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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선 Nov 26. 2021

전화왔어요.

“어 선선씨. 잘지내지?”

“네 부장님! 잘지내고있어요. 잘지내세요?”

“응. 선선씨. 우리 부서를 없앤다네? 자세한 건 팀원들이랑 만나서 얘기 하자.”

“넵.”      


휴업 중 부장님의 연락이 왔다. 헙. 심장이 철렁했다. 몸 안은 차가워지고 몸 밖은 열이 나는 것 같다. 추운건지 더운건지 잘 모르겠다. 같이 공원을 걷던 친구가 옆눈으로 나를 살폈다.      


“우리 부서 없어진대. 하하하! 괜찮아 괜찮아!”      


 괜찮지 않았기 때문에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 이 날은 ‘코로나 시대 비자발적 퇴사자’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게 되는 여정의 첫 날이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단어의 조합이지만 정확한 설명같기도 했다. 일할 때는 “아 퇴사하고 싶다.”라는 말이 누수된 것 처럼 샜다. 나아가 “1년의 안식년을 가지고 싶어.”라고도 했다. 퇴사하는 일꾼은 퇴사를 말하지 않는다. 말수가 줄고 은은한 보살의 미소를 띄는 사람이 퇴사한다. 나는? 근면하게 일터에 다녔다. 소원이 이뤄진 그날. 나는 기쁘지 않았다. 쫓겨남의 불안이 나를 감쌌다.     

 

 참 근면했다. 매월 25일 들어오는 월급. 갓 지은 따듯한 쌀밥을 밥공기에 담듯 월급을 툭 떼서 적금에 넣었다. 든든하고 뜨듯했다. 밥값하고 살고 있는 것에서 나의 역할과 존재를 확인했다. 넵. 옙. 네넹. 등 다양한 수긍으로 조금씩 꾸준히 무리했다. 버거운 날에은 회사 근처 서점에 가서 책 사이를 산책하다 퇴사에 관한 에세이들을 읽었다. 점심시간에 퇴사 에세이를 읽는 짜릿하고 소소한 일탈을 즐겼다. 근면함은 나에게 버거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주었다. 그 근면함은 6년째 이어지고 있었고 7년째로 넘어갈 즈음 나에게 퇴사를 권했다. 월급 뿐만 아니라 6년째 주 5일 9시간을 반복했던 일상도 반납해야 했다.          


 친구와 공원을 오래 걸어서 마음 속 싹트는 불안은 커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의 불안을 혼자 보듬을 수 없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털어놓았다.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체했을 때 손가락 따는 것과 같은 긴급 처방이었다. 말로 꺼내어 허공으로 날릴 때 내가 처한 상황이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럴 때마다 상황을 조금씩 소화할 수 있었다. 일터가 없어진다는 소식도 나를 참 설레게(?) 했지만 비자발적 퇴사가 진행되면서도 설레는 순간들이 많았다. 갑자기 걸려온 부장님의 전화는 복권 당첨되듯 얻어걸린 퇴사 수령의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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