과 사귀고 있는 동안에도 참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던 옥타비아의 집을 찾아간다. 스테파니를 향한 것이 맹목적인 짝사랑의 그것이었다면 옥타비와의 관계는 다르다. 그러나 이 또한 루브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파탄 지경에 이른다.


"이제 알겠어.... 내가 널 존경한다는 걸... 루브의 말이 내 주위를 맴돌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말은 내 피부밑으로 파고들었고, 나는 그 말이 돌아나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 말은 영원히 그곳에 그대로 있을 터였다. 이 순간, 루벤 울프와 나 사이의 이 순간도 마찬가지였다.“ (p.261)


일종의 성장 소설이자 연애 소설 혹은 가족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사랑과 형제애가 조금은 위태롭게 양립해 가는 과정이 소설을 만들어간다. 마치 작가 자신의 이야기라도 된다는 듯, 그래서 크게 외칠 필요가 없다는 듯 조근조근 진행되는 소설이다. 챕터의 끄트머리에 소설 속 캐머런의 글이 들어 있는데, 그것이 꽤나 아마추어적이어서 이 또한 리얼리티를 살린다고나 할까...



마커스 주삭 Markus Zusak / 정영목 역 / 내 첫번째 여자 친구는 (Getting the Girl) / 문학동네 / 267쪽 / 20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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